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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뿐 Jan 07. 2025

버티고 견디는 삶

 첫 입사를 하고 조금 당황했다. 회사에 보건관리자가 나밖에 없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무슨 일을 하는지 직무에 대한 인수인계가 있을 줄 알았다. 나름 대기업이라 매뉴얼 정도는 있을 줄 알았는데 전무했다. 건설업에 보건관리자가 들어온 것은 몇 년도 안됐다. 그래서 그런지 같이 일하는 동료들도 내가 무슨 일을 하는지 몰랐고, 나는 더욱 알 길이 없었다. 나는 안전보건팀으로 안전관리자와 보건관리자로 팀이 구성돼있다. 팀장님도 나에게 보건관리자가 무슨 일을 하는지 몰라서 가르쳐줄 게 없다고 미안해하셨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타 현장에서는 보건이 아닌 안전에 관한 일이 넘어오곤 한다고 들었다. 나는 내가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지도 모른  척 앉아 있긴 싫었다. 회사에서는 내가 전문가로서 그 자리를 앉혔을 텐데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는다 해서 내가 멍청히 있을 순 없었다. 그래서 내가 내 일을 찾기로 했다. 나의 출퇴근 시간은 총 3시간이다. 그 시간 동안 지하철에서 보건에 관해 공부하고, 회사에서는 공단, 보건복지부, 질병관리본부 등 보건과 관련된 모든 사이트를 들어가 정보를 얻고 내가 해야 하는 일을 찾았다. 신규 보건교육을 들을 때 다른 보건관리자들을 만날 수 있었는데 그때 만난 분들에게 연락하거나, 같은 회사지만 얼굴도 모르는 다른 현장 사람에게 메신저를 보내서 업무에 관해 묻기도 했다. 법도 모르는 내가 매일 법제처 들어가 모르는 용어들 사이에서 헤매기도 하고, 협력업체에서 주는 차트를 해석하지 못해서 전화를 붙들고 사정하며 협렵업체 분에게 차트 해석하는 법을 알아냈다. 그렇게 아주 이른 시간 안에 나는 현장뿐 아니라 본사에서도 인정해주었던 것 같다.


  그러나 여전히 힘든 일이 하나 있었다. 그건 바로 강의하는 것이다. 한 달에 한 번 모든 노동자와 관리자를 대상으로 안전교육장에서 안전관리자는 안전을, 보건관리자는 보건을 교육한다. 내가 강의라니 말도 안 되는 상황이었다. 심지어 관리자들 앞에서 하는 것은 더 떨렸다. 각 분야 전문가들을 앉혀두고 누가 누굴 가르친다는 것인지 모르겠다. 초반의 나는 부끄럽게도 기사 자격증만 가진 사람이었지 보건에 대한 지식은 별로 없었다. 그리고 강단에 나선 것은 대학생 때 앞에 나가 발표한 것이 전부였다. 대학생 때도 앞을 제대로 못 보고, 대본 읽기에 바빴다. 그런 내가 수십 명을 모아두고 앞에서 가르친다니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교육 날짜가 잡히고 나는 3주 전부터 준비했다. 우선 강의 주제를 정하고 엄청 공부했다. 그리고 강의안을 만들고 혹여 중간에 예시로 들만한 사건, 사고도 준비했다. 대본은 내가 읽기 쉽게 글자를 크게 하고, PPT가 넘어갈 때를 맞춰 대본 앞글자마다 형광펜을 칠했다. 수 없이 연습하고 대본을 안 보고도 강의안을 넘기기 시작했다. 이 상태로만 하면 좋을 텐데 심장이 두근두근했다.


 교육 날이 다가왔다. 팀장님께는 내가 먼저 강의를 하겠다고 했다. 혹여 내가 실수를 해도 뒤에는 든든한 팀장님의 안전 강의가 있으니 수습해주실 거라 믿었다. 많이 준비했는데도 수십 명 앞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떨렸다. 준비하고 강의안을 켰다. 순간 앞이 새까매졌다. 나는 앞이 새까매진다는 표현이 그냥 막막함의 또 다른 표현이라고 생각했지만 아녔다. 진짜로 눈앞이 안 보였다. 가끔 빈혈이 올 때면 앞이 안 보이는데, 빈혈이 온 것처럼 새까매졌다. 귀도 잘 안 들려 소리가 윙윙거렸다. 교탁이 없었다면 내 몸을 지탱할 수 없었을 것이다.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고 귀와 얼굴이 새빨개졌다. 울면서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저기 빛나는 곳에 나가는 문이 있는데, 몇 걸음만 가면 도망칠 수 있는 충분한 거리였다.


 '팀장님한테 못하겠다고 말하고 도망칠까? 이해해주실 분인데. 차라리 쓰러졌으면 좋겠다. 왜 앞은 안 보이는 거야. 대본조차 눈에 들어오지 않잖아.'

 오만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그래도 물러설 순 없었다. 이렇게 도망치긴 싫었다.


 '버티자. 잘하든, 못하든 버텨보자. 두 다리로 버티자. 도망치지 않아.'

 내 소개를 하고 강의를 시작했다. 내 목소리가 떨리는 것이 내 귀로 들려왔다.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고 귀와 얼굴이 새빨개지는 것이 느껴졌다. 오감으로 내가 떨리는 것을 스스로 인지하니 더 떨렸다. 사람들 눈도 제대로 못 마주쳐서 멀리 있는 기둥을 보거나 한 사람을 정해서 봤다. 떨리니까 준비한 것을 다 하진 못했지만, 무사히 마쳤다. 어떻게 끝내고 돌아왔는지도 모르겠다. 나의 다음인 팀장님의 능숙하고 재치 있는 강의를 보는 내내 감탄의 연속이었다.


 몸의 긴장이 풀렸지만, 여전히 떨림이 있다. 다른 상황 다른 사람들도 같을 것이다. 모두 이렇게 버텨낸 거겠지. 버틴다는 것은 힘든 일이다. 무슨 일이든 세상을 살면서 버티고 견디는 것은 정말 대단하다. 가끔 무능력해 보이는 사람도 한자리에 끝까지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예전엔 저 사람이 어떻게 저 위치까지 올라갔지 의구심이 들었지만, 지금은 아니다. 그 사람은 비가 와도 바람이 불어도 버티고 또 견딘 것이다. 잘하는 것도 대단하지만, 버텨내는 것이 더 대단하다고 느낀다. 결국은 살아남은 사람이란 것이니까. 그러니 더욱 열심히 힘을 길러서 두 다리로 버텨내야 한다. 주저앉아도 되고, 도망을 쳐도 된다. 하지만 일어설 힘이 생기면 그때 다시 일어나서 버티면 되는 것이다. 계속해서 무너지지만 않으면 된다. 우리는 꼭 다시 일어나기 위해 마음도 육체도 힘을 길러야 한다. 손을 땅에 짚어도 되고, 혼자서 힘들다면 누군가에게 기대서도 좋다. 지팡이를 짚고서라도 언젠가는 일어서야 한다. 어린아이가 일어서는 법을 배우는 것이지 다시 눕는 법을 배우는 것은 아니니까. 일어나기까지 수없이 무릎에 상처를 내고 손바닥이 까질 수 있지만 그래도 끝내 우리가 일어난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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