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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 은 Mar 06. 2024

소리 없이 잠든 나의 친구에게 Ep.1

#안녕, 여긴 다시 봄이야

'소리 없이 잠든 나의 친구에게'는 내가 대학에 합격한 뒤, 6개월 정도 지났을 때 써놨던 단편 글이다.

볼보와 함께 했던 짧디 짧은 9개월, 그 시간 속 장면들이 여전히 내 머릿속엔 사진처럼 남아있다.

언젠가 고양이를 키워야지 싶다가도, 볼보를 잃었을 때를 생각하면 못 키울 것 같다는 생각 역시 동시에 들곤 한다.


어느덧 3년이란 시간이 흐르고 있다. 3년, 그리고 또다시 찾아온 봄.

볼보를 만난 5월의 끝무렵, 그 시작을 나만 다시 맞이하고 있는 중이다. 솔직히 내 안에 볼보는 조금씩 아니, 실은 그 보다 더, 옅어져만 간다. 고양이만 보면 울던 때는 지났고, 온갖 프로필에 가득했던 볼보는 이제 다른 사진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주황색과 하얀색이 섞인 고양이를 보면 자연스레 볼보를 떠올리고, 다가오는 고양이에겐 간식을 주고, 몇 분이고 가만히 앉아 내 손에 얼굴을 비벼오는 고양이를 쓰다듬어 준다.

볼보는 내게, 어딜 가나 본인을 기억할 수 있도록 수많은 친구들을 내가 사는 곳 곳곳에 남겨두었다.


시간은 우리에게서 세월을 가져가는 대신 추억을 내어주곤 한다. 한 번 남은 추억은 누군가 가져가지도, 어디론가 사라지지도 않고 우리의 가슴속에 여전히, 그리고 영원히 그대로 남아있다.

번씩, 시간이 하는 역할은 그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시간은 내게서 손목에 남아있던 흉터를 가져가는 대신, 볼보와 함께 할 봄을 여전히 내어주는 중이다.

그렇게 나는 몇 번을 돌고 또 돌아, 결국엔 네가 있는 곳을 향해 다가가는 중일 테니까.





- 2021년 02월 11일 일기 중


'볼보는 내게 안식처였다. 울면서 공부를 하고, 죄책감과 부담감에 내게 상처를 내면서 버텼던 작년을 볼보 덕분에 견딜 수 있었고 살 수 있었다.

모의고사 성적이 제대로 나오지 않아 울다 집에 들어갈 때도 볼보와 함께 있었고, 언니한테 울면서 얘기를 한 날에도 볼보와 함께 있었고, 여름날 가을 같은 날씨에 노래를 틀어 놓고 잔디 바닥에 앉아 기분 좋은 바람을 느끼며 너무나도 아름다운 풍경이 내 눈앞에 펼쳐져 있었던 그날도 내 옆엔 볼보와 함께였다. 난 볼보가 없었다면 못 견뎠을지도 모른다. 힘들고 지칠 때마다 집 밖에 나가서 내가 이름 부르면 야옹하며 내게 다가오는 그 아이가 얼마나 큰 위로가 되어주었는지 그 아이는 알까?


부르면 한달음에 달려와 주는 이가 있다는 게 이리도 큰 위로가 되어주는 건지 몰랐다. 그런데 난 그 아이가 부를 때 한달음에 달려가 주는 사람이었을까. 그 아이는 얼마나 외로웠을까, 얼마나 아팠을까.


헤아릴 수 없을 만큼의 위로를 내게 주고 간 나의 은인, 나의 친구야 부디 그곳에선, 아프지도 다치지도 힘들지도 말고 평안히, 제발 평안한 하루들을 보내줘.


너와 함께 보냈던 4계절을 절대 잊을 수 없을 거야. 2021년의 봄을, 여름을, 가을과 겨울을 내가 여전히 숨 쉬고 있을 수 있게 내 곁에 있어줘서 너무 고마웠어. 기분 좋은 선선한 바람과 밝고 맑은 하늘과 아름다운 새소리와 노랫소리가 들려오던 그날, 그곳에서 함께한 너와의 그 순간은 내가 평생 잊지 못할 거야. 고마워 그리고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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