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회가 닿아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라는 책을 읽어 보았다. 이 책을 읽으며 염세주의 철학자로 유명한 쇼펜하우어가 시대를 잘못 타고 태어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과학과 문명, 인간 이성에 대한 낙관과 열광적인 확신이 풍미하던 헤겔, 칸트의 시대에 인간의 불완전성과 이성의 한계를 설파한 쇼펜하우어가 그 시대 사람들이 보기엔 염세주의자로 충분히 간주될 수 있었으리라.
쇼펜하우어의 철학은 오히려 불안과 스트레스. 경쟁과 소외가 일상이 된 현대인들에게 더 설득력 있게 다가오는 듯하다.
무게 중심이 바깥에 있는 사람은 출세, 승진, 명예, 부 등을 추구하며 각종 모임 등에 빠져서 즐거움을 추구하지만 무게 중심이 안에 있는 사람은 혼자 있는 시간을 가지면서 개인적인 취향에 따라 예술, 시와 문학, 철학 등을 가까이하게 된다. 이런 정신적인 즐거움은 속물이 누릴 수 없는 것이다.
우리는 재산과 부, 명성과 지위를 끊임없이 추구한다. 더 좋은 것을 더 많이 가지기 위해서 더 열심히 노력해서 더 많은 돈을 벌려고 악착이다. 6.25 전쟁이 끝난 폐허에서 1인당 국민소득이 3만 불이 훨씬 넘는 지점까지 도달하였다. 하지만 이제 살만해졌다고 자신의 삶과 사회의 발전에 만족해하는 사람을 주변에서 단 한 명도 만나본 적이 없다.
더 크고 넓은 평수의 강남아파트, 더 좋은 차, 더 비싼 사교육, 더 고급진 명품.
끝없이 "더, 더, 더"라는 욕망에 이끌려 영혼 없는 좀비처럼 삶의 굴레에 메여 살아간다. 5만 불 시대가 오면 행복해 질까? 6만 불 시대가 오면 행복해질까?
지금 이런 세태라면 단연코 그렇지 않을 것이다. 온 나라에서 갑자기 영적인 깨달음이 폭발하지 않는 한 우린 8만 불, 10만 불을 향해서 영혼이 사라진 좀비처럼 허우적거리며 비틀비틀 계속 달려갈 것이다.
경쟁욕구, 과시욕구, 인정욕구. 이런 밖으로 드러내고 과시하는 욕망의 부질없음을 깨닫고 내면의 수양과 명상의 즐거움을 즐길 줄 아는 새로운 가치관을 갖춘 사람들이 등장해야 한다. 구찌 가방을 멘 여인보다 법정스님의 "무소유"를 들고 있는 여인이 더 추앙받고 매력적으로 보이는 그런 시대가 와야 한다.
이젠 끝없는 욕망의 추구를 멈춰야 한다. 목이 마르다고 바닷물을 마시면 갈증만 더 심해지고 결국엔 죽게 된다. 만약 이 아귀와 같은 욕망의 불꽃을 잠재울 수 없다면 우린 아마도 선진국 가운데 잘 살면서도 동시에 가장 불행한 나라, 가장 자살을 많이 하는 나라가 될 것이다. 지금도 얼추 그렇긴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