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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뿐 Nov 26. 2024

미래에 사는 사람

 독일 워킹홀리데이를 가고 싶어서 휴학 중 5개월은 죽어라 아르바이트만 했었다. 평일 아르바이트를 하면서도 대타가 필요하면 주말도 나가고 연장 근무까지 했다. 그렇게 5개월 동안 500만 원을 모았다. 나름대로 계획도 완벽했다. 독일 유학생들이 자주 사용하는 사이트에 매일 접속해서 일자리를 알아보고 기숙사가 있는 어학원과 대학교 등 열심히 알아봤다. 독일어 스터디도 가입하면서 열심히 독일어 공부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가족들에겐 내가 80% 정도 모든 계획을 실행에 옮길 때까지 말하지 않았다. 허황한 꿈이나 입만 떠드는 사람이 되기 싫어서 몰래 준비하고 있었다. 어쩌면 스스로 증명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혼자서도 자립할 수 있다고 말이다. 비행기 표도 샀고 이제 어학원만 등록하면 되는데 문득 내가 왜 가야 하는지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물론 무서움도 있었지만, 그것보다 내가 뭐 때문에 가야 하는지, 왜 이렇게 열심히 돈을 모았는지 갑자기 길을 잃은 기분이 들었다. 분명 이유가 있었던 것 같은데 그 이유가 증발하였다. 여행으로 충분하지 않은가? 유학은 왜 가려고 했지? 열심히 달려오다가 갑자기 뚝 길이 허무하게 끊겼다. 아마 무서움이 내 눈을 가리려고 스스로 합리화를 시키는 것인가 싶지만 무서움과는 다른 마음이었다. 목적을 향해 달려가면 되는 줄 알았다. 그래서 뒤도 안 보고 달려왔다. 근데 그 목적지에 도착하면 그다음은 뭐지? 그곳에 닿으면 내가 행복할까? 나의 이정표는 방향을 잃었고 목적지에 오면 다 될 거로 생각했던 나는 허무함에 도착해있었다.


 나의 계획은 사라졌지만 그래도 유럽은 가고 싶었다. 내가 독일 유학을 스스로 망쳤기에 이번에 간다면 내가 쉽게 취소하지 못할 이유를 찾아야 했다. 복학 중에 나는 꾸준히 해외 자원봉사에 대해 찾았다. 비록 독일은 아니었지만, 영국 자원봉사를 소개해주는 에이전트와 미팅을 통해 스스로 발목을 묶었다. 이젠 큰일 났다. 내가 못 간다고 당일에 취소하면 나는 그 자원봉사의 신뢰를 깨는 것이었다. 이젠 정말로 가야 했다. 총 40일간의 유럽여행을 계획했고 그중 10일이 영국 자원봉사였다.


 자원봉사 합격 통보받은 후 거의 한 달은 공황장애가 와서 혼자 미친년처럼 의자에 앉았다, 일어섰다, 발을 동동거렸다, 난리였다. 일어나지도 않는 일을 미리 상상하며 걱정하고 불안해하고 있었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병원을 갔다. 언제나 정신과는 늘 낯설고 무섭다. 혼자 가는 것은 더 그렇다. 사실 건물은 굉장히 따듯한 노란색으로 되어있지만 왜 이렇게 경계심이 드는지 모르겠다. 주춤거리는 발로 간호사에게 다가가 죄지은 사람 목소리처럼 아주 작게 접수를 하고 기다렸다. 곧이어 내 차례가 되어 의사 선생님을 만났다. 의사 선생님은 항상 들어주는 편이라 말주변이 없는 나는 먼저 말하는 상황이 어색해 무슨 말을 해야 하는지 어려웠다. 내 이야기가 끝나고 선생님은 불안장애에 대한 근본적인 이야기를 해주셨다.


 "어떤 사람이 행복할 것 같아요? 사람은 현재에 사는 사람이 가장 행복해요. 과거에 사는 사람들은 주로 우울증에 걸리죠. 과거의 후회나, 트라우마가 우울증으로 와요. 반면 미래에 사는 사람들은 공황장애가 와요. 일어나지도 않는 일에 미리 걱정하고 불안해하죠. 사람들은 새로운 것에 누구나 두려움을 가지고 있어요. 하지만 그것은 해보지 않으면 모르는 일이죠. 미리 걱정하지 말고 지금 하는 일에 집중하다 보면 우리는 현재에 살 수 있어요. 과거나 미래에 살지 말아요. 걱정을 내려놓고 지금 저와 있는 시간처럼 집중해보면 어떨까요? 누구와 무엇을 하고 있는지요."


 선생님의 말씀이 끝나고 뭔가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정신과는 약도 중요하지만, 환자들은 약을 처방받기보다 마음을 처방받기 원해서 가는 경우가 많다. 나는 혹시 몰라 40일 치의 약을 처방받기 위해 간 거였지만 이미 충분한 처방을 받은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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