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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펭귄들의우상 May 17. 2020

배드민턴, 입문자의 고통

언제쯤이면

  배드민턴은 언제나 사람을 짜증 나게 한다. 물론 내 성격에서 기인한 문제겠지만.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나 배드민턴 잘 쳐’와 동호인이 생각하는 ‘나 배드민턴 잘 쳐’는 정말 하늘과 땅 차이다. 우리는 길거리에서도, 주변 공터에서도, 각종 매체에서도 축구, 농구 등의 메이저 스포츠를 볼 수 있기에 이른바 ‘잘하는’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대충 알 수 있다. 학창 시절 축구를 잘하던 친구들, 점심시간만 되면 농구공 들고나가던 친구들을 보면서 알게 모르게 꽤 많은 관람을 하게 된다. 하지만 배드민턴은 그럴 기회가 없다. 20대 초반 동호인의 비율은 극악으로 낮기 때문에 주변 친구들에서 볼 수도 없다. 그래서 어느 정도 운동신경도 있고, 학창 시절에 못하던 편은 아니었으니 하고 자신감 넘치게 만 원짜리 라켓, 플라스틱 셔틀콕을 들고 체육관에 들어선다.


  체육관 문을 열면, 경쾌하다 못해 터질  같은 타구음이 들린다. 형형색색의 이상한 티셔츠를 맞춰 입은 적어도 40 이상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소리를 지르며 뛰어다니고 있다. 벤치는 이미 그들의 처음 보는 거대한 라켓 가방과 땀에 절은 스포츠 타월 등으로 점령당했다. 쭈뼛거리고 가만히 서서 어쩔  몰라하다가, 저쪽 코트에서 사람들이 빠져나가는 것을 본다. 이제    있으려나 하고 코트로 들어가면, 이미 다음 게임이 예약되어 있단다. 죄송합니다를 연발하며 도망치듯 코트에서 나와  벤치에 가서 서있는다. 이번엔   코트가 비었다. 기다리는 사람도 없어 보인다. 이제는    있으려나 싶어서 들어가면 클럽에서 대관한 코트란다. 머리가  퉁명스러운 아저씨가 와서 저쪽 초보자 코트에 가서 치고, 여기서 나오랜다. 사실 이때쯤이면  넓은 공간에 편안히 있을 공간이 없는  같은 수치심에 이제 운동하려는 생각은 사라진  오래다.


  그래도 이왕 여기까지 왔는데 라켓은 휘둘러보고 가야지 하는 마음에 순서를 기다려 초보자 코트에 들어간다. 마음 편히 둘이서 몇 번 랠리라도 해보고 싶은데, 어디선가 동호인 티셔츠를 입은 4명이 몰려들어 게임을 칠 건데 비켜줄 수 있는지 질문 아닌 질문을 한다. 이쯤 되면 속에서 열불이 난다. 체육관에 들어온 지 한 시간이 다되어가는데 공은 거의 쳐보지도 못했다. 이러고 서성이던 모습이 불쌍했는지, 아주머니 두 분이 와서 게임을 치자고 물어본다. 아 이제 운동 좀 해볼 수 있나 싶어서 마지막 열의가 불타오른다. 아주머니 두 분이니 랠리도 할만할 것 같다. 그렇게 5분 즈음 뒤, 초보자를 놀아준 50대 여자 C조 두 분이 흥미를 잃고 떠나간다. 그리고 다시 이 모든 스토리는 처음부터 시작한다.


  이 얘기는 거의 대부분의 배드민턴 입문자의 얘기다. 사실 뭐 어떤 스포츠나 그런 면이 조금씩 있겠지만, 배드민턴은 클럽 텃세가 굉장히 강하다. 클럽들이 코트를 대부분 대관해둬서, 12면짜리 넓은 코트에 일반인이 칠 수 있는 코트는 단 1면, 그마저도 조금만 빈틈을 보이면 클럽 사람들이 와서 게임을 쳐버린다. 글을 쓰는데 처음 아버지와 배드민턴을 치러갔을 때의 기분이 들어서 짜증이 밀려온다.


