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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송정 Jul 11. 2023

김치말이 국수 만들 때 이왕이면 이게 더 좋습니다

부산 구포에서 자란 아버지와 나누고 싶은 맛... 구포국수가 특별한 이유

부산을 여행하는 사람들이 먹고 가는 음식 중에 돼지국밥과 밀면은 항상 1,2위를 다툰다. 돼지국밥은 냄새 때문에 취향이 나뉠 수도 있겠지만, 밀면은 '부산식 냉면'이니 호불호가 거의 없는 것 같다. 그런데 부산에 유명한 면이 밀면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타지에 살다가 본가에 와 지내면서 내가 부산에 대해 아는 게 많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는 일이 종종 있다. 집 앞에 늘 오는 트럭 팻말을 보면서도 그랬다. 거기엔 딱 4글자 '구포국수'라고 적혀 있었는데, 나는 그때 처음 보는 말이었다.



'구포국수? 구포에 국수가 유명한 건가?'


구포는 할머니 댁이 있던 곳이라 어릴 적 기억이 아주 약간 남아있기도 한데, 그 동네에 대해 아는 것은 거의 없다. 아니 별로 궁금했던 적이 없었다. 구포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다는 것은, 그곳에서 자란 내 아버지에 대해서도 아는 게 많이 없다는 의미였다. 



구포와 구포국수 이야기


             



그런저런 이유로 궁금해 구포와 구포국수에 관한 자료를 찾아보게 되었다. 우선 구포는 낙동강 인근 부산 북구에 있는 동네로, 경부선 KTX 열차가 서는 구포역이 있어 그 열차를 타 본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지나쳤을 것이다.

옛날에도 지금처럼 교통의 요지여서 배가 많이 드나들었고 그래서 지명에 포(浦)가 들어간단다. 또 범방산이라는 구포의 산줄기가 낙동강에 고개를 쭉 내민 거북이 형상을 닮았다고 해서 거북이 구(龜) 자를 써서, 구포가 되었다고 했다.


오가는 사람들이 많은 곳이라 구포에 신혼살림을 차렸던 엄마가 그때도, 지금도 가끔 가는 시장이 있는데, 그 구포시장의 역사도 400년이 넘었다. 


한국전쟁 직후에는 미군이 공급한 밀가루가 풍족해 시장 주변에서 국수를 만들어 말렸고, 그게 배고픈 피난민들을 먹여 살리면서 '구포국수'로 유명해졌다고 하니 국수 또한 역사가 짧지 않았다.


구포국수는 짭짤하고 쫄깃한 것이 특징인데, 낙동강 하류가 하루에도 몇 번씩 바닷물이 들어왔다 나가는 길목이니 불어오는 바람에 염분이 많아 그렇단다. 한강 이북에서 내려온 피난민들에게는 그 짭짤한 맛 때문에 더 맛있게 느껴진 것이라고. 이 사실도 이번에 자료를 찾아보다가 알게 되었다.




아버지께 해드렸던 김치말이 국수



자료를 찾아 읽다 보니 이런 이야기를 아버지께 직접 들을 수 있다면 좋겠다는 아쉬움이 남았다. 아버지, 엄마와 셋이 구포시장 구경도 하고 구포국수 한 그릇씩 맛보며 소주 한 잔 따라드리면서 여태까지 여쭤보지 못한 아버지의 어린 시절 이야기라든가, 구포국수에 얽힌 추억은 없는지 들을 수 있었을 텐데... 이제는 더 이상 그럴 수가 없다는 사실이 안타까웠다.


생각해 보니 엄마의 어린 시절은 많이 알면서 아버지 이야기는 아는 게 별로 없다는 사실이 새삼스레 와닿았다. 살아계실 때는 왜 이런 이야기를 여쭤볼 생각조차 못했는지.... 구포에 대해 잘 모르다는 것은 그만큼 아버지와의 대화가 없었다는 사실을 선명하게 깨닫는 계기가 되어, 여자만 넷인 집에서 아버지가 겪었을 외로움의 무게가 느껴졌다.


그래도 아버지가 면을 참 좋아하셨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물론 그 이유가 구포국수를 먹고 자라서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아버지께 딱 한 번 김치말이 국수를 해 드린 적이 있었다.


