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내가 잘 웃는다고 했다. 나의 첫인상은 차가웠지만 나를 부르면 금세 해맑게 웃는다고 했다. 마치 한 번도 아파본 적 없는 사람처럼 말이다. 집에서는 웃지 않은 지 꽤 됐다. 우리 가족은 내가 무뚝뚝하고 감정이 없어 보인다고 했다. 이렇게 집 안과 밖의 모습이 다르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밖에서 가식으로 웃는 건 아니다. 늘 진심으로 웃었다. 하지만 사람들 속에 있으면 에너지가 다 빼앗겨 지친 느낌이다. 나도 나의 모습에 혼란스러웠다. 집으로 돌아와 내 방으로 들어가면 나는 그제야 숨을 돌렸다. 드디어 나만의 공간이다. 워낙 생각이 많아서 혼자 두면 온종일 생각을 한다. 끊임없는 나의 생각 속에서 가끔 헤어나오지 못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생각이 좋은 쪽으로 흐른다면 좋지만 나쁜 쪽으로 흐르기도 한다. 우울은 언젠지도 모르게 내 안에 조용히 스며들었다. 아, 아닌가. 언제나 내 안에 존재했던 거 같다.
어느 날, '뚝'하고 끊기는 소리가 났다. 마음의 소리가 끊기는 소리였다. 난 내가 긍정적이라고 생각했지만, 그 긍정은 내가 정신을 차렸을 땐 그 어디에도 없었다. 우울증은 그렇게 갑자기 한순간에 나를 덮쳤다. 왜 살아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우울은 쉽게 없어지지 않았고 대학교 4학년 내내 나를 따라다녔다. 괜찮아질 줄 알았는데 점점 더 시간이 지날수록 심해졌다. 이유 없이 우는 날이 많아지고, 공황장애까지 같이 왔다. 숨도 안 쉬어지고 답답함에 가슴을 쳐도 알 수 없는 까만 먹구름은 마음에서 사라질 생각을 안 했다.
1년이 그 상태로 지났다. 우울감과 무력함이 가득했다. 음악도 듣지 않는지 오래다. 평소라면 음악 들으며 기분전환을 했겠지만, 어느 순간 음악을 들으니 기분 나쁘게 속이 울렁거리며 그 어떠한 음악도 나를 위로해 주지 못했다. 햇살 좋은 날, 좋은 음악을 들어도 잠시 뒤면 역겨워져 이어폰을 가방에 집어넣고 속을 달랬다. 그렇게 거의 1년간 음악을 들은 적이 없다. 우울증과 공황장애는 끝이 보이질 않았다. 시간은 그래도 흘렀고, 이 상태로 난 취업 준비를 하고 아르바이트를 했다. 힘들어도 오늘을 살아가는 상황이 정말이지 꼴이 참 우스웠다. 도서관에서 자격증 공부를 하고 나오는데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싶었다.
아르바이트는 집 근처에 있는 햄버거 가게에서 일했고, 주로 카운터를 보고 있었다. 항상 많던 손님이 갑자기 다 빠져나가고 홀로 남게 되었다. 텅 빈 홀을 보며 그 순간 나는 내가 어떻게 하면 고통스럽지 않게 죽을 수 있는지 생각하고 있었다. 내 머리는 갑자기 빠르게 회전했다. 학창 시절 워낙 과학을 좋아해서 그런지 논리적으로 또 과학적으로 내가 죽어가는 방법을 찾아갔다. 나는 나를 죽이는 계획이 짧은 그 순간 끝을 냈다. 나는 나를 살해할 수 있을까. 그 순간 손님이 와서 우선 생각을 멈추고 다시 일을 계속했다. 마감 시간이 되어 홀 청소를 하며 나는 아까 하던 생각을 마저 했다. 내가 나를 죽일 방법을 찾으니 드디어 고통을 끝낼 수 있다는 생각에 작은 희열까지 느꼈다. 이제 내가 눈을 감으면 평온해지겠지. 모든 것이 끝나겠다고 생각했다. 기분이 좋으면서도 슬펐다. 그래도 뭔가 방법을 찾으니 조금은 편한 상태로 청소를 마치고 유니폼을 벗고 옷을 갈아입었다. 아마 이때 느낀 감정은 편함보다 이제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안도감에 가까운 상태였던 것 같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내가 이래도 되는 건가? 나조차도 내가 무서워졌다. 실행만 하면 되는데 죽을 용기가 없어서 며칠간 나는 상상 속으로 매일 나를 죽여갔다. 조용히 죽을 방법을 찾았는데 실행만 하면 되는데 나는 자꾸 망설였다. 남아있는 사람들은 생각하지 않았다. 나를 사랑해 주는 사람이 없는 건 아니었다. 엄마, 언니, 남자친구도 있다. 나를 위해 울어줄 사람이다. 그렇지만 나는 나를 놓고 싶었다.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그 길의 끝이 어디인지도 모른 체 평생 이 상태로 지낼까 봐 무서웠다.
참으로 웃기지. 살아서 뭐 하겠다고 토익학원까지 다니고 있다. 모순이라고 해도 좋다. 나는 내 몸을 끌고 어딘가를 가야 했다. 혼자 두면 위험하니까. 살인은 아무도 없는 곳에서 일어나니까. 내가 나를 죽일까 봐 나를 혼자 두는 건 위험했다. 토익학원에서 LC를 듣고, 쉬는 시간 실시간 검색어에 '종현'이 뜬 걸 보았다. 나는 항상 '푸른 밤 종현입니다.'라는 라디오 애청했다. 종현은 나와 생각이 비슷하다고 생각해 항상 응원하던 사람이었다. 내가 남자로 태어났다면 종현 같은 사람이 되었겠구나 싶었다. 근데 그는 29에 사망했다. 사인은 자살. 그는 어떻게 하면 행복해지는지 생각했던 것 같다. 그 생각이 끝내 그곳에 도달했구나 싶었다. 나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서, 내가 그렇게 될까 봐 무서웠다. RC 수업은 시작되고 멍하니 앉아있다가 수업이 끝났다. 누군가가 나를 잡아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학원을 나서니 남자친구가 앞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