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룩소르 열기구 투어
개인이 시대의 변화를 거부해도, 시간은 흐르고 기술은 발전한다.
저항하면 혼자 뒤처질 뿐이다.
이게 개인의 취향이라면 문제 될 게 없지만, 소비자를 대상으로 돈을 벌려고 하는데 이런 자세라면 문제가 크다.
소비자의 마음과 트렌드를 모두 놓친 마케팅은 모두의 외면을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크리스마스이브 새벽 4시 40분, Yul과 나는 우리가 가진 두꺼운 옷을 모두 껴입고 승합차를 탔다.
차에는 일곱 명 정도의 중국인들이 먼저 타고 있었다.
나일강변에서 내린 우리는 한 무리의 사람들을 따라간다.
열기구를 타러 나왔는데, 돈을 지불하기 전이다.
그래서 우리 이름이 명단에서 빠진 건 아닌지 불안한 마음으로, 그나마 뭔가 알고 있을 것 같은 메모판 든 남자에게 붙었다.
그리고, 열 명 정도 씩 그룹을 나누어 보트로 어두운 나일강을 건넌다.
다시 보트의 그룹이 한 팀이 되어 승합차를 타고 열기구 타는 곳으로 이동한다.
차를 타고 다리를 건너면 더 빠르고 편할 건데, 왜 이렇게 번잡스러운 과정으로 가는지 모르겠다.
사람은 자신의 시간을 투자하고 고생한 끝에 얻은 것의 가치를 더 높게 평가해서일까?
높은 열기구 투어 비용에 대한 합리성을 제시하기 위해, 가는 과정을 길고, 어렵게 만들어 놓은 것 같기도 하다.
약 스무 척의 보트가 출발하려니, 가장 뒤에 있던 우리 보트는 출발 대기만 30분이 걸렸다.
보트가 출발하기를 기다리는 데 큰 카메라를 든 젊은 남자가 이 보트 저 보트를 건너 다니며 사람들을 촬영한다.
인사해 보라고 하고, 웃으라고 하며 다양한 장면을 담는다.
‘이집트 방송국에서 나왔나? 아침 방송이나 ‘6시 내 고향’ 같은 그런 프로그램인가 보네.’
나는 넘겨짚으며 카메라가 내 쪽으로 오면, 굳은 표정의 동양인으로 찍히기 싫어 아주 활짝 웃고 손도 흔들었다.
그렇게 강 건너, 산 넘어 한 시간 만에 도착한 열기구 타는 곳에는 바람 빠진 거대한 열기구 천들이 바닥에 활짝 펴져 있다.
여기서 다시 기다림의 시간이 시작된다.
옷을 단단히 챙겨 입은 나는 급하게 나오느라 플립플롭을 신고 나왔다.
밤사이 차갑게 식은 사막의 모랫바닥이 냉기를 뿜어내 내 발은 덮을 것 좀 달라고 꼼지락댄다.
‘어휴… 내가 그러면 그렇지. Yul이라도 양말에 운동화 신고 나오길 다행이네.’
보트에서 봤던 그 카메라맨은 여기까지 따라와 현장을 담기 바쁘다.
드넓은 공터 끝으로는 오렌지색 하늘이 열리며 검은 야자수들이 나타난다.
이집트 기념품숍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엽서와 카펫 등에 그려진 그림이랑 같다.
그 만화 같은 장면이 이곳에서는 현실이었다.
그러고 보면 문학도 예술도 우리가 보고 경험한 세계의 반영이다.
이 그림 같은 장면을 담으려고 관광객들은 저마다 휴대폰을 들고 영상과 사진을 찍는다.
하늘에 어두운 장막이 모두 걷힐 때쯤 열기구들에 바람이 들어가기 시작한다.
요란한 모터 소리와 함께 부풀어 오르는 열기구들의 향연은 자연과는 또 다른 장관이다.
그리고 하나, 둘 올라가는 열기구를 보니 이곳이 인스타 성지이겠구나 싶다.
아니나 다를까, 중국인 관광객들은 알록달록한 색상에 얇고 펄럭이는 시폰 원피스를 흩날리며 챙이 큰 모자를 쓰고 열기구를 배경 삼아 사진을 찍는다.
중국 SNS인 샤오홍슈에 분명 열기구 사진 팁이 있었을 거다.
플립플롭 신었다고 덜덜 떨고 있는 나는 그들의 인생샷 남기기 열정에 찬사를 보낸다.
