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살 대학생 3학년을 앞두고 휴학을 선택했다. 4학년 이후에는 정말 취업 준비를 해야 할 것 같았고, 그 이후 직장에서는 주어진 휴가가 끝이라는 생각이 나를 옥죄어왔다. 주변 많은 친구는 휴학 때 더 많은 공부와 자격증 준비로 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나는 휴학의 뜻에 충실했다. '쉴 휴', '배울 학' 배움을 잠시 멈추고 오로지 쉬는 것에 집중하고자 했던 선택이다.
2학년 2학기 기말고사가 끝난 후부터 그다음 개강까지 약 15개월이라는 완벽한 나의 시간이 주어졌다. 그 시간은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으며 평생에 이런 시간이 언제 또 있을까 싶은 그런 날들이었다. 학교 다니면서 장학금은 항상 받아서 주머니는 넉넉했지만 그렇다고 여행비까지 충족되는 건 아니었다. 여행비는 가끔 주말 아르바이트를 하며 조금씩 모으기 시작했다.
나의 버킷리스트 중 하나는 생일을 혼자 맞이하는 것이었다. 내가 나와 가장 친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계획한 '나'와의 여행. 그렇게 나는 자신에게 제주도행 비행기 티켓을 선물했다. 결제하면서도 떨리는 내 손을 멈출 수 없었다. 공황장애 이후 친구들과 여행은 가봤지만 혼자 가는 것은 처음이라 잘 다녀올 확신이 없었다. 주변에서 여자 혼자 위험하게 왜 가냐는 말을 들을 때마다 공포심은 더 확대됐지만 괜찮다며 아무렇지 않게 웃으며 그 말을 애써 넘겼다. 사실 그 괜찮다는 말은 스스로 다독이는 말이었다. 방에 들어왔을 때 혼자서 비행기 표를 취소할까 말까를 수없이 생각했다. 또다시 시작되는 공황장애. 내 심장이 요동치고 숨이 가빠왔다. 병원에서 알려준 호흡으로 천천히 내쉬고 있지만, 도대체 효과가 있는 건지 모를 정도로 진정이 되질 않았다. 침대에 불을 끄고 누웠을 때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나왔다. 혹여 누가 들을까 소리도 내지 못하고 혼자서 눈물로 베개를 적셔왔다. 내가 너무 스스로 한심해서 미칠 지경이었다. 나는 사회적으로나 신체적으로나 법적으로도 완벽한 성인이다. 하지만 아직 자립하지도 못했으며 혼자서는 아무것도 해낼 수 없음에 답답했다. 이 답답함은 곧이어 무서움으로 변질하였다.
'내가 이것도 혼자 못하면 어쩌지? 내가 이것도 혼자 못하는데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겠어?'
이러한 생각이 나를 좀 먹기 시작했고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 해낼 거라는 공포심에 헤어 나올 수 없었다. 자신을 믿지 못하고 계속해서 의심은 커져만 갔다. 내 감정을 내가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지배당하고 있었다. 나는 내 마음에 의해 이리저리 흔들리고 또 끌려다녔다. 나는 어른이지만 어른이지 못한 것이다. 어른이 되려면 멀었고 그래서 나는 더욱 그 여행을 가야 했다. 여행은 의, 식, 주 그 외 모든 것들이 나의 선택이고 그것이 나의 여행이 된다. 여행이 삶의 축소판이라는 표현이 딱 맞는 표현이라 생각했다. 나의 모든 삶은 내 선택들로 이루어지는 것들이고 그래서 그 여행을 포기할 수 없었다. 포기해도 나는 수백 번이고 수천 번이고 다시 도전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이렇게 집구석에서 아무것도 못 하는 바보가 되기 싫었으니까. 비행기 표는 취소하지 않았다. 표를 버리는 한이 있어도 나는 비행기 앞까지 가서 결정하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렇게 나는 매일 밤 찾아오는 공포와 두려움에 싸우고 화해하고 달래는 것을 반복하다 당일 아침이 되었다. 너무 무서웠다. 이게 뭐라고 정말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 하는 사람이 될까 봐 무서웠다. 무슨 정신으로 공항에 도착했는지도 모르겠다. 비행기를 타는데 창가 석을 잡았지만 정작 창문 밖을 보니 내가 정말 떠난다는 생각에 창문을 닫았다. 나는 지금 작은 공간에 1시간 있다가 그냥 내리는 거라고 되뇌었다. 그렇게 최면을 걸어야지만 그 공간에서 버틸 수 있었다.
그렇게 나의 첫 혼자 여행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