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完
작년 11월인가 손목을 다치고, 그로부터 약 10개월이 흘렀다. 시간 참 빠르다. 필기를 못해서 강의록을 빌린게 엊그제 같은데.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내 손목은 90% 정도 회복되었고, 최근 두어달 사이에는 이렇다할 문제를 느끼지 못했다. [TFCC 치료기 - (2)]에서 소개한 손목 재활 방법을 약 반년에 걸쳐서 수행했고, 그 뒤로는 따로 재활치료도 병행하지 않았다(애초에 정형외과에서는 재활 치료를 소개한 적이 없기도 하고). 내가 수술적 치료까지 요하지는 않은 경증의 TFCC 였던 것도 있겠지만, 초기에 이 악물고 3달간 온종일 손목 보호대를 차고, 재활치료를 하루도 빼놓지 않았던 것이 크게 작용했다고 본다. 5월까지는 샌드백을 치고 오면 손목이 아팠고, 혹여나 너무 무거운 짐을 오래도록 들고 있는 날이면 어김없이 자기 전 손목이 시큰거렸다.
복싱, 헬스 등 운동은 아직까지 하고 있음에도 별다른 불편은 없다. 물론 대전제는 '손목의 외회전'을 배제한 상태로. 바벨컬과 같이 손목의 회전력이 가미되는 동작은 아직도 '아 염증 생기겠다.' 라는 느낌이 들어 가급적 시도하지 않는다. 흔히 추감기 운동이라고 불리는 악력 운동도 다치기 전에는 꽤 자주 했었는데, 간만에 해보려고 시도하자마자 손목에 느낌이 와서 그만두었다. 아마 배드민턴도 시도는 안해봤지만, 다시 하기 어려워보인다. 의외로 가장 문제가 될거라 생각했던 복싱이 오히려 문제가 없더라. 물론 손목이 꺾이지 않기 위해 부단히 신경쓰긴 하지만, 아직 염증이 올라올거라는 느낌이 들지는 않았다. 아 손바닥 대고 푸쉬업은 시도조차 할 수 없다. 그냥 정권 단련하는 느낌으로 주먹쥐고 수행하기로 했다.
문득 의사 선생님이 해주셨던 말이 떠오른다.
"넌 앞으로 그냥 손목이 안좋은 사람이다. 그것만 주의하고 지내면 큰 문제없지만, 평범한 사람들처럼 생각하면 안된다."
어언 1년이 지나 생각해보니, 이게 정답이었다. 특정한 동작을 제외하면, 운동하는 것도 문제가 없고, 끝나고 나서도 통증이 없었다. 다 잘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역시 배드민턴을 못치게된 건 좀 아쉽다. 초등학생 때부터 함께해왔고, 몸치에 멸치였을때도 그나마 '나는 그래도 이건 잘해' 하는 자부심을 갖게 해준 고마운 운동이었다. 테니스 엘보에, 발목 인대 파열에 정말 많이도 다쳤고, 동아리를 운영하면서는 인간관계에 여러번 어려움을 겪기도 했지만, 그래도 아쉽다. 내 발로 또래 하나 없는 동호회에 나가서, 동호인들 눈치만 살살 보다가 겨우 한 게임 들어가고, 아무도 말 걸어 주지 않으면 4시간 동안 한마디도 하지 않고 운동만 하고 와도 즐거웠다. 학교에 와서도 운동하고 싶어서, 우리 학과 사람 하나 없는 동아리에 들어가 또 몇 시간 혼자 기다려가면서 운동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배드민턴 치는게 좋았다. 가끔 부모님이 여쭤보신다. 배드민턴 못치는거 어떡하냐고. 내가 이 스포츠에 부단한 애정을 쏟았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아시는 분들이라, 오히려 선뜻 아쉽다는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그냥 괜찮다, 어쩔 수 없지 뭐 하고 말게 되더라. 그래도 아직까지 장비는 처리를 못하겠다. 아직도 복싱장에서는 몸 풀 때 배드민턴 때 수없이 반복했던 빈 스윙으로 어깨를 풀고, 스텝을 밟을 때도 자꾸 습관적으로 스플릿 스텝을 섞게 된다. 참 뭐랄까.
그렇다 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