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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작가 Aug 04. 2022

1부)디즈니랜드에서 입사시험 보기

다사다난했던 여름휴가

2016년 초, 해외 프리미엄.. 유아동. 브랜드… 모바일 커머스… 스타트업에서 몇 개월 일했던 적이 있다. 나에게는 생애 첫 스타트업 경험이었다. 바로 직전, 영*대사관에서 계약직으로 일하며 알게 된 대표가 감사하게도 직접 일자리를 제안해주어 이직한 자리었다.


“최적의 IT 기반 물류 솔루션을 통해 프리미엄 유아동 브랜드의 원스톱 모바일 쇼핑 서비스.”


당시 고객들에게 회사를 소개하기 위해, 구구절절 설명하던 게 기억난다. 당시 대표는 유아동 브랜드계의 마켓 컬리가 되고 싶었던 것 같다. 지금 마켓 컬리가 이토록 유명해지고 나서야 대표의 의중을 파악하게 돼서 참 안타까울 뿐이다.


어쨌든, 입사하자마자 한 달 만에 영국 출장을 가서 기가 막혔던 에피소드는 다음 편에 풀기로 하고... 오늘은 나이브한 나의 영혼이 상하는 것이 두려워 우여곡절 후 퇴사하고 디즈니랜드로 가족여행을 갔던 때의 이야기다.



당시 회사를 마지막으로 출근하던 날, 그래서 어디로 이직하느냐, 나에게만 이야기해달라 물어왔던 몇몇 동료들이 기억난다. “디즈니랜드 갑니다”라고 솔직하게 대답했는데, 듣고는 의뭉스럽게 웃으며, 명함 새로 나오면 달라고 했었던 것이 기억난다. 다들 선하고 좋은 사람들이었다. 심지어 같이 일을 안 한다고 생각하니, 당시 그토록 이해할 수 없었던 대표도 적어도 나에겐 그렇게 나쁜 사람이 아니었던 것 같았다. 잠깐 다른 생각이지만, 조직을 막상 떠나고 보면 다들 좋은 사람들 투성인 것 보니, 사람이 문제라기 보단, 조직에서 일하는 방법이나 비즈니스 모델 자체가 잘못된 것 아니었을까? 합리적인 의심을 하게 된다.



2016년 5월 30일 퇴사 후, 6월 3일 미국 디즈니랜드를 향해 출국한다. 약 15일 정도 긴 여행이었다. 당시 5살 예준이를 위한 여행이라고는 하지만, 애 부모가 더 즐거웠던 유니버설 스튜디오, 그리고 디즈니랜드 그리고 레고랜드에 도착했을 때다. 메일 한통을 받는다. 캐*다 대사관 서류 합격했으니 온라인으로 입사 테스트를 보라는 메일이었다. 스타트업을 다니면서 하루가 멀다 너무 말도 안 되는 일들이 벌어지는 통해, 제약이 많아 답답하지만 그래서 계획대로만 돌아가는 대사관에 다시 가야겠다 싶어 홧김에 대사관에 이력서를 제출했었던 것이다. 처음엔 내가 이력서를 제출했었다는 것조차 까맣게 잊고 서류합격 메일을 보고도 누가 이토록 “신박하고 성의 있는 스팸메일”을 보냈는가 생각했던 게 기억난다


The details of the written exam is as follows:
Date:  Monday June 13, 2016
Time:  9pm
Length:  1.5 hours
Method:  Email


6월 13일 월요일에 한국 시간으로 밤 9시에 약 한 시간 반 동안 시험을 치겠다는 메일이었다. 메일로 시험 본다는 말에 “다행이다”라는 생각도 잠시였다. 시간을 계산해보니 미국 시간 새벽 5시. 모처럼의 가족과의 장기 여행이니 충분히 몰입해서 즐기자는 생각으로 컴퓨터, 아이패드 모두 두고 온 상황이었다. 나만 당황할 수 없었다. 차를 운전하던 남편에게 상황을 공유했는데 늘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남편은 상황이 안돼서 “시험을 못 보면 그냥 못 보는 것이다.”라고 정리했었던 것 같다.


내가 여행 중인데 귀국하면 19일이니, 일주일 뒤에 시험을 따로 볼 수 있냐고 답신을 보냈다. 물론 너만 그럴 수 없다고 짧게 답이 왔고, 그래도 뭔가 더 방법이 있을 텐데, 쉽게 포기할 수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렇게 미치도록 대사관에서 일하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는데 내 안에 쉽사리 포기가 안 되는 기질 같은 게 있었던 것 같다. 일단 요청이나 미션이 주어지면, 안 되는 상황에서도 이뤄질 수 있는 오만가지 시나리오를 상상하게 된다. 이직은 잦으면서 다른 한편으로 포기도 쉽게 못하는 모순덩어리 나 녀석을 두고 혹자는 오지랖이 넓다고, 혹자는 산만하다고도 표현하기도 한다.


어쨌든, 나에게 주어진 미션(??) 두고 이것저것 생각하며 당시 대화할 수 있는 유일한 남편에게 이것저것 제안을 던져본다. 한국사람이 없는 데는 없을 테니 PC방을 찾아볼까, 근처 한인교회를 찾아볼까, 상상의 나래를 펼쳐보지만 남편은 짧게 “새벽 5시라며” 나를 진정시키던 기억이 어렴풋하다.


