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하는 영국 자원봉사는 시골에 있는 작은 학교에서 축제를 도와주는 봉사였다. 11개국이 넘는 곳에서 다양한 사람들이 자원봉사를 왔고 공용어는 영어로 사용되었다. 나는 짐 가득 끌고서 학교 안으로 들어갔다. 직원은 나의 이름을 묻고 원하는 텐트에서 생활하라고 안내를 해주었다. 텐트로 걸어가는데 수많은 서양사람 중에 까만 동양인이 눈에 띄었다. 서로 눈이 마주쳤는데 웃음부터 나왔다. 낯선 곳에서 만나는 동양인이라 반가웠다. 한국인일까 궁금하던 찰나 그 사람은 '안녕하세요'하고 인사를 했다. 동양인은 나를 포함해 한국인 3명이 전부인 듯했다. 외국인들과 친구처럼 다니고 싶었지만, 영어를 제대로 하지 못하니 어느새 자연스럽게 영어 잘하는 한국인들 옆에서 함께 다니게 되었다.
자원봉사자들이 꽤 오자 한 곳에 모이게 되었다. 그중 누가 봐도 예쁜 금발에 단발머리인 클레어가 있었다. 클레어는 이탈리아에서 왔다고 했다. 그녀는 가장 어렸지만 한 번에 모두를 집중시켰고, 가운데 앉아 내뿜는 분위기는 당당함 그 자체였다. 나서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이런 곳에서 영어 때문에 친구도 제대로 못 사귀는 건 싫었다. 그에 비해 클레어는 모두와 쉽게 친구가 되는 모습에 더욱 예뻐 보였다. 곧이어 자원봉사자팀의 리더인 사이먼이 왔다. 사이먼은 자원봉사자들의 각 역할을 나누어 주었고 나는 저녁 식사팀에 들어가게 되었다. 하루에 총 8시간 일하는데 그 외 시간은 자유시간으로 축제를 얼마든지 즐겨도 된다고 했다. 집에서 요리도 안 해 먹는 내가 저녁 담당이라니 걱정이 앞섰다. 칼을 들고 매일같이 어설픈 칼질을 반복했다. 칼질이 서툴러 내 손목은 금세 붓기 시작했고 아픈 손목에 보호대를 차며 계속 이어가야 했다. 그래도 이렇게 몇 시간을 며칠 하니까 금방 익숙해졌고 설거지나 배식 등 다른 자원봉사자들과 같이 일하며 붙어있으니 꽤 친해졌다. 사람들이 착해서 다행이었지만 언어가 능통하지 않으니 역시나 나는 그곳에서 조금 겉돌고 있었다.
고무장갑을 끼고 재료들을 다른 장소로 옮기고 돌아가는데 사이먼이 멀리서 나를 불렀다. 사이먼은 나에게 무슨 일 없냐고 물었다. 나는 아무 일 없다고 고무장갑 낀 양팔을 살짝 들어서 제스처를 했다. 그러자 사이먼은 나를 꼭 안아주며 도움이 필요하면 말하라고 했다. 아마 사이먼은 그때 내 웃는 표정 뒤에 지친 표정을 읽었던 것 같다. 갈 길을 잃은 내 양팔은 그대로 굳었지만 사이먼의 온기는 그대로 전해졌다. 내가 누군가를 이렇게 따스하게 안아준 적이 있었던가. 한국에 있을 때뿐 아니라 나는 늘 스킨십을 그리 좋아하는 편이 아니었다. 친구들끼리 팔짱을 끼고 화장실을 가거나 매점을 가지도 않았다. 오히려 누군가 팔짱을 끼려 하면 쓱 빼곤 했다. 근데 타국에서 누군가 나를 이렇게나 꼭 안아주는 온기가 그 어떤 위로보다 크게 느껴졌다.
점차 생활이 익숙해지고 파티도 하고, 일도 하면서 사람들과 제법 친해졌다고 느껴졌다. 어느 날 축제를 주관하신 교장 선생님 폴은 우리 한국인에게 다가왔다. 뜯어진 커피믹스 봉지를 내밀며 자신은 한국을 좋아한다고 말을 했다. 동글동글 만화에서 나올 법한 폴은 한참을 한국에 대해 말하더니 이 지역을 좀 둘러봤냐고 물었다. 우리가 못 둘러봤다고 이야기하자 마지막 날 지역 구경을 시켜준 후 기차역에 데려다주겠다고 했다.
떠나는 날이 되어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는데 사이먼이 보이지 않았다. 나는 폴에게 잠시 기다려 달라고 말하며 사이먼을 찾으러 갔다. 저 멀리 보이는 사이먼에게 다가가 인사를 건넸다.
"Good bye."
그러자 사이먼은 웃으며 말했다.
"NO, Good bye. See you later."
헤어짐의 안녕이 아닌, '다음에 봐'라는 그 기약 없는 말 한마디가 내 마음을 따듯하게 했다. 아쉬움도, 슬픔도, 속상함도 사라졌다. 우리는 헤어짐을 알고 있었지만, 정말 그 말을 들으니 꼭 언젠가 다시 만날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사이먼 덕분에 나는 그곳에서 마지막 날까지 편안한 마음으로 떠날 수 있었다. 그 사람이 리더라는 사실에 참 고마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