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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은돌 Aug 22. 2023

청춘, 그 아찔한 위태로움

다시 스무 살로 돌아갈래?

"전 다시 돌아갈 수 있다고 해도 이십대로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아요."


얼마 전 저녁자리에서 40대 후반 지인에게 들은 이야기이다. 이십 대부터 사십 대까지 겪어 온 삶의 고단함 - 이 한 단어에 설렘, 도전, 노력, 좌절, 눈물, 성취 등 많은 게 담겨 있는 듯 -을 다시 겪고 싶지 않다고. 차라리 지금이 낫다고 한다.


아내도 그런 입장이고, 친한 지인  명도 같은 대답이었다. 몆 명에게 듣고 일반화하기에는 모집단 숫자가 너무 작긴 하지만, 그래도 과거 찬양 일색이던 청춘과 젊음에 대한 생각에 뭔가 변화가 생기고 있다느낌이다.




요즈음의 청춘이라는 단어에는 취업난, 저임금, 감정노동, 배신당한 노력, 열정페이, 젠더갈등과 SNS의 시샘, 질투, 부러움 그리고 피곤이 배어 있다. 때론 그 날카로움에 베여 피가 흐르고 그 설움에 눈물이 흐른다.


아무리 그렇다 해도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며 청춘 이렇게 천천히 되뇌어 보면  여전히 먹먹하고 설레고 아찔하다.


지나왔던 청춘 무모했고 그리고 철이 없었다. 하지만 약동하던 생명력과 분출하는 에너지로 거칠 것이 없던 때이기도 했다.


몽환적인 환상 속에서 사랑을 찾아 헤매기도 하고 문학과 예술, 철학과 인간에 대해 고민하기도 했다.


윤동주와 김광석. 제임스 딘과 존 레넌.


젊은 시절 박제되어 버린 영원한 청춘의 표상을 부러워하기도, 안타까워하기도 했다.




청춘충동과 렬한 무모함. 위태로운 선택들. 그리고 좌절과 낙담.


긴 시간 갚아 나가야 했던, 살아내야 했던 비루함과 지겨움.

 

하지만 이젠 청춘의 그런 모순적인 상황조차 그립기까지 하다. 무엇에도 심드렁한 요즘과 비교하면.




지금까지 성취해 온 모든 것을 버리고 이십 대의 청춘으로 돌아갈 거냐고 누가 묻는다면


예스다. 다시 아련한 그 심쿵의 시절로, 상처받기 쉬운 말랑말랑하던 때로 돌아가고 싶다.


이번에도 여전히 살아낼 것 같지는 않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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