땅에 있는 열기구가 70% 정도 올라갔을 때 드디어 우리는 열기구 쪽으로 이동했다.
함께 탑승하게 될 중국인 관광객과 말레이시아에서 온 노부부와 손에 손을 잡고 둥글게 섰다.
사전 준비운동(?) 같은 의식을 하려는 건데, 이때도 카메라맨이 원 안에 들어와 우리를 담는다.
나는 이 순간을 즐기는 모습을 남기고 싶어 열정적으로 소리도 지르고 텐션을 끌어올려 ‘둥글게 둥글게’를 한다.
긴 기다림과 의식 끝에, 4시 40분에 호텔에서 출발한 우리는 6시 50분이 돼서야 열기구에 탑승했다.
열기구가 조금씩 떠오르니 카메라맨이 땅에서 손을 흔들라고 사인을 준다.
나는 카메라를 향해 손을 세차게 흔들었다.
이집트 방송을 타게 된다면 그 클립을 구하고 싶은 정도다.
드디어 떠오르는 태양과 함께 열기구도 떠오른다.
푸르른 농경지를 배경으로 해가 뜨는 게 보이다가, 방향을 바꾸어 보니, 전날 봤던 핫셉수트 장제전과 멤논의 거상이 보인다.
거의 두 시간을 기다린 끝에 만난 풍경이라 감동이 쓰나미처럼 밀려온다.
이 프로그램을 구성한 이는 사람 심리와 마케팅 전문가인 게 분명하다.
처음에는 무섭다던 Yul이 점점 적응되는지 밖을 보며 신전을 찾기도 한다.
비행기 조종사를 20년 했다는 열기구의 캡틴은 우리의 열기구가 가장 높이 올라간다며 환호성도 유도한다.
열기구에 탄 이들은 모두 흥분해서 소리를 지른다.
열기구를 타러 가는 과정부터 열기구에서의 경험까지, 모두 마케팅 전문가가 세심하게 설계한 프로그램인 것 같다.
오랜 기다림과 복잡한 접근 방법으로 본 경험의 가치를 높이고, 남과 다른 특별한 체험이라는 것을 강조해 만족감을 극대화했다.
여기까지는 너무 완벽했는데, 마지막에 나는 놀라움에 입을 다물 수 없었다.
열기구가 착지하고, 여행사 직원이 판촉을 시작한다.
“여러분, 재미있으셨나요? 처음부터 여러분이 열기구를 타고 내려오는 것까지 다 담은 이 카메라맨에게도 박수 한 번 보내주세요. 10mm 캠코더로 촬영한 영상은 USB로 구매하면 20불, 이메일로 받으시면 15불입니다. 원하시면 말씀 주세요.”
순간 환희로 가득하던 열기구 안이 차갑게 식었다.
아무도 자신이 아주 가끔 나오는 이 USB 혹은 디지털 파일을 원하지 않았다.
이미 각자의 손에는 본인을 주인공으로 하는 사진과 동영상이 가득하다.
그렇게 어색해진 우리와 카메라맨은 각자 길을 갔다.
과연 그 디지털 파일을 다른 열기구 관광객은 구매했을까?
최근 2~3년 사이 하나라도 팔아본 적은 있을까?
왜 비즈니스 모델을 바꾸지 않았는지 의문이다.
기록을 파는 이 사업의 본질은 변화하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시대의 트렌드와 소비자의 필요에 맞는 형태여야 했다.
다시 그 카메라맨을 본다면 꼭 이야기해 주고 싶다.
차라리 화질 좋은 스마트폰을 장만하라고.
열기구 타러 가는 보트와 해가 뜨기 시작하는 공터, 열기구가 부풀어 올랐을 때 사진이 잘 나오는 포토 스폿을 연구하고, 그곳에서 사진 찍어주고 돈을 받으라고.
인스타용 사진 5불,
틱톡용 영상 10불,
샤오홍슈, 웨이보, 위챗 모멘트용 사진 7불.
사진만 잘 찍어 준다면, 중국 관광객 지갑 열기가 가장 쉬울 거다.
그 추위에 인생샷 건지려는 열정에 시폰 원피스도 마다하지 않는 이들이다.
간단한 거래용 중국어를 익히는 것은 필수겠다.
새벽부터 고생하고 한 푼도 벌지 못한 카메라맨을 보니, 안타까움과 마케터의 오지랖에 별 상상을 다 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