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명이를 시집 보내는 아버지를 보고
내가 외줄을 탈때마다 아빠는 그물을 펼치고 서 있었다.
떨어져도 아빠가 있다.
그 한마디가 얼마나 든든했는지,
한번은 말해줄껄, 말해줄껄
<폭삭 속았수다>
오늘 성당 미사에서 신부님께서 말씀하시길,
"우리가 어떻게 되든, 뒤에서 묵묵히 버티고 계시는 분이 바로 아버지다."
그래서 학생들에게 가출하면 안 된다고 당부하셨다.
그 말씀이 요즘 핫한 드라마 속 장면과 그대로 겹쳐 보여 신기했다.
신부님께서는 살면서 가장 슬픈 두 가지를 꼽으셨다.
첫째는 돌아갈 집이 없는 것,
둘째는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해 기도해 주시는 어머니가 계시지 않는 것.
그래서 다시 한번 강조하셨다.
"가출하면 안 된다."
그리고 더 깊은 의미로,
"우리가 성당을 찾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부모님을 떠올리면,
내가 마음의 병으로 아팠을 때 언제나 든든하게 지켜주셨던 기억이 난다.
어머니는 내 손을 꼭 잡고 함께 기도해 주셨고,
아버지는 당시 내 팀장님을 직접 만나 면담까지 해 주셨다.
그때 아버지가 팀장님과 무슨 이야기를 나누셨는지는 나는 듣지 못했다.
하지만,
"못난 자식 거두어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하고 부탁하셨던 게 아닐까.
그래서 나는 회사에서 처음으로 병가라는 혜택을 받을 수 있었던 게 아니었을까 싶다.
부모님의 사랑이 얼마나 큰지,
내가 직접 부모가 되어 보아야 겨우 조금은 알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도 느껴진다.
어머니의 뜨거운 사랑이,
아버지의 무뚝뚝한 사랑이.
그래서 헤어지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가끔 해 본다.
생이별을 하게 된다면 얼마나 슬플지 상상해 본다.
신부님께서는 이렇게 조언하셨다.
"아무 생각 없는 가출이 아니라,
목적이 뚜렷한 출가를 하라.
그리고 그 목적을 잊지 말고 살아라."
돌아보면, 내가 집을 나온 것도 지금까지의 흐름으로 봤을 때 가출에 가까운 것 같다.
나는 왜 집을 나왔을까.
뚜렷한 목표와 목적은 무엇이었을까.
그 질문을 곱씹으며, 이 글을 마친다.
내 글이 곧 브랜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