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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urger kim Apr 19. 2023

부녀의 심야식당 <포르투>

첫인상이 이미지를 좌우한다




런던에서 서울-부산 고속버스 수준의 저가항공을 타고 약 한 시간 만에 프란시스코사카르네이루 공항에 도착했다. 저녁 8시에 도착한 나는 공항 특유의 쇠 냄새를 맡으며 급하게 근처 카페를 찾았으며 공항 출입구 근처 위치한 작은 커피숍에 들어가 배낭을 풀었다.

 

나보다 배고파하는 핸드폰부터 밥을 주기 시작했다.


핸드폰의 배가 점점 부르는 동안 눅눅한 크루아상 한 개와 아메리카노를 주문하고 테이블로 돌아와 배낭에서 볼펜과노트를 꺼냈다.


유심이 오락가락하는 탓에 핸드폰 인터넷이 불안정했으며연식이 오래된 이 친구는 언제 갑자기 잠들 줄 몰라서 항상비상상황을 대비해 중요한 내용들을 노트에 적곤 했었다.


공항의 작은 커피숍에서 30분이라는 시간을 보내는 동안 노트를 펴고 딱 3가지만 적었다.


예약한 숙소 이름

숙소 근방 지하철역

그리고 그토록 먹고 싶었던 초리조 식당 위치.


정보를 얻은 뒤 시계를 확인하고 재빠르게 테이블에 널브러져 있던 짐들을 배낭에 쑤셔 박았다.

 

어두침침한 지하터널을 지나 도심으로 향하는 열차를 타기 위해 정차역으로 향했다.

기차역은 안개가 자욱했으며 전박적으로 분위기가 활기찬서유럽보다는 느긋한 동유럽과 비슷했다.


사람들은 기차를 기다리는 동안 레일 바로 앞에

배치된 재떨이 앞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는데

그 광경은 내가 본 가장 편안한 장면이었다.




저녁 10시쯤 포르투 중앙역에 도착했으며, 너덜너덜한 상태로 거리를 나왔다.

이미 녹초가 된 몸을 이끌고 포르투 특유의 언덕길을 오르며 겨우 숙소를 찾을 수 있었다.


닭장 같은 12인실에 들어가 짐을 풀고 바로 초리조를 먹기위해 뛰쳐나왔다.


하지만 겨우 찾아 들어간 초리조집은 마감을 하고 있었다.

슬픔도 잠시, 가게를 운영하던 부녀지간은 실망한 나의 표정을 보고 자리를 안내해 줬다.


음식을 기다리는 동안 종업원에게 기본 포르투갈어 수업을 받으며 맥주를 홀짝였다.

당시 내가 아는 포르투갈은 수십 명의 포르투갈 축구선수들의 이름밖에 없었지만, 이 호의적인 사람들 덕분에 그들의 역사와 경제까지 알 수 있게 됐다.

솔직히 조금 재미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 자부할 수 있는 건 나는 이곳에서 가장 행복한 10시 30분을 보냈다는 것이다.


만 원도 안 되는 이 가게의 초라한 음식과 호의적인 사람들은 내가 도시를 느끼기도 전에 나를 매료시켰다.




날이 밝고 숙소 밖으로 나와 처음 마주한 장면이다.

내가 찍었지만 정말 그림같이 사진이 나온 것 같다.    

항구도시답게 갈매기와 도시가 공존한다.

건물 외벽의 빨랫줄은 어딘가 순수하며

시네마 천국의 어린 토토가 떠올랐다.




공사 중인 한쪽의 벽면, 걸려있는 빨랫줄,

시동이 꺼져있는 자동차

그리고 상반되게 맑은 하늘은

건물 입구에서 쉬고 있는 남자의 감정을 더욱 부각한다.




강가를 둘러싸고 있는 와이너리 거리를 걸으며 도시 특유의 동화적인 색감에 취했다.


실제 해리포터의 영감 지라 그런지 대규모 테마파크에 들어온 기분이 들었다.


와인잔 부딪히는 소리,

할 말이 많은 사람들의 대화소리,

아이들의 발자국 소리

그리고 거리의 잔잔한 버스커의 기타 소리는

마음을 평온하게 했다.    


하지만, 이런 영화 같은 곳을 혼자 바라보다 보니

외로움이엄습하기 시작했다.

홀로 이 장면을 즐기기에는 너무 낭만적임과

동시에 슬펐다.  


다음에는 사랑하는 반쪽과 꼭 오기를 다짐하고

아무 계획 없이 걷기 시작했다.


15분 정도 걸었을까? 머리에서 자극적이고 침이 줄줄 새게 만드는 초리조를 다시 찾으라고 신호를 주었다.




잔잔한 강물,

지구를 뒤집은 듯한 하늘,

정박해 있는 배

그리고 그것을 음미하는 사람들,

이 모두가 여유롭다. 사진만 봐도 백색소음이 들린다.




집에서는 무서운 아버지,

직장에서는 성질 더러운 상사,

고기 굽다가 기름 튀어 혼자 쌍욕 하는 친구,

그리고 이 모든 사람들을 웃게 해주는

S자 모양 꼬리를 가진 고양이.




크로아티아 자그레브의 색감을 닮은 전망대와

말레이시아 페낭에서 볼법한 낡은 건물의 그래피티.

마음은 외로웠지만, 눈은 사랑받고 있었다.




동화 같은 도시를 증명시키는 동화 같은 동물.

모히칸 머리가 굉장히 인상적이다.




항상 특정 국가를 방문할 때마다 마켓의 주류코너를 간다. 물론 와인을 굉장히 좋아하지만, 그보다 독창적이고 이쁜 색감을 지닌 라벨을 눈으로 담고 싶어서이다.


무작정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고 이 도시에서 가장 저렴한 헬스장을 물었다. 미친놈처럼 보이겠지만 당시 이 외로움을 가장 빨리 즐거움으로 바뀔 수 있었던 것은 운동이었기 때문에 몸 좋아 보이는 길거리 행인에게 다가가 정보를 얻을 수 있었고,

일권기준 약 8유로 하는 짐에서 트로이의 브래드피트를 상상하며 얼굴을 찡그리는 유일한 동양인 역할을 수행할 수 있었다.

 



운동 이후 단백질의 유입을 위해 오크향과 편백나무향이 강하게 나는 식당에 들어갔다.


짭짤한 초리조를 입에 넣는 순간, 포르투의 이미지가 강하게 스쳐 지나갔다.


나에게 포르투의 이미지는 버스킹, 강가의 레스토랑 그리고 낭만적인 분위기와는 거리가 멀다.


그 이미지는 저녁 10시 30분, 마감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나를 받아준 그 부녀지간의 따뜻함이다.


이들의 환대는 도시 전체의 아름다운 스토리를 삭제시켜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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