일단 숙소에 도착해서 고민할까? 했던 그때!!

일단 숙소에 짐을 풀어놓고 본격적으로 고민해봐야겠다 싶었던 그때!!
예약한 숙소에 도착해 체크인하기 위해, 리셉션을 향해 걸어가던 그때!

저 멀리 로비에 컴퓨터 한 대를 발견한다. 수많은 사람들의 손길을 거친 듯, 땟국물이 꼬질꼬질하게 묻어 있는 듯한 회색 컴퓨터였다. 아마도 여행 온 숙박객을 위해 간단한 웹서핑 용도로 보이는 그래서 꽤 오래된 듯한 컴퓨터였다. 그러나 내 눈엔 마치 후광이 비치는 듯 해 나도 모르게 외쳤다.

“컴퓨터다!!”

너무 기뻐서 리셉션 앞에서 내 여권을 기다리던 직원을 봤음에도 내 뒤로 짐을 들고 들어오던 남편에게 어글리 코리안처럼 크게 외쳤다. 남편도 이게 웬 떡이냐는 표정을 지으며, 하이파이브를 주고받는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아시안이라고 생각하던 말던 상관없었다. 즐거워하며 체크인을 순조롭게 끝내고, 짐을 풀자마자 로비로 내려가 컴퓨터 앞에 앉았다.





컴퓨터 바탕에 조그맣게 떠있는 인터넷 익스플로러 로고를 더블클릭한다. 띠기릭띠긱릭.. 하는, 오래된 컴퓨터 고유의 소음과 함께 인터넷 검색창이 뜨고, 메일을 바로 접속한다. 인터넷 속도가 마음에 썩 들진 않지만, 기대하지 않았던 숙소 로비에서 컴퓨터를 발견했다는 것 만으로 감사해야겠다고 생각하는 순간, 메일 테스트 안내문의 한 구절을 읽고 갑자기 목 뒷덜미가 서늘해졌다.


The written exam will be sent to your email address directly at 9:00 pm.  There will be an attachment (MS Word 2010 version or higher) containing the exam questions in the email.  Please ensure that your computer has the capability to open MS word (2010 or higher) document.



.. 젠장 #1
다행히, 시험은 내일 새벽! 나에겐 아직 시간이 있었다. 오늘 숙소에서 짐을 풀자마자 씨랜드 가려고 했던 일정은 모두 취소하고, 예준이에게 본격적으로 텔레비전 리모컨을 쥐어주고는, 나와 남편이 알고 있는 모든 지인들에게 오피스 시리얼 번호를 구걸하기 시작했다. 한국시간  9시부터  시간 반만 쓰겠다며

우여곡절 끝에 구한 시리얼 번호를 구하고는 다시 한번 남편과 우애와 전우애가 반반 섞인 하이파이브를 한다. 로비로 다시 내려와 오피스를 다운로드하려고 하던 찰나.



.. 젠장. #2
공용 컴퓨터라 아무거나   없어. 꺼져~라는 알림 팝업창이  심장을 저격한다.  리셉션으로 가서 직원에게 매우 급한 상황이라 컴퓨터에 오피스 프로그램 다운로드하아야 한다고 얘기하니.




아.. 젠장. #3
영어를 잘 못하는 남미 이민자 출신 직원이다.
띄엄띄엄 단어를 최대한 상냥하게 외친다.
I need a JOB!. Need to take a TEST! I need to download the MS Office program ON YOUR COMPUTER



아 젠장. #4
나의 시급한 상황이 전혀 전달이 안된다.
안 되겠다 싶어 외쳤다.
Please…..! Let me talk to your manager!! Please!

간곡한 Please를 세 번쯤 외쳤을까. 리셉션 직원은 매니저에게 전화를 걸더니 수화기를 나에게 건넸다. 본인은 지금 현재 외근 중이라 밤에 와서 컴퓨터에 다른 프로그램을 다운로드할 수 있게 해 준단다. 그래, 뭐가 되었든 해주기만 하면 되었다 싶어 Thank you를 연발하고 전화를 끊는다.

몇 시간 뒤, 마음씨 좋게 생긴 히스패닉 아저씨가 천사처럼 나타나 MS 오피스를 다운로드 설치해주고 사라졌다. 이제 새벽에 일어나 시험만 치면 되겠다 싶었다. #그때만 해도


새벽 4pm. 알림이 울리지 않았는데도 눈이 떠졌다. 6월이면 한참 덥기도 했는데, 새벽 공기는 서늘했다. 노트와 펜 그리고 담대한 마음을 가지고 로비로 내려온다. 아무도 없는 로비는 쓸쓸해 보이기도 해서 센티해지면서 동시에 이 모든 걸 극복하다니 나 녀석 진짜 대단하잖아? 한껏 우쭐해지고 센티해지길 30분.

시험 문제가 왔다. 총 4문제. 아.. 그런데 마지막 문제 이거 뭐야??? 어??? #tobe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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