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 없이 잠든 나의 친구에게'는 내가 대학에 합격한 뒤, 6개월 정도 지났을 때 써놨던 단편 글이다.
볼보와 함께 했던 짧디 짧은 9개월, 그 시간 속 장면들이 여전히 내 머릿속엔 사진처럼 남아있다.
언젠가 고양이를 키워야지 싶다가도, 볼보를 잃었을 때를 생각하면 못 키울 것 같다는 생각 역시 동시에 들곤 한다.
어느덧 3년이란 시간이 흐르고 있다. 3년, 그리고 또다시 찾아온 봄.
볼보를 만난 5월의 끝무렵, 그 시작을 나만 다시 맞이하고 있는 중이다. 솔직히 내 안에 볼보는 조금씩 아니, 실은 그 보다 더, 옅어져만 간다. 고양이만 보면 울던 때는 지났고, 온갖 프로필에 가득했던 볼보는 이제 다른 사진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주황색과 하얀색이 섞인 고양이를 보면 자연스레 볼보를 떠올리고, 다가오는 고양이에겐 간식을 주고, 몇 분이고 가만히 앉아 내 손에 얼굴을 비벼오는 고양이를 쓰다듬어 준다.
볼보는 내게, 어딜 가나 본인을 기억할 수 있도록 수많은 친구들을 내가 사는 곳 곳곳에 남겨두었다.
시간은 우리에게서 세월을 가져가는 대신 추억을 내어주곤 한다. 한 번 남은 추억은 누군가 가져가지도, 어디론가 사라지지도 않고 우리의 가슴속에 여전히, 그리고 영원히 그대로 남아있다.
한 번씩, 시간이 하는 역할은 그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시간은 내게서 손목에 남아있던 흉터를 가져가는 대신, 볼보와 함께 할 봄을 여전히 내어주는 중이다.
그렇게 나는 몇 번을 돌고 또 돌아, 결국엔 네가 있는 곳을 향해 다가가는 중일 테니까.
- 2021년 02월 11일 일기 중
'볼보는 내게 안식처였다. 울면서 공부를 하고, 죄책감과 부담감에 내게 상처를 내면서 버텼던 작년을 볼보 덕분에 견딜 수 있었고 살 수 있었다.
모의고사 성적이 제대로 나오지 않아 울다 집에 들어갈 때도 볼보와 함께 있었고, 언니한테 울면서 얘기를 한 날에도 볼보와 함께 있었고, 여름날 가을 같은 날씨에 노래를 틀어 놓고 잔디 바닥에 앉아 기분 좋은 바람을 느끼며 너무나도 아름다운 풍경이 내 눈앞에 펼쳐져 있었던 그날도 내 옆엔 볼보와 함께였다. 난 볼보가 없었다면 못 견뎠을지도 모른다. 힘들고 지칠 때마다 집 밖에 나가서 내가 이름 부르면 야옹하며 내게 다가오는 그 아이가 얼마나 큰 위로가 되어주었는지 그 아이는 알까?
부르면 한달음에 달려와 주는 이가 있다는 게 이리도 큰 위로가 되어주는 건지 몰랐다. 그런데 난 그 아이가 부를 때 한달음에 달려가 주는 사람이었을까. 그 아이는 얼마나 외로웠을까, 얼마나 아팠을까.
헤아릴 수 없을 만큼의 위로를 내게 주고 간 나의 은인, 나의 친구야 부디 그곳에선, 아프지도 다치지도 힘들지도 말고 평안히, 제발 평안한 하루들을 보내줘.
너와 함께 보냈던 4계절을 절대 잊을 수 없을 거야. 2021년의 봄을, 여름을, 가을과 겨울을 내가 여전히 숨 쉬고 있을 수 있게 내 곁에 있어줘서 너무 고마웠어. 기분 좋은 선선한 바람과 밝고 맑은 하늘과 아름다운 새소리와 노랫소리가 들려오던 그날, 그곳에서 함께한 너와의 그 순간은 내가 평생 잊지 못할 거야. 고마워 그리고 미안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