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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디터 달래 Feb 01. 2022

우주가 맞닿는 시간.

데이레터란? 더 좋은 일상을 위한 낭만소개서. 기록하고 소개하며 일상을 의미 있게 만듭니다.


[essay]

우주가 맞닿는 시간.


고등학생 시절. 우리 학교에는 다정한 전통이 하나 있었다. 다음에 책상을 쓸 사람을 위해 편지를 남겨두고 가는 것. 학년마다 정해진 교실을 사용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따라서 1학년은 다음에 들어올 1학년에게, 2학년은 올라올 1학년들에게. 그리고 3학년은 이제 3학년이 될 2학년들에게 편지를 남긴다. 갓 입학식을 마친 후, 교실로 들어와 자리에 앉으니 책상 서랍에 작은 종이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안에는 입학을 축하한다는 말과, 1학년 때의 감정들, 그리고 응원의 말이 담겨 있었다. 모든 게 낯설었던 그때. 이름도 모르는 선배의 편지에 종일 얼어 있었던 마음이 풀린 기억. 나도 학년이 올라갈 때 그 기억을 떠올리며 진심을 다해 편지를 남겼다.


한 소설에서 '우리에게는 각자의 주머니 우주가 있다.'라는 말을 읽었다. 우리가 보고 있는 시간은 약속으로 정한 것이고, 우리 안에는 각자의 시간이 흐르고 있으며, 그 시간이 맞닿았기 때문에 서로에게 안녕을 건넬 수 있는 거라고.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남긴 편지는 어쩌면 다른 차원의 우주에 남기고 온 건 아닐까 하는 생각. 마치 인터스텔라에서 머피에게 사인을 남기던 쿠퍼처럼 말이다. 어쩌면 평생 모른 채 지나칠 수도 있었던 각자의 우주가 맞닿는 느낌은 생경했다.


인터넷이 만연해진 요즘, 서로의 우주는 전보다 더 겹쳐지기 쉬워졌다. 마치 하나의 우주 게시판이 생긴 기분. 실시간으로 소통하고 있다고 해도 각자의 시간은 다르게 흐르고 있기에, 화면 너머에서 보내는 말풍선이 더욱 특별하게 다가온다. 과거에 누군가 남긴 글에 댓글을 남긴다면, 그의 과거의 우주에 연결된 것 같은 기분도 든다. 


이러한 나의 생각들은 최근 블로그에 달린 하나의 댓글 때문이다. 핸드폰에 울린 블로그 댓글 알람에 어느 때와 같이 쓸데없는 광고성 댓글이라 생각하며 지워버릴 심산으로 눌러보았다. 하지만 그 내용은 놀라웠다. 91학번의 어떤 동아리 선배가 댓글을 남긴 것. 동아리를 그리워하던 찰나에 나의 글을 발견했다고. 동아리에 대한 내용은 단 몇 줄 들어있지만, 우리는 그렇게 연결됐다. 1991년도의 그가 활동했던 동아리라는 우주와 31년 후 2022년의 동아리라는 나의 우주가. 동아리가 잘 유지되고 있어 다행이라는 말에 암흑의 저 끝에서 장구를 매고 손을 흔들고 있는 그가 보이는 듯했다. 물론 이름도 얼굴도, 어떤 악기를 쳤었는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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