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은돌 Aug 17. 2023

미워하면서 닮게 되는 악연

인생의 패러독스

독한 시어머니 밑에서 고생한 며느리가 정작 자신이 시어머니가 되어서는 더 가혹하게 며느리를 들볶는다는 이야기를 들어 본 적 있을 것이다. 남자에겐 군대 악질 선임이야기가 유사한 스토리다. 악질 선임에게 온갖 얼차려와 기합을 받으며 고생한 이등병이 막상 자신이 선임이 되어서는 더 악독하게 군다는 이야기다.


진짜 그럴까? 그렇다면 왜 그렇게 될까? 미워하면서 왜 닮아 갈까?


사람이 뭔가를 배우는 방식은 다양하다. 그 가운데 가장 본능적으로 체득하고 효과가 뛰어난 원초적인 학습방법이 모방이다. 주변의 타인이 하는 것을 보고 따라 하는 것이다. 어릴 땐 무의식적으로 부모를 따라 한다. 커서는 주변의 어른, 친구를 따라 모방하게 된다.


미워하고 증오하는 사람이 나에게 한 짓을 겪고, 상처를 받고.... 그러고 난 다음엔 배워서 따라 하게 된다고? 슬프지만 답은 예스다. 불편한 사실이지만 인생살이에서 알아 두어야 한다. 




닮아 가는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불행하게도 그렇게 고통받으며 사는 삶 외의 다른 삶을 배울 기회가 없거나 적었기 때문이다. 시어머니로부터 배운 것이 학대와 멸시뿐이고 선임으로부터 배운 것이 기합이고 가스라이팅뿐이라면 다른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인간은 배우지 못한 것을 홀로 깨쳐서 하기는 쉽지 않은 존재이다. 


두 번째는 싫은 것들을 거부하든 부정하든 저항하던 그 과정에서 자신의 에너지를 쓰고 관여하고 고심하면서 자신도 모르게 그런 삶과 나쁜 행태가 자신에게 스며들게 된다. 모범생도 일진들하고 어울려 다니면 태도나 자세가 껄렁껄렁하고 걸음걸이도 불량하게 변해 간다. 근묵자흑(黑)의 이치.


알코올중독 아버지로부터 가정폭력에 시달리면서 불운한 성장기를 보낸 사람이 성장해서는 자신도 알코올 중독에 가정폭력을 행사하는 사람이 되어 버리곤 한다. 그렇게 불행이 대물림된다. 그렇게 증오하고 미워했음에도 결국 자신이 그런 사람이 되어 버리고 만다. 논리적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지만 살다 보면 이런 경우, 흔하게 볼 수 있다.


화목, 배려, 사랑과 같은 정상적인 삶의 감정과 인간관계를 배우지 못한 불운도 있지만 자신의 친부, 친모의 악행을 보면서 자신에게도 그 피가 흐른다는 괴로움을 겪으며 갖게 되는 심리적 갈등도 문제를 더 어렵게 만든다. 이 갈등은 정신적인 분열, 자존감 붕괴 나아가서는 스스로의 자존을 포기하는 자포자기의 마음을 만들어 내기 쉽다.


예외가 있다면 알코올과 폭력이 아닌 다른 방식의 삶을 살아내는 누군가를 만나 새로운 경험을 하고 체득하고 빠져나오는 경우다. 이런 경우에 다행스럽게 그런 불행한 삶의 경로와 질곡에서 나올 수 있다. 대부분 알코올과 폭력이 학습되어 체화되기 전에 다른 정상적인 학습이 이루어진 행운아들이다.




미워하면서 닮아가지 않으려면 그 연결고리를 끊어내야 한다. 미움과 증오가 답이 아니다. 다른 정상적인 삶, 다른 정상적인 사고를 할 수 있는 세계로 살아서 빠져나와야 한다. 그들의 삶을 용서하고 구원하면 좋겠지만 그럴 필요도 없고 현실에선 그렇게 하기도 만만치 않다. 자신이라도 빠져나와서 스스로 구원될 수 있으면 다행이다.


당신이 지옥을 들여다보면 지옥도 당신을 들여다본다.


지옥은 들여다보는 것이 아니고, 빠져나가야 되는 것이다. 거길 들여다보고 있으면 당신 안에서 지옥도가 펼쳐질 뿐이다. 툭툭 털고 새로운 세상으로 걸어 나가야 불행의 대물림을 끊어 낼 수 있다.


시어머니, 남편, 부모, 군대선임, 직장상사를 끊어 내기 어려운 이유는 쉽게 끊어 낼 수 없는 특수한 관계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리해야 하는 것들은 정리해야 한다. 당신이 더 이상해지기 전에. 그리고 지금은 문명이 개화되고 자유민주주의가 살아 숨 쉬는 대명천지 2023년이다. 세상이 변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솔직한 나로 살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