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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펭귄들의우상 Jun 04. 2020

배드민턴 : 너의 매력

순간으로 산다.

눈이 감긴다. 너무 졸리다. 공부도 너무 하기 싫다.


조금 즐거운 상상을 해본다. 그래 배드민턴이다.


기억을 더듬어 ‘명 플레이 모음집’을 재생한다. 솔직히 기억을 더듬을 필요도 없다. 최고의 플레이는 언제든 떠올릴 수 있다.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때린 스매싱에 셔틀콕이 맞는 찰나의 순간, 셔틀콕의 각도, 라켓과 맞닿은 각, 손 끝에서 전해지는 라켓의 진동, 그리고 귀를 울리는 타구음 모든 것을 피부에 새긴다.다른 스포츠는 잘 안해봐서 모르겠고, 그나마 하는 헬스와는 비교할 수 없는 재미다. 헬스가 고통에서 비롯되는 인고의 열매라면, 배드민턴은 뇌 안을 짜릿하게 훑고 간다.


배드민턴에 관한 생각을 할 때면 반드시 떠오르는 기억 두 가지가 있다. 이 순간은 아마 죽을때까지 잊지 못할 것 같은데, 오늘은 두 가지 기억을 소개해보려 한다.


  첫 기억은 22살 때였다. 21살 9월까지 한창 배드민턴을 치다가, 어깨를 다친 이후(이전글 참조) 약 9개월간 운동을 못했었다. 22살 스승의 날 기점으로 다시 운동을 시작한 뒤, 예전의 폼을 찾으려고 노력을 많이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9개월간 거의 펜도 제대로 잡지 않았으니 근력은 약해질대로 약해졌고, 과거에 아무렇지 않게 했던 동작은 더이상 제 위력을 내지 못하고 아프기만 했다. 약 3개월 간의 근력 재활을 한 끝에 8월 어느날, 운동을 같이 하던 형과 함께 와우산 배드민턴장에 갔다. 그리고 거기서 내가 기억하는 인생 최고의 스매시가 나왔다.


  사실 점프 스매시를 제대로 배운 적은 없다. 발 바꿔 스매싱, 원스텝 점프는 배운 적 있지만, 우리가 흔히 점프스매시하면 생각하는 서전트 점프 스매시는 보기보다 굉장히 어려워서 레슨을 반드시 받아야 제대로 구사할 수 있다. 그전까지 제대로 배우지 못했지만, 내 나름대로 유투브를 보고 혼자 연습하면서 어느정도 감을 익혔었다. 그리고 그 날, 반코트 게임을 하다가, 서브 박스 끝으로 올라온 공을 점프해서 때릴 때의 그 기분은, 정말 묘했다. 아직도 땅에 내려오기 전에 공을 치고 내려오던 그 느낌과, 상체가 완벽하게 회전하고, 손목힘까지 제대로 실려서 공을 잡았다가 놓은 그 느낌이 생생하다. 무엇보다 기억나는 것은, 공의 궤적이 평소와는 달랐다는 점이었다. 스매시를 치면 보통, 직선으로 날아가는 느낌은 자주 느끼지만, 그때는 내 눈 앞에서 포물선의 궤적을 그리면서 땅에 꽂혔다. 정말 제대로 된 점프 스매시였다. 형은 여느 때처럼 뒤에 자리하고 있었고, 생각보다 높은 타점에서 날아온 스매시에 놀라서 급히 라켓을 뻗었지만 그 라켓이 닿지 못하는 곳에 셔틀콕이 꽂혔다. 그때에 비하면 훨씬 더 나은 근력과 기술을 가지고 있는 지금까지도, 그 스매시의 느낌을 다시 낸 적은 없었다. 그래도 내가 그런 공격을 했다는 것에 뭔가 자부심을 가지고 살고 있다.


