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연재 중 신도시 19화

폭로

by 안개홍

새벽 2시

민아의 카페 '시간'


민아는 카페 문을 열고 들어서며

숨을 헐떡였다.


집에서 뛰어온 탓에

가슴이 터질 듯 뛰었다.


"제발... 제발..."


카운터 위를 살폈다.

아무것도 없었다.


테이블 하나하나를 뒤졌다,

의자 밑도 확인했다

쓰레기통을 뒤집었다.


단골노트는 없었다.


민아는 떨리는 손으로

CCTV 녹화 파일을 확인했다.


오후 11시 35분.

서연이 카페를 나가는 장면


민아가 서연을 배웅했고

문을 닫지 않은 채

화장실을 청소하러 나가는 자신의 모습.


그리고 11시 45분.


누군가가 카페 문을 열고 들어왔다.

후드를 깊게 눌러쓴 사람.

얼굴은 자세히 보이지 않았다.


그 사람은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카운터 옆 테이블 위에 놓인

검은색 노트를 발견했다.


잠시 망설이는 듯하더니

노트를 집어 들었다.

몇 페이지를 넘기며 읽는 모습.


그리고는 노트를 품 안에 넣고

조용히 카페를 빠져나갔다.


'누구지.'


민아는 화면을 다시 되돌려 봤다.

체형을 보고는 여자인지 남자인지 알 수 없었다.


후드 안쪽으로 머리카락이 조금 보였으나,

색깔도 길이도 불분명했다.


걸음걸이가 조심스러웠다.

CCTV를 의식하는 듯한 움직임.


한태준일까, 아니면 박은지, 최소영, 홍우석?

혹시 서연 씨가 돌아온 건가?


민아는 혼란스러웠다.

노트에 등장하는 모든 사람이

용의자가 될 수 있었다.


"망했다..."


민아는 카페 바닥에 주저 않았다.

노트를 분실한 것에 대한 자책감이 몰려왔다.

단골들의 비밀을 지키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노트는 이미 누군가의 손에 있었다.






오전 9시 25분

으뜸마을 맘카페 게시판.


익명의 새 글이 올라왔다.


[제목 : 으뜸마을 불륜녀, 이거 사실인가요?]


요즘 으뜸마을에서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지고 있던데

혹시 자세히 아시는 분 있을까요?


제가 이 동네 여러 경로로 들었는데

너무 구체적이라 진짜인 것 같아서요


글이 올라온 지 몇 시간이 지났고

댓글이 폭발적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ㄴ 뭔데요? 궁금쓰]

[ㄴ 그냥 말해욬ㅋㅋㅋ]

[ㄴ 뭔 일일까요? 궁금하네요.]


작성자가 답글을 달았다.


ㄴ 으뜸마을 1003동 최소영(간호사) 사는데요.

이 분이 남편이 있는데

다른 남자 두 명이랑 동시에 불륜이래요.

한 명은 오지훈이라는 사업가.

과거 연인이었는데 최근까지 만났다네요.

으뜸마을 1001동 13층에 산다던데

그 집에 들어가는 걸 봤다네요.


다른 남자는 보건복지부 사무관 ㅋㅋㅋ

스케일이 남다르긴 하네요.

교대근무라 서울에 근무하는데

남편 몰래 서울 호텔에서 만났다던데


근데 제일 충격적인 건

홍우석 부인이 박서연이라던데

박서연이 불륜녀 절친이라네요...

친구 남편이랑.... 대박....


댓글창이 폭발했다.

인기 게시글이 되면서 조회수도 급등했다.


[ㄴ 헐 뭐야 이거 진짜예요?]

[ㄴ 13층이면 1301호 그 남자 맞나요???]

[ㄴ 최소영? 우리 애 친구 엄마 같은데... 헐.]

[ㄴ 친구 남편이랑?! 미쳤네 진짜....]

[ㄴ 소름....]

[ㄴ 누가 감시라도 한 건가?]

[ㄴ 실명까지 거론하는 거 보면 사실 같은데요?]

[ㄴ 미친, 우리 라인 그 여자 같은데...?]

[ㄴ 남편 으뜸중 영어교사 김현우 아니에요???]


맘카페 접속자 수가 급증했다.

오전 10시에 새로운 글이 또 올라왔다.


[제목 : 으뜸마을 불륜썰 펙트체크 총정리]


복지부 홈페이지에서 홍우석 검색함.

보건복지부 사무관 맞음.


으뜸마을 1003동 살고있고

부인이 박서연인데 불륜녀랑 지인 맞음.


오지훈은 잘 나가는 AI 스타트업 대표.

인터넷에 검색하면 얼굴 나오는데,

반반하게 생겼던데 총각이고 심지어 돈도 많음!


