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여 은 Mar 02. 2024

소리 없이 잠든 나의 친구에게 5(완)

#5 파도는 흔적을 지우고, 그럼에도 우리는 흔적을 남긴다

내 대학 합격이 확정되고, 나는 이곳저곳 돌아다녔다. 그런데 어느순간부터 나는 점점 볼보의 모습을 볼 수 없었다. 볼보를 불러도 볼보의 모습은 볼 수 없었고, 볼보가 자주 누워서 쉬는 곳에 가도 볼보는 없었다. 그러다 며칠이 지나면 언제 나갔냐는 듯이 다시 돌아와서 밥을 먹고 내 곁에 오고 애교를 부리곤 했다. 


그런 나날들이 반복되던 어느 날이었다.

 



대학 입학 전에 우리는 부산에 놀러가기로 했다. 여기서 우리는 나를 포함해 4명인데, 그 중 2명이 친자매이자 볼보의 원래 주인이고 한 명은 나랑 유치원 때부터 친구인 동갑내기다. 처음 가보는 부산이라 설레기도 했고, 네 명이서 다른 지역을 놀러가는 건 오랜만이었어서 더 신나있었다.


출발하기 전,  또 며칠씩 보이지 않던 볼보가 드디어 나타났다. 나는 부산 여행 가기 전에 볼보가 배웅을 해주는구나 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자세히 본 볼보의 몸엔 상처가 나있었다. 다리는 살짝 절뚝였고, 몸 어딘가에 피가 묻어있었다. 놀라서 가까이 다가간 나는 머리를 쓰다듬으며 '어디 나가지 말고, 가만히 앉아서 계속 쉬어달라'는 부탁을 마지막으로 볼보와 헤어졌다.


'그게 내가 본 볼보의 마지막 모습이자, 볼보의 마지막 배웅이었다.'


부산에서 하루 자고 그 다음 날 나는 집에 도착했다. 매번 며칠씩 집을 비우고 다시 언제 그랬냐는듯 돌아오는 볼보였기에 그 다음 날이 되어도, 그 다음 날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는 볼보를 언젠간 돌아오겠지라는 마음으로 가볍게 하루들을 보냈다.


집에서 샤워를 하고 머리를 말리던 때에 연락이 왔다. 볼보가 죽어있었다.


나는 머리에 수건을 돌돌 감싼 채로 헐레벌떡 밖을 나갔고 저 멀리 종이가방을 들고 있는 걸 보자마자 저 가방 안에 있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볼보 볼래? 라는 물음에 나는 망설이다 보지 않기로 했다. 볼보를 묻어주러 가는 이들의 뒷모습만 보다가 왈칵 눈물이 났다. 너무 갑작스런 이별에 어떻게 해야 될지 몰랐다. 


너무나도 갑작스럽고도 서툰 이별이었다.


볼보가 죽은 뒤, 나는 한동안 길에 걸어다니는 고양이들만 봐도 눈물이나곤 했다. 그때 생각했다. 나는 동물을 못 키우겠구나를 말이다. 정말 짧은 시간, 6월부터 그 다음 해 2월까지 약 9개월 정도의 만남이 끝이었다. 더군다나 내가 직접 키운 아이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한동안 힘들었는데, 내가 직접 몇 년간 키운 아이와 헤어질 땐 얼마나 더 힘들까 상상하기도 벅차다.


그 뒤로, 조금씩 볼보를 추억하고 볼보에 대한 글을 남기면서 깨닫게 되었다. 


볼보가 나에게 끼친 영향이 얼마나 큰 것이었는지, 내 곁을 지켜주던 작은 아이가 얼마나 큰 위로였는지 나는 그제서야 깨닫게 되었다.




파도는 늘 우리가 남긴 흔적들을 지워버리곤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모래에 흔적을 새기려 노력한다. 

그 흔적은 지워지지 않길 바라는 마음으로 쓰는 추억일까 아니면 지워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쓰는 후회일까.


그 어느쪽이든 찰나의 시간에 우리는 흔적을 바다 속에 남긴다. 저 깊은 고요함에 묻힌 많은 이들의 후회와 추억은 어리석은 파도가 잊어버리곤 하지만 결국엔 남아있다. 후회로든, 추억으로든, 우리의 삶 속에 담긴 모든 것들은 결국에 바다 속에 존재한다.


그러니, 바다를 잊지 않고 살아가면 우리는 다시 마주할 수 있다. 


파도는 다시 치기 마련이기에, 우리는 그저 기다리면 된다. 


저 깊은 바다속에 있는 우리의 흔적을 들고 다시 모래 위로 올라올 저 어리석은 파도를



지금까지 소리 없이 잠든 나의 친구에게를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은 '소리없이 잠든 나의 친구에게 Ep'로 이어집니다.




이전 05화 소리 없이 잠든 나의 친구에게 4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