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도 가는 차 안에서 언니가 물었다. <지금 집에서 몇 년 살았지? ><3년, 7월이 지났으니까.> 잠시 핸드폰을 보던 언니가 말했다. <아니야. 4년이야!> 그렇다면 나의 365일은 어디로 사라진 걸까? 지금 집에 이사를 오고 반년 후에 퇴사를 했다. 그다음 1년은 아빠 병원을 쫓아다니느라 회사 다닐 때보다 더 바쁘고 피곤했다. 아빠가 투석에 익숙해질 즈음 나는 1년간 덕질에 매진했다. 사춘기 소녀의 마음으로 온 정성을 쏟았는데 그때 나는 누구라도 그렇게 좋아해야만 하는 사람이었다. 재취업을 해서 들어간 회사는 일주일에 10시간 자면서 일해도 늘 일이 넘쳤다. 나는 반년도 못 채우고 회사를 나왔고 그즈음 이혼 서류에 도장을 찍었다. 어떤 식으로든 나의 모든 소속이 사라졌다. 다음 1년은 우울증 치료에 전념했다. 그러고 보니 4년이 맞다. 4년을 3년이라고 철석같이 믿을 만큼 빠르게 지나간 걸까? 성인이 된 이후로 돈을 제일 못 버는 4년이었고, 내 인생에서 돈을 제일 많이 쓰는 4년이었다.
최근 우리 집 싱크대 위에 부착되어 있는 작은 형광등이 수명을 다했을 때, 나는 인터넷부터 온 동네 조명 가게를 다 뒤져 형광등을 구하고자 했다. 하지만 불가능이었다. 이런 작은 것조차 해결하지 못하면 나는 혼자 살 자격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형광등을 구하지 못하면 부착하는 센서등 같은 것으로 교체해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열심히 구하고 싶었다. 이 문제를 멋지게 해결하고 싶었다.
내 생일을 축하해 주러 온 언니 부부와 대부도에 갔다가 길가에서 조명 가게를 발견했다. 도대체 여기에 왜 이런 조명 가게가 있는 것일까? 아무리 봐도 이해가 안 되는 위치였다. 매장에 들어서자마자 쌓여 있는 형광등을 보니 왠지 여기엔 있을 것만 같았다. 형광등 사진을 보여드리자 여자 사장님께서 구석에 있는 선반 가장 아래 칸으로 가셨다. 딱 봐도 오래된 수십 개의 형광등이 모여 있었다. <여기 있는 게 다 단종된 형광등이에요.> 거기서 운 좋게 내가 찾던 형광등을 찾았다. 대부도까지 가는 내내 너무 멀다며 구시렁거리던 나는, 대부도는 내 생일 때문이 아니라 형광등 구하러 온 게 분명하다며 기뻐했다.
잠들기 전, 생일을 5분 남기고 나는 카톡 생일 알림을 껐다. 3일 연속으로 나가서 사람들을 만나고 축하를 받는 일이 체력적으로 버거웠다. 분명 축하를 받는 일임에도 나는 진이 빠졌다. 생일날은 최대한 조용하고 심심하게 보내고 싶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잠이 몰려왔다. 올해 생일날은 하루 종일 비가 내렸다. 이따금 카톡 알림 없이도 축하를 건네는 친구들의 연락이 왔다. 저녁 시간 즈음에 K가 미역국을 먹여야 할 텐데... 하는 카톡을 보내왔다. 나는 그녀가 만나자고 할까 봐 황급히 미역국은 내가 알아서 먹겠다고 말했다. 카톡 알림이 없으니 연락 오는 빈도가 확연히 줄었다. 예전엔 가까운 친구들이 내 생일을 잊으면 섭섭하기도 했는데 올해는 잊어주셔서 오히려 고마웠다. 늘어지게 자고 일어나 저녁으로 피자를 시켜 먹었다.
4년 전에 아무도 함께 하지 않는 생일을 처음 맞이했을 때 나는 당황했었다. 엄마가 끓여주는 미역국도 없고, 남편의 축하도 없는 오로지 나 혼자 보내야 하는 생일은 처음이었다. 나의 독립이 피부로 와닿은 첫 사건이었다. 몇 년간 나는 매번 친구들을 모아서 시끌벅적한 생일을 보냈다. 일부러 약속을 만들어 와글와글한 일정들 속에 나를 던졌다. 올해 이렇게 평화로운 <혼자생일>을 보내며, 3년 같은 4년이 나에게 어떤 안정감을 주었는지 깨달았다. 나는 이제 아무렇지 않게 혼자 생일을 보내게 되었다. 비로소 진짜 어른이 된 것만 같아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