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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은돌 Sep 28. 2023

사유의 방, 빛나는 기획력

반가사유상, 생각하기의 품격

어제 국립중앙박물관 2층에 마련된 "사유의 방"에 다녀왔다. 신라시대로 추정되는 2점의 반가사유상이 나란히 사유의 방에 전시되어 있었다. 평일이라 그런지 관람객도 몇 명 되지 않았다.


반가부좌를 하고 앉아있는 부처님 또는 미륵보살.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을 보면 뭔가에 대한 해답을 찾으려는 고뇌와 심각함이 느껴진다.


반면 반가사유상은 편안(?)한 느낌이다. 눈은 감은 듯, 뜬 듯 아래로 향하고 자세도 앞으로 살짝 기울였지만 힘들어 보이진 않는다. 


반 가부좌라서 그런지, 참선 엄격함은 덜하고 사유의 부드러움이 느껴진다. 엄숙한 종교적 수행보다는 마음을 들여다보는 명상 자세에 더 가까워 보인다.


반가사유상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아니 1500년 전 신라인들은 반가사유상이 어떤 생각을 하는 중이라고 설정하고 불상을 제작했을까?

데카르트는 존재의 기원을 추적하다 결국 자신만의 독자적인 사유가 존재를 입증하는 유일한 증거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부처님은 그것조차 뛰어넘었다. 현상계에 집착하는 사유 또한 아집과 편견, 허상에 끄달려 우주의 실상을 보지 못함을 경계했다.


삼라만상에 대한 극의 사유. 나와 세계 또한 무상(無常)하여 변하지 않는 것이 없으므로 모든 것은 공(空)하다.


무상에서 나아가 무아에 이르는 사유. 탐욕과 아집, 욕망에서 자유로워지는 해탈의 길.




사유의 방을 둘러보고 나오면서 21세기 인공지능의 시대 서울 한복판에 놓인 두 점의 반가사유상이 어떤 의미일지, 생각했다.


먼저 이런 전시를 설계하고 기획하신 분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진심이다. 


300억, 400억으로 추정되는(사실은 값을 매길 수 없는 보물이지만 해외전시 때 가입하는 보험금이 이 정도 금액이라고...) 두 유물을 유리상자도 아닌 전시공간에 그대로 노출시켜 맨 얼굴(?)로 관람객과 마주하게 만든 대담함.


입구에서부터 한 바퀴 돌고 나올 때까지 반가사유상에 집중할 수 있도록 꼼꼼하게 설계된 바닥 (바닥에 살짝 경사가 있다), 조명, 음향.


사유의 , 자체가 또 다른 하나의 작품이었다.



우주의 티끌로 존재하는 무상의 존재에 대한 사유.


속도의 시대, 효율의 시대가 나만의 사유를 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자꾸 지워 버린다. 기껏 우리가 확보할 수 있는 공간이래야 스타벅스 정도가 아닐까


정보의 홍수 속에서 스스로 생각하는 힘은 오히려 떨어지는 정보혁명의 역설. 외부의 생각과 의견에 부화뇌동하여 나를 잃어버리기 쉬운 세상이다.


생각하지 않고 검색하는 시대


반가사유상과 사유의 방은 조용한 명상 그 자체가 우주적 아름다움을 갖고 있음을 알려준다. 편안한 마음은 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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