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그뿐 Dec 17. 2024

원하지 않아요

 나는 건설회사에 다니는 보건관리자이다. 보통 건설현장에서는 여자가 드물기에 나 또한 이곳에서 홍일점이었다. 남자들만 있는 세계에서 가장 어린 여자가 들어왔으니 자연스레 주목되었다. 모두 다 잘 챙겨주려고 하는 건 알겠지만 너무 부담스러웠다. 주변 이들은 내가 건설현장에 들어갔다고 하면 남자들이 대우해주니 좋지 않냐는 말들을 쉽게 뱉곤 했는데 난 그 '대우'가 나에겐 차별처럼 느껴졌다. 난 어떠한 대우도 받기 싫었다. 내가 무거운 것을 옮기려 하면 누군가 달려와 힘들지 않냐며 대신 들어주려 했다. 내가 괜찮다고 거절해도 끝내 도와주려는 사람이 있다. 나는 약자도 아니었고 보호해야 할 사람도 아니다. 다른 사람들은 배부른 소리라고 할 수 있겠지만 충분히 혼자 할 수 있는 일이었다. 다행히 팀장님은 나를 강하게 키우려고 '여자' 취급을 하지 않았다. 그곳에서 유일하게 나를 여자가 아닌 보건관리자로서 대해줬다. 누군가가 나를 '아가씨'라고 부르면 팀장님은 꼭 정정해주었다.


 "아가씨 아니에요. 우리 보건관리자 정주임입니다."

 난 아가씨 혹은 여자 취급받는 것보다 정주임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이 나를 더 존중해 주는 느낌이었다.


 "앞으로 혹시 누가 커피 타 달라고 하거든 커피도 타지마. 넌 보건관리자로 채용된 거지 커피 타라고 채용한 거 아니야. 여기는 셀프다."

 커피를 타보지도 않았지만, 팀장님의 모든 말들이 감동이었다. 내가 나로서 존재하고, 내 역할에만 충실할 수 있도록 도와주셨다.


 그러나 어디를 가도 꼭 상극인 사람들이 존재한다. 그중 한 명은 소장님이었다. 평소에 엄청 나를 챙겨주는 척하지만 착한 사람 코스프레라고밖에 안 느껴졌다. 본성은 술을 마시면 더 잘 드러났다. 그렇게 술을 좋아하면 혼자 마시지 꼭 옆에 있는 사람도 술을 마시게 한다. 내 몸은 애초에 술이 맞지도 않고 좋아하지도 않아서 자연스레 금주하고 있다. 내가 술을 마신 건 살면서 고작 20살 넘어서 2~3년 정도 마신 게 전부이다. 회사에 들어와서는 내가 술을 마시지 않는다고 첫 회식 때부터 말해와서 억지로 권하는 사람은 없다. 소장님 빼고 말이다.


 평소 다른 팀 차장님이 나를 엄청 예뻐하셔서 자주 나를 데리고 다니며 세뇌 교육을 했다.

 "회사생활에서 꼭 필요한 건 거절하는 방법이야. 항상 '안 돼요, 싫어요, 하지 마세요.'를 꼭 기억하렴."

 이렇게 말씀하시면서 만나는 사람마다 앞에서 뜬금없이 그냥 해보라며 엄청나게 시키셨다. 실제로 나는 거절을 잘 못 해서 대학생 때만 해도 엄청 힘들었다. 억지로 하면 내가 힘들고, 거절하자니 미안했다. 그런데 그 연습이 도움이 되었는지 점점 거절하는 기술이 늘었다. 특히 술 앞에서는 단호하게 말할 수 있었다. 소장님 앞에서도 나는 분명하게 나의 의사를 밝혔는데 점점 날이 갈수록 강요는 심해졌다.


 협력업체까지 모인 전체 회식 자리에서 맨 구석에 있는 나를 굳이 지목하며 비싼 양주를 한 잔 주신다고 받으라 했다. 소장님이 술을 따라주는 것이 예쁨 받는 뜻인지 나를 챙겨준다는 뜻인지 알 수 없으나 나에겐 그 어떤 것도 아니었다. 순식간에 조용해졌고 모두 우리를 보고 있었다. 내가 거절하자 소장님은 들고 있는 팔이 아프다며 절대 내려놓지도 않고 내가 술잔을 받기만 기다렸다. 그 눈빛은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한 번 해보자'하는 눈빛이었다. 숨 막히는 긴장감이었다. 나는 이 더러운 싸움에 끼고 싶지 않았지만 나를 지킬 수 있는 건 나뿐이었다. 나는 소장님께 다가가서 소장님 손에 들려있던 양주병을 내려놓고 사이다를 쥐여주며 해맑게 말했다.


 "소장님, 저 사이다 한 잔 받겠습니다!"

 소장님은 상황 분위기를 느끼고서 이 악물고 웃으며 내 잔에 사이다를 따라주셨다. 한시름 놓은 건가 안심하던 찰나 소장님은 말씀하셨다.


 "마음에 드는 남자가 없어서 그래? 여자들은 마음에 드는 남자가 있으면 취한척하며 달라붙던데. 우리가 마음에 안 드나 봐?”


 나는 그저 어이없는 웃음만 지었다. 나는 술도 안 마시고 술도 안 따라주니 자신의 말을 무시한다고 생각을 하는 것인지 심술은 더 심해졌다. 다른 협력업체 박 소장님은 이상한 분위기를 느끼고서 이 분위기를 깨려고 자기 회사 김 대리 이야기를 했다. 김 대리가 나를 좋아하는데 남자 친구가 있냐고 물었다. 나는 있다고 대답했지만, 박 소장님은 김 대리가 착하다며 사람은 잘 맞는 게 중요하다며, 김 대리는 잘 맞춰줄 거라 했다. 그러자 우리 소장님이 중간에 끼어들었다.


 "요즘 애들 성격 잘 맞는 게 중요하나. 속궁합이 중요하지."


우리 소장님은 혼자 껄껄 웃으며 즐거워했다. 그 이야기를 들은 주변 사람들은 모두 소장님을 말리기 바빴고, 박 소장님도 어쩔 줄 몰라했다. 나는 더 이상 억지웃음을 짓지 않았고 일부로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대우든 배려든 무언가 해 주면 그만큼 자신도 받길 원하는 사람들이 있다. 당연한 보상심리겠지만 그런 건 애초부터 욕심이다. 상대방이 원하지 않은데 챙겨주려는 것은 자신을 위한 것이지 상대를 위하는 것이 아니다. 상대가 원하지 않은 배려는 안 하는 것이 배려이자 존중하는 방법이라 생각한다. 몇몇 사람에게는 예의상 웃으며 거절을 하면 그 거절이 얼마나 온 힘을 다해 내뱉는 한 마디인지 모른다. 상대방은 장난인 줄 알고 계속해서 제안하면 제안할 때마다 계속 거절을 반복하는 게 너무 힘들다. 미안함, 싫음, 곤란함이 한꺼번에 찾아온다. 끝은 결국 서로 마음 상할 뿐이다.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아무것도 원하지 않으면 인간관계가 좀 더 편해지지 않을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