왜. 뭐가 아쉬워서.

유부녀를 만나는지 이해가 안 감.


남편은 으뜸중 영어교사, 김현우.

최근 학교에서 학폭위 이슈가 있다던데?


남편이 학교에서 허튼짓 하는 거 보니

와이프 바람난 게 팩트는 맞긴 한가 보네요.

근데 박서연 씨가

최소영 씨 친구라는 건 어떻게 자세 아시는지?

둘이 사는 아파트도 같다던데.


맘님들

팩트 체크 확인 부탁 드립니다.


[ㄴ저 잘 알아요... 두 분이 친해요.]

[ㄴ박서연 씨가, 불륜녀 딸 돌봐주기도 함. ㄷㄷㄷ]

[ㄴ헐... 그럼 진짜네...]


학원 입구에 엄마들이 모였다.

학군지 으뜸마을 전체가 들썩이기 시작했다.


"자기, 혹시 그거 들었어? 최소영 씨...."

"친구 남편이랑 바람났다는 거 진짜야?"

"은서 어떡하니... 딱해 죽겠다.."


마트에서, 단지 내 벤치에서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카페에서.

모두가 속삭였다.






오전 11시,

으뜸마을 1003동 904호

소영의 집.


나이트 근무를 마치고

세종에 돌아와 늦잠을 자던 소영은

빗발치는 휴대폰 알람에 잠을 깼다.

학부모 단톡방에서

알림이 폭주하고 있었다.


[학부모 A : 은서맘님 맘카페 보셨나요?]

[학부모 B : 소영 씨, 이게 무슨 일이에 정말...]

[학부모 C : 최간호사님 이거 사실 아니죠?]


소영은 몽롱한 정신으로

휴대폰으로 맘카페에 접속했다.

화면을 내리는 손이 점점 느려졌다.


'이거 뭐야...'


자신의 이름, 지훈의 이름.

우석의 이름. 그리고 남편의 이름까지.


익명의 누군가가

자신의 모든 행동을 관찰하고

기록했다는 사실.


너무 놀라서 바닥에 떨어트린 휴대폰에서

알림음이 계속 울려댔다.


"아니 도대체... 누가…“


소영은 떨리고 무서웠다.

단독방에서는 쉴 새 없이 메시지가 쏟아졌다.


[학부모 D : 최소영 씨 해명 좀....]

[학부모 E : 은서엄마, 이거 진짜 자기 아니지??]

[학부모 F : 은서 생각은 안 하시나요?]

[학부모 G : 역겹네요. 당장 나가주세요.]


소영은 단톡방을 나갔다.


'아! 우리 은서... 학교'


황급히 학교에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1학년 3반 김은서 엄마인데요.

우리 은서 혹시 괜찮은가요?"


담임의 목소리가 난처했다.


"어머님. 지금 은서가 보건실에 있어요.

아침부터 친구들이 이상한 이야기를 해서..."


"지금 바로 갈게요.!!"


소영은 서둘러 옷을 걸쳤다.


머리도 안 감고

세수도 안 한 채

밖으로 무작정 뛰쳐나갔다.


어떻게 학교를 갔는지도 모르겠다.

소영이 도착했을 땐

은서는 보건실 침대에 웅크리고 있었다.


"은서야..."


은서는 엄마를 보자 더 몸을 움츠렸다.


"은서야, 엄마가..."

"엄마 보기 싫어."


은서의 목소리가 떨렸다.

소영은 입술을 깨물었다.


"은서야..."


"엄마... 남자친구가 두 명이야?

아빠 말고 다른 남자 만나는 거 사실이야?"


보건 선생님이 당황한 표정으로 밖으로 나갔다.


"은서야... 미안해

엄마가 잘못했어... 정말 잘못했어..."


소영이 은서를 안으려 했지만 은서는 뿌리쳤다.

은서의 눈에 눈물이 가득 찼다.


"엄마... 선생님도 다 알고

지은이 엄마도 알아...

나더러 지은이랑 만나지 말랬어.

엄마.. 나 무서워."


은서가 울음을 터뜨렸다.

소영은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온몸의 힘이 빠졌다.


"으으으..."


소영의 입에서 신음 같은 울음이 나왔다.






오후 1시,

민아의 카페. '시간'


오늘 하루 종일 학군지가 난리였다.

아침부터 학군지 엄마들은 이곳으로 모였다.

여기저기서 온갖 소문을 퍼 나르고 있었다.


민아는 맘카페에 올라온 글을 보고

완전히 패닉 상태에 빠졌다.


단골노트 내용이 그대로 올라와 있었다.

날짜, 장소, 상황까지. 자신이 기록했던 그대로.


"내 노트야... 내 노트에 적었던 거야..."

민아는 자책감이 시달렸다.


