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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작가 Nov 21. 2022

택배 상하차의 추억 # 2

제품 론칭 이벤트 전날부터 마무리까지 벌어졌던 이야기

6시가 조금 넘어 기사님이 전화를 걸어왔다. 드디어 도착한 것이다. 도착했는데, 어디로가야하냐는 기사님의 질문에 반색을 표하며 호텔 집하실로 오시라 답했다.


#1차 #멘붕


“차가 너무 커서 집하실로 진입이 불가능합니다아~”


오래된 호텔이라 지하주차장 진입로가 낮은 편이었던 것이다. 호텔이니 정문을 통해 물건을 올릴 수는 없는 일이라 할 수 없이 후문쪽으로 오시라 전했다. 이 말을 들은 기사님이 후문쪽에 딱지 떼는 건 아니냐고 물어왔다. 이미 멘붕이 온 나는 그 말을 낚아채 듯, 몰라요!. 라고 내질렀던 것 같다. 미안했다.



#2차 멘붕

집하실에서 대기하던 나와 여직원 3명은 화물차가 못내려온다는 얘기를 듣고 후문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여름의 호텔 집하실은 마치 정글같은 열기와 습기를 모두 내뿜고 있어 인중과 콧등에 땀방울이 맺히기 시작하고 내 몸의 시큼한 땀냄새가 내 코로 바로 들어왔다. 마치 흔한 헬스장스멜 이었다



후문에 도착해서 맞이한 화물차는 정말 거대했다. 여자 4명이 헐레벌떡 달려와 차 뒷쪽에 실려있던 제품 크기에 기가 질려 표정관리를 못하고 있자, 기사는 그제야 차에서 내려 나에게 똑바로 걸어왔다. 내가 자신과 전화했던 그 미친인간이라는 것을 직감했던 것 같다. 눈을 부라리며 물어왔다.



“지게차 어딨어요?”


응? 지게차? 옆에서 동시에 입을 떡 벌리고 있던 호텔 지배인을 바라보며 “지게차 있어요 지배인님?” 물어보니 말이 안된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주위를 아무리 둘러보아도 나와 함께온 여직원 4명만 내 시야에 들어왔다. 모두 초첨이 없었다. 짐들을 호텔 안으로 넣지 못해 제품이 없는 행사에 VIP들이 와서는 하릴없이 다과만 먹고 가는 모습이 머리속에 둥둥 떠올랐다. 이러다 망하겠는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당황해서 머리가 잘 굴러가지 않는 그 찰라, 기사님과 다시 눈이 마주쳤다. 기사님이 나에게 다시 눈을 부라리면서 뭐라고 궁시렁거리려는 찰라, 나도 모르게 내 입술이 움직였다. 오장육부에 있던 진심이 토하듯 나왔다.


“도와주세요.”


이 말이 나올 줄 상상도 못했다는 듯, 기사님은 몸을 삐걱거렸다. 그러면서도 내가 몇만원 벌려고 하루종일 운전하고 왔는 줄 아냐며 궁시렁거림을 멈추지 않았다. 사례하겠다는 말에 그제서야 부드러워진 눈동자로 멈칫거리며, 그 다음 스케줄이 있어서 짐을 내리는 것만 도와줄 수 있다 선을 그었다. 그것도 감지덕지였다. 어느정도면 괜찮냐며 기사님 먼저 제안해달라 했다. 듣고 많이 부르면 협상해야지 하는 마음이었다. 그런데



“그럼 3만원, 네 3만원만 더 주세요.”

수줍게 그러나 거절하면 그냥 가버리겠다는 단호함이 실린 말투로 답했다. 순간, 귀를 의심했던 것 같기도하다. 하루에 구백만원 짜리 방에서 행사를 준비하는 내가 지금 이렇게 간절하게 필요한 손길은 3만원이구나. 기묘했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상념에 젖어있을 수 없었다.


“콜! 아저씨! 감사합니다.” 라고 힘차게 외쳤으나 실상은 아저씨가 물건을 하차해주고 가버리면 결국 나와 여직원 3명이 물건을 호텔로 다 옮겨야 하는 숙제가 남아있었다. 하지만 할 수 있을지 없을지 고민할 여유가 나에게 사라진지 오래였다.


랩으로 칭칭 감겨있던 포장을 칼로 째고나니 그 안에 박스 무더미의 갯수가 육안으로 확인되었다. 등골이 오싹해졌다. 정신차려 나녀석아..!! 이 말을 속으로 했다 생각했는데 소리로 내뱉었는지, 이미 몇 십분 전부터 상황을 지켜본 호텔 지배인이 나를 불렀다. 그제서야 호텔 지배인의 존재를 새삼 깨닫고 호텔 지배인 눈을 똑바로 바라보고 간곡하게 말했다. “도와주세요.”


이 상황 자체에 너무 유감스럽고 한편으로 짠한 마음이 들지만 혹여나 자신이 이 노가다 구렁텅이판에 빨려들어가는 것은 피하고 싶다는 복합미묘한 표정을 짓더니 떨떠름하게 말을 했다.



