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희붐 Feb 22. 2024

'그' 작은 고추는 존재하지 않는다

        

 오늘은 아주 오랜만에 일을 하고 왔어요. 이제 곧 출근하게 될 레스토랑 겸 바의 오픈을 앞두고 책상 잡기들의위치 조정 겸 청소를 돕기로 했기 때문입니다. 지난 시간 저는 어떤 일도 하지 않고, 무적의 치트키 같은 몸 컨디션을 생각한다며 집에서 쉬며 미래를 몽상하기만 했습니다. 이렇다할 실행이 빠진 그저 상상이고 몽상이었죠. 너무 오랜 시간 일이라는 것으로부터, 사회로부터 멀어져 지냈기 때문일까요. 저는 사람들과 관계하는 것에서도, 일에서도 어수룩 하곤 합니다. 그런데 이제 까짓것 나 못한다! 뭐! 알려주면 금방 배워! 하며 살아가기로 마음 먹었어요. 우리가 어느곳을 바라보느냐에 따라 생각의 초점이 달라진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유기농으로 재배한 농작물에서도 한 때 농약에 절여졌던 땅의 잔여 농약이 검출되는 일이 있는 것 처럼, 한 번 뇌리에 강하게 인식된 어떤 관념은 사라질 줄 모르고 남아있고는 한 것 같아요.



작은 고추가 맵다. 큰 고추는 밍밍하다.

어릴 적 부터 주변에서 끊임없이 들려오던 말입니다. 이런 종류의 소리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었던 건 불과 얼마 지나지 않은 얘기에요. 그 마저도 매년 돌아오는 명절 가족 모임에서는 할머니의 넋두리에서 다시금 만나볼 수 있습니다. 


대략 16살에 키의 성장이 거의 멈췄고, 180이 조금 넘는 저는 영유아기를 거쳐 청소년으로 향하던 매 해 평균 10센치 이상 키가 자라곤 했어요. 어머니께서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말한 바에 따르면 하룻밤 자고 일어나면 좀 자라있는 것 같았다고요. 이 부분에서 저는 당시 종종 상당히 이율배반적인 감정을 느끼곤 했습니다. 


그건 주로 우리 할머니와 할머니의 친구들, 그러니까 할머니즈를 통해 전달되곤 했습니다. 그들은 제게 어쩜이리 길쭉길쭉 키가 크고 예쁘냐~, 키가 크니 보기 좋다~ 하고는 했고, 그러다가도 TV에서 방영되던 시트콤 속 길쭉한 키의 배우를 보면서는 멀대같이 크기만 한 사람은 실속이 부족하며 비실비실 하다느니 하는 말을 하시곤 했습니다. 그러니까 저는 동시에 양 극단의 가치를 지닌 아이로써 어떤 태도를 갖춰야할 지 갈피를 잡았던 것도 같습니다. 일찍이 키가 커서 예쁜 아이인 동시에 키가 크서 실속 없는 비실이. 

할머니즈의 이론을 뒷받침 하기라도 하듯 '작은 고추가 맵다'는 말은 부정할 수 없는 현실 이었습니다. 작은 고추는 늘 미친듯이 매웠어요. 크기가 큰 고추는 아삭이 고추로 불리며 맛 보다는 식감으로만 위상을 떨치더군요. 사람으로 보자면 단거리 달리기 1등을 하는 아이들은 늘 키가 작고 날쌘 아이들 이었거든요. 이야기가 이쯤 되니, 저는 어딘지 야무지지 못하고 엉성하다는 그들의 말을 내면화해 성장하기라도 한 듯 제 스스로가 어딘지 엉성하게 느껴지곤 했습니다. 서른이 넘어서 이런 생각을 한 건 극히 오랜만이군, 하는 생각을 하며 집 앞 슈퍼에 방문해 장을 봤습니다. 마침 슈퍼에서 파는 바나나는 조그만 미니 바나나였고 기존 크기의 바나나 보다 당도가 훨씬 높더군요. 바나나의 속살 까지도 더 샛노란 빛깔 이었습니다. 


어릴적 부터 우리들은 '작은 고추가 맵다'는 말을 '키가 큰 아이들은 어딘가 허술하다'라고 번역했던 것 같습니다. 우리들은 늘 그래왔어요. 학교 입학과 동시에 배우는 것은 줄서기였고, 꼭 누군가는 다른 누군가 보다 더 좋거나 나빠야 하는 환경이 만들어지고는 했습니다. 한 사람의 인생 길을 삶의 초반에 결정해버리고 삶의 길을 좁히는 입시 제도 또한 줄세우기의 한 방편이었습니다. 사람을 숫자로, 점수로 바라보게 했습니다. 우리들의 줄세우기, 어떤 사람의 모습을 그저 특성으로 바라보지 않고, 줄세우기 조건으로 편입 시킵니다. 좋고 나쁨의 정도를 가려서 말이지요. 


지나치게 깊이 뿌리내린 비교와 줄세우기로 인해 우리나라는 오늘의  경제대국을 만들어냈겠지요. OECD 자살률 1위 국가를 만들어 냈겠죠. 우리들은 자신의 특성을 그 특성으로서 인정 받지도, 인정 하지도 못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오늘 저는 아주 오랜만에 일을 했습니다만, 왜인지 스스로가 떳떳하지 못했습니다. 무언가 엉성한 것 같은, 내가 일을 그르칠 것만 같은 기분을 한 소끔씩 느끼며 움직였던 것 같습니다. 마치 어렸을 때 줄곧 들었던 할머님들의 큰 키에 대한 찬양과 힐난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어요. 그러나 이제 알고 있습니다. 그건 제 흠이 아닌 단지 특성일 뿐이라는 것을요. 


작은 고추는 그냥, 매운 것이고

큰 것은 그냥, 아삭한 것일 뿐이라는 것을요.

둘의 기막힌 쓸모는 각기 다른 곳에 있다고요.


이전 02화 써야한다는 믿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