점심은 항상 면을 드셨던 아버지였고, 나도 먹고 싶어 겸사겸사 만든 것이 김치말이 국수였다. 예전 홍대 앞 고깃집에서 친구가 시켜서 처음 먹어봤던 김치말이 국수. 한겨울 이가 시릴 정도로 차가웠지만 맛있었던 기억이 남아 그날따라 생각이 났던 것 같다.


그런데 그 김치말이 국수는 멸치육수에 간을 한, 좋게 말하면 건강한 맛이었지만 입에 착착 감기던 그때 그 맛은 아니었다. 물론 아버지는 괜찮다며 한 그릇 다 비우셨지만. 그래서일까? 그 뒤로 김치말이 국수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러다 작년인가, 사 본 적 거의 없던 시판 냉면 육수에 김치만 썰어 넣고 면을 말아먹었는데 '아니, 이 맛은?' 싶은, 바로 그 맛이 나는 것이 아닌가. 엄마는 파는 육수가 싫다고 안 드시지만, 라면을 좋아하셨던 아버지는 냉면 육수를 사 와서 입에 딱 맞게 만들어 드렸다면 참 맛있게 드셨을 텐데....




지금 제일 맛있는 열무김치말이 국수


아버지께 만들어 드린 것은 배추김치로 만든 국수였지만, 요즘엔 열무김치로 시원한 김치말이 국수를 만들 수 있다. 해마다 5월이 되면 시장에서 열무와 얼갈이를 사서 김치를 담기 때문이다. 줄기가 가늘고 연한 것을 사서 담으면 아삭거려 질기지 않게 끝까지 먹을 수 있다. 그 열무김치가 지금 우리 집 김치냉장고에서 맛있게 익고 있다.


             



김치를 담아 실온에 두면 가장자리에 거품이 조금씩 올라오면서 새콤하고 맛있는 냄새가 나기 시작한다. 그때 김치냉장고로 옮겨 차게 한 다음, 국수를 말면 된다.



이번에도 육수는 사 왔다. 맛있는 김치말이 국수를 먹고 싶다는 생각에 봉지에 든 육수를 냉동실에 얼려놓았다. 사실 이 육수를 쓰면 내가 만들었다고 말하기도 부끄럽다. 면을 삶아 얼린 육수 위에 올리고, 열무김치와 국물을 부은 다음, 채를 친 오이와 삶은 달걀, 마지막에 식초, 겨자를 취향껏 넣어주면 되니까. 하지만 후덥지근한 장마철, 불 앞에 오래 서 있지 않고 시원하게 먹을 수 있으니 좋긴 하다.


             


             



면은 구포국수로 하면 좋겠지만 전에 사뒀던 구포국수는 그사이 다 먹고 없었다. 사실 그때는 구포국수에 얽힌 이야기를 몰랐던 때라, 색다른 맛이 있었는지도 잘 생각나지 않는다. 



이제는 짭조름하고 쫄깃해 다른 국수보다 더 맛있다는 것을 알았으니, 다음에는 구포시장에 일부러라도 가서 국수를 사 와야겠다. 그러고는 다시 한번 김치말이 국수를 만들어 봐야지. 앞으로는 구포국수만 보면 아버지가 생각날 것 같다. 





[김치말이 국수 만드는 방법]

재료: 국수(소면), 시판 육수(얼린 것), 열무김치, 김칫국물, 오이, 달걀, 식초, 겨자



1. 달걀은 미리 삶아둔다.


2. 뜨거운 물에 면을 확 펼쳐놓고 중간중간 저어준다. 끓어오르면 차가운 물을 조금씩 부어 가며 익힌다. 


2. 다 익은 면은 찬물에 헹구고, 미리 얼려둔 시판 육수를 그릇에 부은 다음, 물기를 뺀 면을 그 위에 올린다.


3. 열무김치를 먹기 좋게 썰어 올리고 김칫국물을 부어가며 간을 조절한다.


4. 오이는 채를 친 다음 삶은 달걀과 함께 고명으로 얹는다.


5. 입맛에 따라 식초, 겨자 등을 추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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