'내 노트 때문이야...'


하지만 동시에 묘한 의문이 들었다.

노트를 가져간 사람은 왜 출처를 밝히지 않았을까?


'카페 단골노트'라고 밝히면 되는걸

왜 '우연히 알게 된 정보'라고만 했을까?

'자신의 정체를 숨기려고...'

민아는 생각했다.

노트를 훔쳐간 사람은 자신이 드러나길 원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노트에 이름이 나오는 사람일 가능성이 높아.'


민아는 노트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떠올렸다.


최소영, 김현우, 박은지, 한태준,

오지훈, 홍우석, 박서연.


그중 누군가.

민아는 제일 먼저 서연을 떠올렸다.

어제 카페에 왔던 서연. 완전히 무너진 모습.


'서연 씨가 노트를 가져갔을까?'

가능성은 있었다.


그런데 맘카페에서

자신 이름까지 언급되고 있는 걸 보면

서연 씨는 아닌 것 같았다.

'누구지... 대체 누가...'


민아는 CCTV 영상을 다시 봤다.

후드를 쓴 사람. 얼굴이 보이지 않는 모습.

민아는 도무지 누군지 알 수 없었다.






오후 2시,

지훈의 사무실.


비서가 급히 들어왔다.


"대표님, 큰일 났어요."

"무슨 일인데?"

"맘카페에... 대표님 이야기가..."


비서가 휴대폰을 보여줬다.


지훈은 화면을 보고 얼굴이 창백해졌다.

자신과 소영의 관계가 상세히 적혀 있었다.


"이럴 수가..."

"거래처 A사에서 전화 왔어요. 계약 재검토하겠대요."


비서의 말에 지훈은 고개를 떨어뜨렸다.


"누가... 누가 이렇게 자세히 알지..."


지훈은 중얼거렸다.


'누가 우릴 지켜봤던 거야?'


소름이 돋았다. 익명의 관찰자.

지훈의 모든 행동을 기록하고 있었던 누군가.


"대표님, 어떻게 하실 거예요?"


비서가 물었다.

지훈은 대답하지 못했다.


"모르겠어... 나도 모르겠어..."






같은 시간,

보건복지부 우석의 사무실.


과장이 급히 찾아왔다.


"홍 사무관! 이게 무슨 일이야?!"

"과장님... 무슨 일이시죠..?"


"맘카페에 자네 이야기가...

최소영이라는 간호사와... 호텔에서...

이거 사실이야??? 아니지?"


과장의 얼굴이 붉어졌다.

우석은 대답할 수 없었다.

대답하지 못하는 우석을 보고 과장은 호통을 쳤다.


"아니! 어쩌자고 이러는 건가 대체!!

일단 집으로 가게.

차관님도 아침부터 아주 난리가 나셨어!!!

기자들도 자꾸 전화 오고, 미치겠네 정말.

자네, 당분간 자택 대기해야 할 것 같아.


요즘 공직 분위기 안 좋은 거 잘 알잖아.

이거 그냥 넘어가지는 않을 것 같아. 어휴...."


"네... 알겠습니다."


우석은 사무실을 나왔다.






오후 4시,

으뜸중학교 교무실.


현우는 동료 교사에게서 맘카페 소식을 들었다.


"김 부장, 이거 봤어?"


동료가 휴대폰을 보여줬다.


소영의 이름. 오지훈의 이름. 우석의 이름.


현우는 말을 잇지 못했다.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이었다.


은지를 통해 들었던 이야기.

하지만 이렇게 상세히 공개될 줄은 몰랐다.


"김부장… 괜찮아?"

"응... 괜찮아..."


현우는 거짓말을 했다.

괜찮을 리 없었다.


"박 선생 미안한데, 오늘 조퇴 좀 해야겠어."

"그래, 가봐. 은서 챙겨야지."


현우는 학교를 나섰다.

걸어가는 동안 생각이 정리되지 않았다.


'누가 소영을 지켜봤을까...'

현우는 멈춰 섰다.


'한태준...'


태준이 사설탐정을 고용해 소영을 미행했다는 이야기.

은지에게 들었던 말.


'이런, 개 같은 새끼!'






학군지는 하루 종일 소문으로 들끓었다.

카페에서, 학원에서, 아파트 단지에서.


그리고 모두가 궁금해했다.

익명의 폭로자가 누구인지.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었다.

그리고 그들은 알지 못했다.


곧 새로운 비밀이 폭로될 것이라는 걸.



이 소설은 세종 신도시라는 공간을 모티프로 했으나, 실제 지역·인물·사건과는 전혀 무관한 창작물입니다. 작품 속 모든 설정은 오직 작가의 상상력에서 비롯된 허구입니다. 유사성은 우연일 뿐, 실제와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keyword
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