“이왕 이렇게 되었는데요. 도와드려야죠. 일단 그럼 물건 내리실 동안 저는 잠시 다른 일을 보고 오겠습니다.” 라고 홀연히 사라졌다.


물건을 내려도 내려도 끝이 없었다. 심지어 어떤 박스는 너무 무거워서 허리가 휘청했는데, 무겁다 낑낑 거릴 여유조차 없었다. 배쓰솔트 한개에 800그람, 한박스에 12개씩. 다시 말해, 배쓰솔트 박스 하나는 거의 10킬로그람 쌀 한가마니 정도였다. 나는 이 모든 상황이 정녕 빨리 끝나길 바라는 마음으로 두개씩 들어올렸다. 무거웠다. 그러나 여직원 3명의 고달픈 표정이 더무거웠다.


물건은 내려도 내려도 끝이 없었다. 희안하게도 몸은 힘들지만, 의외로 머리가 시원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이따금씩 생각이 너무 많아지거나 복잡해질 때마다 벽돌쌓는 일을 하고 싶다는 말을 과거 심심찮게 했던 적이 있다. 하얀종이에 똑같은 패턴을 무작위로 그려대는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의 행위를 무한반복하며, 모든 잡생각이 사라지고, 이 세상에 나와 그 행위만이 존재하는데서 오는 몰입감을 사랑했다.



다시 현실, 머리가 시원해지는 것과 별개로 평소에 놀고먹던 팔뚝을 갑자기 쉴새없이 움직이니 근육이 놀랬는지, 화가 난 게 아닌데도 손이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했다. 몸이 힘들어질 수록 역설적으로 몰입감을 느끼던 찰라, 여직원 한 분이 상하차를 도와줄 또 다른 퀵 아저씨를 부르자 했다. 내가 정신을 못 차리고 있으니 옆에서 알아서 호텔 집하실로 내려갈 수 있는 작은 화물차를 가진 기사님을 수소문해 호텔 후문으로 부른다. 그녀의 지략이 아니였으면, 어쩔 뻔 했을까 하는 아찔함이 몰려오기도 했다.



이 모든 혼돈의 카오스를 바라보던 호텔 벨보이 한 분이 “저도 돕겠습니다” 라며 합세하더니 물건을 내리기 시작했다. 두개, 세개씩 번쩍번쩍 들어 옮기니, 여자 4명이서 부들부들 떨며 옮기던 때와 속도가 달랐다.


감사한 벨보이 분 덕분에 물건을 빠르게 내리고는 애초에 물건을 싣고 왔던 기사님께 잘 가시라 인사하려고 하는 찰라, 기사님은 수줍게 종이 봉투 위에 자신의 계좌번호와 이름이 적어 내게 건냈다.



<임*선> 내가 애정해마지 않는 작가 이름과 동일했다. 평소 그 작가님처럼 살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그분의 성함이 화물차 기사님 손에 수줍게 들려 나에게 건네지고, 나는 의도치 않게 부들거리는 손으로 받는 모든 상황이 한편으로 계시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내가 바라는 삶의 실상은 택배상하차 같은 걸까? … 아무생각이 아무렇게나 뻗쳐나갔다.



그렇게 처음 기사님이 가고, 작은 화물차를 몰고 두번 째 기사님이 도착했다. 키는 조금 작은 편인데 다부진 체격에 딱 보기에도 믿음직하게 생긴 기사님이었다. 기사님은 4팔레트를 풀어 헤쳐 호텔 후문에 쌓아놓고는 그 사이 주저 앉아있는 4명 여자들을 보고 흠칫 놀래는 듯 보였다. 나는 기사님이 도망가면 안된다는 생각에 최대한 정상 여자 인간처럼 침착하게 웃으면서 말을 건넸다.


“도와주세요. 은혜는 갚겠습니다”


내 말에 기사님은 어이가 없는 듯, 제게 은혜를 갚을 일이 또 있으실까요? 라고 대꾸했는데, 아랑곳하지 않고 앵무새처럼 대꾸했다. “그럼요. 제가 아니더라도 누군가 기사님께 은혜를 갚을거에요. 다만 지금은 저희를 도와주세요” 라는 아무말을 했다 .


역시는 역시였다. 우리가 4개 5개 옮길 때, 두번째 기사님은 15개 20개씩 옮기기 시작했다. 모든 박스들을 작은 화물차에 싣고 호텔 집하실로 들어가 다시 호텔 공간에 넣는 무한반복의 시간을 짜임새와 효율성있게 그리고 굉장히 빠른 속도로 진행했다.


두번째 기사님을 보내고 홀연히 사라졌던 호텔 지배인을 불러, 물건을 다 집어 넣었다며 양해해줘서 고맙다고 답변을 하고 호텔을 빠져나왔다. 도저히 지하철을 탈 수가 없어 호텔 바로 앞에서 택시를 잡아 타고 집으로 오는 길 문득 같이 고생했던 친구들 밥이라도 사줬어야 했는데, 내 정신이 너무 피폐해서 챙기지도 못하고 택시를 탔다는 것을 깨닫는다. 저녁식사 하시고 영수증 청구해달라며 챙기지 못해 미안하다 뒤 늦은 문자를 남기고 집에서 씻고 나니 10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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