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하려면 건강해야지
종강을 한달즈음 앞두고 손목에 통증이 시작됐다. 처음엔 웨이트를 할때만 통증이 있었는데, 정신차려보니 문을 열때도 통증 때문에 깜짝깜짝 놀라고 있더라.
회전근개 부상으로 꼬박 1년을 고생했던 경험으로, 이번엔 바로 학교 앞 정형외과에 갔다. 의사에게 radius와 carpal bone 사이의 통증이 있다고 말했고, x-ray 상에는 이상이 없으니 힘줄에 염증이 생긴거라 하셨다.
그렇구나. 단순 염증이구나 안심하고 주사를 맞고 집으로 돌아와서 며칠간 쉬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러면 괜찮아질거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괜찮아졌다. 운동을 쉰지 1주 정도 지나니, 일상생활에서의 통증은 완전히 사라졌다. 그래서 안심했다.
그러다 2주가 지나면 다시 찾아오라는 의사의 말이 기억나서 다시 병원으로 향했다.
의사는 또다시 주사를 손목에 놓아주었고, 며칠만 더 쉬면 완치 될 예정이니 운동하지 말고 참아달라고 말했다.
그리고 주사를 맞고 학교로 돌아와서 공부를 시작하려는 찰나, 뭔가 잘못됐다. 손가락이 구부러지지 않아서 펜을 손에 쥘 수가 없었다. 당혹감에 식은땀이 흘렀다. 손을 쥐었다 폈다 계속해서 반복했지만 오른손은 구부러지지 않았다. 당혹감이 어느새 공포로 바뀌었다. 짧은 지식으로 무엇이 문제인가 생각해보았고, 결론은 주사밖에 없었다.
바로 병원에 갈 준비를 했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당황스러웠다. 어디로 가야하지.
학교 앞에 수부를 진료하는 의원급 정형외과는 두 군데였다. 한군데는 내 예과를 망친 어깨 돌팔이. 다른 한군데는 방금 주사를 놓아준 그 사람.
혼란스러웠다. 주사를 놓아준 사람에게 가자니, 괜찮은 척하며 책임을 회피할 것 같고, 다른 곳으로 가자니 내가 당했던 기억이 떠올라 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학교에서는 조금 거리가 있는 새로운 병원으로 갔다. 초조하게 X-ray를 찍고 기다리자, 내 차례가 되었다.
의사는 손을 꼼꼼하게 진료했고, 주사를 너무 깊게 찔러서 손목 안쪽의 flexor(굽힘근)에 약물이 들어간 것 같다는 소견을 냈다.
정확한 진단을 위해서는 큰 병원에서 MRI를 찍어보라는 말에 곧 있을 시험이 걱정되기 시작했다. 시험은 당장 2주 뒤였고 손가락이 움직이지 않아서 강의를 들을 수조차 없었다. 거기다가 큰 병원까지 오갈 시간을 생각하니 갑자기 눈 앞이 캄캄해졌다. 유급에 대한 공포감이 몸을 휘감았다. 2차 시험의 범위는 1차보다 훨씬 많았고, 이미 강의는 밀린 상태였다. 무조건 빨리 치료를 받아야했고, 근처의 큰 병원은 학교 대학병원밖에 없었다. 학교 병원의 수부 전문 교수님의 가능한 진료 시간은 2달 뒤였고, 의미가 없었다. 응급실이라도 가봐야하나 라는 생각이 들었을 때 즈음 비슷한 부위를 다쳤던 선배가 차라리 수부 전문 병원으로 가보라는 조언을 해주셨다.
다행히, 학교가 있는 지역에 큰 수부 전문 병원이 있었다. 대표 원장 두 명도 마침 학교 선배였고, 어차피 선택지는 그 곳밖에 없었다.
우울감에 휩싸인 주말을 지나 새로운 월요일, 눈을 뜨자마자 씻고 아침도 거른채 병원으로 향했다. 3일 사이에 손가락의 마비는 조금 풀려있었고 진료를 봐준 선생님은 곧 다 풀릴거고, 힘줄의 손상은 없으니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그래서 다 끝났다고 생각했다. 이제 며칠 쉬면 강의 듣고 운동도 할 수 있을거라 생각했다.
그리고 한 달이 지난 뒤 종강을 했을때, 없어지지 않는 ulna 부위의 통증에 병원을 다시 찾았다. 의사는 대체 왜 한 달 동안 다시 오지 않은건지를 물었고, 학교 후배임을 밝히자 본1이 끝났음을 축하해주며 앞으로는 매주 와야한다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진단명이 궁금해서 의사의 모니터를 살펴보자 ‘Rt. TFCC injury’ 라는 서술이 보였다. 해부학을 배웠지만 TFCC가 무엇인지는 전혀 감도 잡히지 않았다. 집에 오는 길에 검색하고 나서야 ulna와 carpal bone 사이의 연골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 부위가 무혈부위이기에 자연관해가 어려운 점, 반드시 보호대를 차고 생활해야한다는 점도 알게 되었다.
또 다시 절망이었다. 평균적인 치료기간은 3달이었고, 3달이면 내 다음 학기가 시작하고도 남는 시간이었다. 다행히 의사는 2달 정도 보호대 잘 차면 운동도 다시 시작할 수 있을거라 해주었지만, 애초에 방학때 증량이 목표였던 나에겐 절망이었다. 애초에 이젠 증량이 문제가 아니었다. 운동을 쉬고 3주가 지나면 실질적인 근손실이 시작되고, 경험상 2달이면 절반 이하의 근력으로 회귀한다.
다행히 글을 쓰는 지금은 치료를 받은지 3주차가 되었고, 통증은 없어졌고 근육의 위약감도 거의 사라졌다. 인대 강화주사(프롤로 주사)를 2번 맞았고, 하루 중 밥 먹는 시간을 제외한 모든 시간에는 보호대를 차고 있었다.(진짜 종강하고 다쳐서 다행이다.) 아직 안심하기에는 이르지만, 애초에 이 질환이 자연관해가 거의 불가능한 점, 수술적 치료를 받아도 예후가 좋지 않은 점을 생각했을때 정말 다행이라 생각한다.
온갖 걱정을 하며 인터넷을 뒤졌지만 자연적으로 나은 사람을 한명도 보지 못했다. TFCC 부상은 운동을 하는 사람이라면 발현하기 쉬운 환경이기에, 정말 많은 사람들이 인터넷에 글을 올리고 질문을 한다. 그래서 내가 그 치료기를 써보려고 한다. 치료기라 해봤자, 손목에 보호대 차고 주사 맞는게 전부지만, 그래도 이 질환이 어떻게 진행되었고 어떤 통증이었고, 재활은 어떻게 했고, 그래서 결국 운동을 다시 할 수 있게 되었다 까지 쓸 수 있게 되면 좋겠다.
새해 첫 소원이다. 제발 후유증 없이 관해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