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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뿐 Nov 19. 2024

첫 공황장애

 대학교에서 면접을 보러 오라고 연락이 왔다. 같은 반 친구 지연이도 그 학교에 면접을 보러 간다고 나보고 같이 가자고 했다. 같이 갈 사람이 있어서 좋았는데 지연이 아버지께서 태워다 주신다니 더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면접 당일 나는 지연이네 집 근처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차 한 대가 내 앞에 멈춰 섰다. 차를 타니 아버지와 어머니 두 분 다 계셨다. 딸을 응원하러 같이 간다는 것이다. 가는 내내 대화도 많았고 행복해 보였다. 지연이가 왜 그렇게 밝은지 알 것 같았다. 같이 잠시 있기만 해도 안정됐고 참 좋으신 분들이라 생각했다. 지연이는 나에게 원래 같이 가기로 했던 A 대학교는 가지 않고 B 대학교에 간다고 했다. 면접 시간이 겹쳐서 B 대학을 선택했다고 했다. 아쉽지만 알겠다고 했다. 나는 B 대학 근처 시외버스정류장에 내려다 주셨다. 내가 가는 곳은 여기서부터 시외버스를 타고 약 1시간은 더 가야 했다. 지연이와 지연이 부모님께 감사 인사를 전하고 나는 내가 가야 할 길을 갔다.


 매표소에서 티켓을 사고 시외버스에 몸을 실었다. 그렇게 출발한 지 5분이 지났을까 갑자기 머리가 핑 돌고 속은 토할 것 같고 배는 아파졌다. 오만가지 생각이 나를 덮쳤다.

 '내리고 싶다. 나 죽을 것 같은데. 지금 당장 여기서 죽을 것 같아. 심장이 너무 뛰어. 머리는 왜 이렇게 아프지. 토할 것 같아. 내가 이렇게 아픈데 타 지역 도착해서 쓰러지면 누가 날 신고는 해줄까. 병원은 어떻게 가야 하지. 내가 쓰러졌을 때 납치를 당하면 어쩌지. 버스가 가다가 사고가 나면 어쩌지. 지금 바로 내가 죽을 것 같은 기분은 뭐지. 내가 미친 건가. 내가 미친 거면 어쩌지.'

 터무니없는 생각들이었다. 이 생각을 하는 와중에도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을 거라는 것쯤은 너무 잘 알고 있었다. 버스가 사고 날 확률도 내가 죽을 확률도 낮다는 걸 너무 잘 인지하고 있었다. 나를 죽이고 있는 것은 모든 상황이 아니라 내 생각들이 나를 죽이고 있었다. 나는 생각을 멈춰야 했다. 혹시 음악을 들으면 나을까 해서 이어폰을 귀에 꽂고 소리를 높였다. 노래를 듣고 있자니 토가 나올 것 같았다. 이어폰을 내팽개쳤다. 살면서 처음 드는 감정들이 밀려와서 나를 삼켜왔다. 버스 안에서 앞 좌석 뒤에 달린 손잡이에 머리를 기대고서 도착할 때까지 내내 죽음의 공포에 시달렸다.


 도착하자마자 내려서 화장실로 달려갔다. 가는 도중에 토가 나오려 했지만, 그 와중에 누가 치워야 한다는 생각에 다시 삼켰다. 냉큼 화장실로 달려가 변기에 토를 했다. 속을 다 비워내니 그제야 제정신이 조금씩 들었지만 이미 처음 드는 감정들 속에 지쳐버린 나는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엄마한테 전화했다. 나는 혹시 걱정할까 봐 이러한 상황에 설명은 하지 않고 그저 잘 도착했다고 말하고선 아무렇지 않게 그냥 면접 보지 말까? 하고 툭 말했다. 엄마는 왜 거기까지 가서 안 보고 오냐고 보고 오라 했고 나는 조금 더 강하게 그냥 지금 집에 가고 싶다고만 했다. 그러자 엄마는 말했다.


 "거기까지 가서 그것도 못하면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겠어. 잘하고 와."


 정곡에 찔렸다. 그 말에 내가 안 할 리 없었다. 더 이상 토할 것도 없었고 속이 편해졌지만, 여전히 두통은 심하게 남아있었다. 우선은 근처에서 가장 큰 병원에 갔다. 접수하시는 간호사가 어디가 아프냐는 말에 머리도 아프고 속도 안 좋고 뇌가 좀 아픈 것 같다고 얼버무렸다. 정작 정신이 이상하다고는 말을 못 했다. 스스로 정신병이라고 인정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죽을 것 같다는 생각이 나를 덮쳐서 두통이 왔다고 하면 이상하게 볼 것 같았다. 그 당시엔 공황장애란 단어도 생소했고 지금처럼 연예인들이 하나, 둘 고백하던 때도 아니었다. 그렇게 내 병명도 모른 체 내가 어디가 아픈지 왜 아픈지 몰랐다. 간호사는 내가 뇌가 아프다니까 이상하게 쳐다보면서 신경외과로 접수를 해주었다. 의사 역시 그저 두통에 대한 약만 처방해주었을 뿐 별말하지 않았다. 나는 그 약이 지금의 나의 상태에 맞게 처방한 것이 아니란 것쯤은 알았다. 내가 진짜 내 상태를 말하지 않았으니까.


 면접은 시원하게 떨어졌고 나는 붙었어도 그 학교는 가지 않았을 거라 신경도 쓰지 않았다. 다시 그곳에 가고 싶지 않았기에 나는 내가 있는 지역의 대학교에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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