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신거니 Jan 29. 2022

퇴사하고 한 달 하고도 12일

이제서야 올리는 퇴사 한 달 후기

퇴사하고 한 달 정도 있다가 후기를 한번 써야겠다 생각은 했는데 2주 정도가 더 지나버렸다. 사실 그동안 매일같이 올리는 포스팅을 통해 꾸준히 근황은 밝혔으니 필요성을 많이 느끼지 못한 측면도 있다. 새삼스럽지만 애매한 기간 동안 경험한 퇴사 후기를 간단하게 써보려고 한다.


1. 퇴사를 한 이후 지금에 이르기까지 단 한순간도 후회를 해본 적이 없다. 누군가는 더 빨리 나올걸 하고 후회를 한다는데 난 그렇지는 않다. 우리 사이의 적절한 인연의 기간은 딱 3년이었고, 아쉬움 없이 떠날 수 있었다. 퇴사 직후 인턴에 합격해서 그런 걸까? 사실 그렇지는 않다. 설령 돈만 까먹는 백수였다고 해도 여전히 같은 심정이었을 것 같다.


2. 나가면 죽을 것 같이 말하던 수많은 이들의 경고와는 달리 아직까지 내 퇴사를 기점으로 지구 멸망의 계시가 내려지거나 급격한 경제적 압박에 시달리는 일은 없다. 본가로 들어와 생활비도 최대한 아끼면서 사니 그렇게 돈이 궁하지는 않다. 회사를 다니는 동안 웬만큼 물건은 다 샀기에 추가로 지출될 내역도 없다. 퇴사 후 가장 걱정되던 부분이었는데 다행히 어느 정도 적응이 되었다.


3. 퇴사를 했다고 하면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이 "왜?" 그리고 "앞으로 뭐할 건데?"다. 이제 한 달 정도 되어가니 왜 퇴사했냐고 묻는 사람은 거의 없지만, 계획을 묻는 사람은 여전히 있다. 인턴을 하다 보니 그래도 어느 정도 방어는 가능하다. 굳이 기간이 정해진 자리라는 말은 하지 않는다. 내가 눈 감는 그날까지의 계획을 집요하게 묻는 이들이 있기 마련이니까.


신기한 건 회사를 다닌다고 하면 그 모든 질문이 일순간에 사라져 버린다. 계획은 회사원에게도 여전히 필요하지 않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이야 직장에 다니고 있지만 그런 기간이 영원 할리 없다. 10년 후에는? 20년 후에는? 이런 식으로 의문을 계속 유예할 수 있어서 그런 걸까? 직장인끼리는 서로의 인생 계획을 묻지 않는다는 암묵적인 룰이 있어서일까? 남의 인생에 그다지 관심이 없는 난 딱히 무엇을 할지 묻지 않지만 다른 사람은 아닌가 보다.


4. 퇴사를 하고 삶의 만족도가 확연히 올라갔다. 아침저녁으로 운동을 하고 규칙적으로 생활하니 건강도 좋아졌다. 이제 내가 하고 싶지 않은 일은 거의 하지 않는다. 인턴도 아직까지 재밌게 다니고 있고 미래를 생각하면 가슴이 두근거린다. 내 삶에서 회사 하나를 덜어냈을 뿐인데 많은 부분이 달라졌다.


사람 마음이 참 간사해서 이렇게 자유를 누리고 있으니 당연해 보인다. 마치 예전부터 쭉 이렇게 살아온 기분이다. 물론 퇴사가 인생의 모든 부분을 일거에 해결해주지는 않는다. 다만 직장으로 인해 피폐해진 삶을 돌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뿐이다.


5. 그렇다고 모두에게 퇴사를 권하고 싶지는 않다. 퇴사란 엄연히 개인이 생각하여 결정해야 하는 부분이고 누군가에게는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 퇴사를 무작정 부추기는 것도, 틀어막는 것도 무책임한 태도라고 생각한다. 물론 친한 사람이라면 퇴사하라고 말하기는 한다.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뭔가 써놓고 나니 이미 예전부터 쭉 해오던 말이다. 그냥 한 달이라는 숫자에 굳이 의미부여를 하고 싶었나 보다. 한 달이 지났고, 난 아직도 잘 살고 있다. 앞으로도 잘 살 테고. 결코 가벼운 사건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세상이 끝나진 않는다. 퇴사, 그래도 할만하다.

매거진의 이전글 마이크로 매니징 하는 나쁜 상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