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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 은 Mar 07. 2024

소리 없이 잠든 나의 친구에게 Ep. 2

#내가 여름을 좋아하게 된 이유

어느 순간부터 사계절 중 여름을 가장 좋아하게 되었는데 그게 정확히 언제였는지 깨닫고 보니, 볼보와 함께 있던 그때부터였다. 


수능을 준비하게 되면서 본가에서 사계절을 모두 보내게 되었는데, 내가 살던 곳은 시골이라 사계절의 변화를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점점 변해가는 날씨와 분위기 그리고 그 특유의 냄새들이 각 계절을 기억하기에 충분했다. 


여름을 온전하게 보내게 되면서 여름이 가지고 있는 분위기에 흠뻑 빠져버렸다. 맑다 못해 깨끗한 하늘, 온갖 초록잎들이 가득 펼쳐진 길가와 밤이 되면 서늘해지는 공기 그리고 잠들지 못하던 새벽에 듣는 벌레 소리는 내 지친 하루들에 아주 자그마한 평안을 주던 유연한 계절이 되었다. 


볼보를 알게 되기 전까지 고양이가 인간과 함께 산책을 할 수 있는 동물이라곤 생각도 하지 못했다. 그렇기에 더더욱 매번 산책을 나갈 때마다 내 옆을 함께하는 볼보가 참 신기했다. 산책을 할 때마다 정해진 구역이라도 있는지 특정 구간을 벗어나면 따라오지 않는 볼보에 익숙해져서 어느 순간 내 산책 코스도 볼보에 맞춰 정해져 있었다. 나는 그 틀이 좋았다. 벗어날 순 없어도 그 안에서 만큼은 자유롭고 평온할 수 있으니, 마치 이곳은 안전하다 말하는 듯해서 그 모든 공간이 오로지 볼보와 나만을 위한 곳인 것 같아서 온전하게 평안했다. 


 



돌이켜보면 참 많이 힘들었던 해였다. 뭐가 그리도 힘들었는지 지금에서 생각하면 이젠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그럼에도 내 곳곳에 남아있는 그때의 흔적들이 그날들을 어렴풋이 보여주곤 한다. 

볼보에 관한 글을 쓰면서 누군가에겐 별 거 아닌 일이지도 모르고, 나의 지난 과거에 코웃음 칠 수도 있겠지만 나에게 있어서만큼은 절대 가벼웠던 한 해는 아니었다고 말하고 싶은 글일지도 모른다. 


이제는 희미해진 그때의 기억처럼 이곳에 볼보와 어두웠던 지난 얘기들을 가득 남겨둔 채 지금의 나는 나대로 흘러가려 한다. 추억은 추억대로, 그리움은 그리움대로, 아픔은 아픔대로 각 저마다의 의미가 있는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여전히 나아가야 한다. 꽤 오래전부터 내 안에 자리 잡힌 자기혐오는 쉽게 고쳐질 생각이 없다. 아마 습관처럼 나를 깎아내렸던 것이 지금의 결과를 만들어낸 듯싶다. 내가 나를 존중하지 않고, 내가 나를 미워하다 보니 어느샌가 내 삶에 대한 의욕이 없어졌었다. 내가 내 삶을 존중하지 않아서 생긴 결과였다는 걸 나는 최근에서야 깨닫게 되었다. 


그때의 경험들 덕분에 얻은 것도, 잃은 것도 많지만 어찌 되었든 내 인생에 있어서 필요했던 경험이라고, 

나는 그렇게 생각하곤 한다. 




볼보와 함께 하던 봄의 끝무렵과, 함께 보았던 여름날의 푸른 자연들과, 함께 느꼈던 가을날의 선선한 바람과, 함께 똑같은 입김을 내뱉던 그날의 겨울을 이곳에서 두고두고 추억할 테니,


매 오늘을 너도 나도 행복하고 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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