  그렇다면 클럽에 가입하면 해결되는 문제인가? 절대 아니다. ‘잘’ 치지 못하면 아무도 당신을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대체 어디서들 그렇게 치고 왔는지, 죄다 잘 치는 사람밖에 없다. 못 치는 사람이 간혹 있어도, 그들은 클럽 임원진과 막역한 사이다. 아무리 못 쳐도 임원진들이 데리고 놀아주니 그들에게는 문제가 전혀 없다. 하지만 쭈뼛거리다 운동은 하고 싶어서 클럽에 가입한 사람이 처음 가보면, 아 정말 당황스럽다. 당신의 실력을 테스트하기 위한 게임에서 기대 이하의 퍼포먼스를 보인다면, 그게 당신의 마지막이다. 아무도 당신을 게임에 껴주고 싶어 하지 않을 것이고, 사정사정해서 들어간 게임에서 당신 때문에 게임을 져버리면, 죄책감 때문에라도 더 이상 껴달라는 말을 하기 어렵다. 그렇게 한 번, 두 번 나가다가 비싼 입회비만 내고 결국 더 이상 나오지 못하게 된다.


  이걸 버티고, 사람들과 친해져서 인맥을 이용해서 게임에 들어가는 사람은 정말 소수다. 애초에 그런 수준의 철면피를 쓸 줄 알아야 하고, 아주 높은 수준의 친화력이 있어야 한다. 사실 뭐 그런 거 없이 잘생기거나 예쁘면 알아서 사람들이 모이기도 하더라. 확신컨대, 그런 사람은 거의 없다. 대부분 위에 말한 것처럼 어영부영하다가 쫓겨나듯이 나간다.


  내 경우는 조금 특이했다. 평소에 친화력이 낮은 편은 절대 아니고, 철면피도 어느 정도 있지만, 쉬려고 운동하러 가서까지 심력을 소모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그냥 가만히 있었다. 계속 가만히. 누가 날 봐줄 때까지. 당연히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고, 가끔 눈에 뜨일 때에만 게임에 들어갔다. 놀랍게도 그 상태로 반년을 넘게 보냈다. 체육관에 들어가면 보이는 사람들에게 인사하고, 혼자 구석에 앉았다. 아무도 말을 걸어주지 않아서, 쉴 때는 핸드폰만 바라봤고, 게임을 하자고 부르기 전까지 그냥 서성이기만 했다. 물론 게임을 하다 보면 자연스레 면식이 생기고, 말을 나누는 사람들이 생기지만, 크게 중요하게 작용하지는 못했다. 정신 차려보니 나는 그냥 말 없는 애가 되어있더라. 재밌는 건, 굳이 그 상황을 바꾸고 싶지 않았다. 내가 억지웃음을 지으며 그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앉기가 싫었다. 왠지 지는 것만 같았다. 그래서 버텼다. 그리고 어느새 ‘항상 있지만, 말은 없고, 게임은 좀 쳐서, 사람 부족할 때 부르는 애’로 지위가 올라갔다. 이제는 운동하러 가면, 체육관 ‘인싸’들과 같은 수의 게임을 친다. 하등 쓸데없지만 뭔가 이겼다는 기분이 들었다. 그 사람들에 이긴 것이 아니다. 그 사람들은 적어도, 혼자 있는 애를 내버려 두지 않는 좋은 심성을 지녔다는 것이 증명된 것이기에. 하지만 체육관 첫 입문자가 이렇게 배척받을 수밖에 없는 환경에서 버텼다는 사실이 왠지 큰 자신감이 되었다.


  그 시기를 버티고 나니, 체육관을 벗어난 어떤 곳에서도 혼자 있는 것이 그렇게 어렵지 않게 되었다. 혼자서 간 결혼식에서 끝까지 꿋꿋하게 앉아 코스를 다 먹고 나올 때도, 문과생들로 가득한 집단에 들어가 앉아있을 때도, 집단 속의 외로움을 견디는 법을 알았다. 쓸데없는 능력이 생긴 것 같지만, 누구도 쉽게 얻을 수 없는 것이기에 자랑스럽긴 하다.


  그럼에도 사실 그런 걸 원했다. 체육관에 들어가면 많은 사람들이 반겨주고, 서로 근황을 나누고, 먹을 것도 나누고. 게임을 짜기 전에도 이미 같이 치자는 사람이 여럿 있고, 한 게임이 끝나면 다음 게임 짜려고 눈치 안 봐도 되는, 그렇게 마음 편하게. 어느 누가 외로움을 견디는 걸 좋아하겠는가.


  그래도 이 시국이 끝나 또다시 체육관에 들어가면 아마 또 입 닫고 앉아있을 것 같다. 항상 마음 한편엔 누가 말 걸어주면 좋겠다 생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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