  솔직히 두 번째 기억이 더 소중하다. 첫 기억은 사실 앞으로도 그것보다 더 기억에 남는 장면이 생길 수 있다는 가능성이라도 있지만, 두 번째 기억은 내가 안다. 이건 평생 재현될 수 없다. 두 번째 기억은 현역 선수들을 이겼던 경기였다. 재수 때 나는 고등학교 친구와 일주일에 한번 와우산 배드민턴장에 가서 배드민턴을 쳤었다. 그 친구도 꽤 잘치고 특이하게 치던 친구였는데, 아직도 만나면 이 얘기를 나누곤 한다. 어느 봄날, 배드민턴 장에 정말 귀가 터질듯한 타구음이 들렸다. 와우산 배드민턴 장은 구조상 소리가 크게 울릴 수 밖에 없지만, 그 타구음은 정말 너무 특별해서 저 끝에 계신 어르신들도 타구음의 주인을 찾기위해 두리번 거리고 계셨었다. 그 주인은 선수였다. 그것도, 서울체고 3학년 현역 선수. 쉬는 날, 동생(이 친구는 시청 주니어팀 선수였다.)을 지도하기 위해 나왔었는데, 정말 깜짝 놀랐다. 어떻게 그렇게 호리호리한 체형에서, 그렇게 강렬한 소리가, 그리고 어떻게 그렇게 물 흐르듯, 여유롭고 유연하고 또 강력하게 타구를 할 수 있는지 감탄만이 나왔다. 동생은 중학생이었는데, 그 친구도 정말 훌륭했지만, 그 형의 타구는 아직도 뇌리에 박혀있다. 당시 눈치보지 않고 살던 나는, 겁도 없이 그 둘에게 게임을 제안했고, 정말 고맙게도 두 친구는 우리와의 게임을 허락해줬다.(무려 10판 넘게)


  당연하게도 더블스코어로 전패를 이어가며 그 날은 ‘선수를 경험했다. 대단했다.’ 라는 생각과 함께 집에 돌아왔다. 그리고 그 다음주, 두 형제와 또 마주쳤다. 역시나 사람들은 감히 게임을 걸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었고, 나는 전 주의 친분을 이용해 또 다시 게임을 했다. 그리고 아직도 그때의 상황이 생생하게 기억에 남는다. 나와 내 친구는 평소 운동을 할 때도, ‘신내림을 받았다.’ 라고 말하는 순간들이 있는데, 정말 말도 안되는 운동 능력을 보일 때가 그렇다. 그들과의 첫 게임에서 우리 둘 다 포텐이 터졌다. 그 강력한 스매시를 모두 막고, 끝없는 수비를 이어가고, 말도 안되는 스핀 헤어핀이 들어가고, 스텝은 또 어찌나 빠르게 나오는지 중학생 동생이 당황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말도 안되는 헤어핀이 들어가는 순간, 그 형이 뒤에서부터 달려와 헤어핀을 받으려다 네트에 걸리고 말았다. 그리고 그 순간 잊을 수 없는 중얼거리듯 던진 한 마디. ‘이걸 어떻게 받아’. 와 정말 그 순간은, 현역 선수로부터 인정받았다는 생각에 소름이 끼치면서 그 뒤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물론 그 세트도 졌지만, 게임이 끝나고 자리를 바꾸면서 또 동생의 한 마디. ‘형 근데 저번주랑 좀 다르신데...?’ 이것도 앞의 말 보다는 감동이 덜했지만, 충분히 뇌리에 박힐만 했다.

  그리고 놀랍게도 우리는 그 다음 세트를 이긴다. 그것도 꽤 큰 점수차로. 동생이 아직 나이가 어려 멘탈이 덜 잡혔는지, 실수를 많이 했고, 그 실수에 형마저 멘탈이 무너져, 헛스윙마저 몇 번 봤다. 그게 내 앞으로도 없을 ‘선수와의 첫 승리’ 이다. 레슨을 받은 적도 없는 아마추어 두 명이, 선수 두 명을, 심지어 한 명은 엘리트 체육인의 표본인 체고 선수를 이겼다는 사실은, 그 후로부터 내 배드민턴 인생의 큰 자존감 발판이 되었다. 물론 그 뒤부터도 또 전패를 하고, 그 뒤로 거기서 그 친구들을 만날 수 없었지만, 나에게 너무 강렬한 기억이라 평생 기억에 남을 것 같다.


  본과에 들어오기 전, 마지막으로 갔던 와우산 체육관에서, 그 동생을 만났다. 형은 뭐 대학팀에서 뛰거나, 배드민턴을 그만두거나 했을테고, 동생은 아직 고등학생이었다. 여자친구와 온 것 같던데, 너무 체격이 좋아져서 겨우 알아봤다. 그 때의 그 화려한 플레이를 보고 싶었는데, 여자친구랑 있어서 그런지, 아주 살살 치느라 볼 수는 없었다. 가끔 그 형이 궁금해진다. 성격도 되게 좋았고, 겨우 한 살 차이었는데 깍듯하게 해주는게 사실 기분 좋았다. 번호라도, 그게 아니면 이름이라도 알아둘 걸, 아쉬움이 정말 많이 남는다. 그 동생은 날 기억하지 못하는 것 같아서 말을 따로 걸지는 않았는데, 언젠가 또 기적처럼 다시 만나서, 같이 운동하는 날이 오면 좋겠다. 꼭 한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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