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코 닳지 않는 것이 하나 있다고 한다면, 그건 아마도 장마철, 다리 하나 뻗으면 꽉 차고 마는 그런 좁은 방, 희미하게 들려오는 형광등 안정기의 즈즈즈즉 소리를 들으며 눅눅한 느낌이 드는 벽에 기대어 앉아 있는 듯한, 그런 회색 빛의 기분일 것이다.
간혹 그런 날이 있다.
매끈하고 검번쩍한 실크 잠옷을 껴입은 채로 내 방 침대에 들누워, 다리 사이에는 키만 한 바디필로우를 꼭 껴안고 있음에도 어쩐지, '집에 가고 싶다.' 하는 기분이 드는 날.
늘 보던 퇴근길의 한강이 그날 따라 유달리 주름이 더 자글자글 진 듯 하기도, 생각조차 하지 않고 살던, 저 차갑고 깊은 먼 바닷속 해파리의 하날거림이 부럽기도 한 그런 날.
그런 날이면, 나는 즈즈즈즉 소리를 듣는다. 누렇게 떠버린 세계 문학 전집이 그득하던, 어째서인지 솜 대신 볼풀장에 집어넣는 색색의 공이 들어있던, 그런 커다란 쿠션이 놓여 있던 그 방을 떠올린다.
방 밖을 나가 그 방향으로 죽 걸으면 나오던, 거슬거슬한 회빛 시멘트로 되어있던, 앞으로는 재활용 플라스틱을 모으던 반투명 봉투가, 뒤로는 허옇고 넙데데한 김치 냉장고가 있던 그 베란다의 감촉을 느낀다.
결코 닳지 않는, 눅눅한 벽에 기대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