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고난’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고 합니다.
제 삶에서 ‘고난’이라 부를 만한 일들은 재수 생활, 우울증, 짝사랑 등이 있었습니다.
지금도 고난이 없는 삶은 아니지만, 한창 고통받을 때에 비하면 그 수위가 많이 낮아졌다는 생각이 듭니다.
먼저, 재수 생활이 힘들었던 이유는 제가 적극적으로 원해서 시작한 재수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부모님께서 반강제로 권유하셨던 부분도 있었고, 높은 반에 넣으면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을 거라는 기대 속에서 의약대반 친구들과 함께 기숙 생활을 했던 것도 힘들었던 이유 중 하나였습니다. 익숙하지 않은 환경에서 성적 압박과 스트레스를 견디며 공부하는 것은 정말 쉽지 않았습니다. 당시에는 그 상황을 견디는 것만으로도 하루하루가 고난이었지요.
우울증은 회사 생활을 하면서 찾아왔습니다. 이전 포스팅에서 몇 번 이야기했듯이, ‘왜 회사 생활을 해야 하는가?’라는 의문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지금은 어느 정도 스스로 납득하고 있지만, 그때는 회사에서 보내는 시간이 무의미하게 느껴졌습니다. 하루 종일 머릿속을 지배하는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 때문에 정상적인 일상조차 힘들었습니다. 출근길이 지옥처럼 느껴지고, 퇴근 후에도 마음이 쉬지 못했던 시간이 꽤 길었습니다.
또 다른 고난은 짝사랑이었습니다.
사람에 따라 ‘짝사랑으로 마음의 상처를 받는 것이 뭐가 대수냐’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에게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제 마음이 진심이었고, 그 진심의 크기만큼 상처도 컸기 때문입니다. 저는 ‘내가 잘해주고 좋아하면 이루어질 것’이라는 단순한 생각으로 여러 번의 시도를 했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았고, 번번이 상처를 받았습니다. 이제는 ‘내가 좋아해도 상대방이 좋아하지 않을 수 있다’는 당연한 진리를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이 세 가지 고난을 겪으며 많이 아프기도 했지만, 그 경험들이 지금의 저를 만든 원동력이기도 합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때의 아픔과 상처가 없었다면 오늘의 나 역시 없었을 것입니다.
고난에 대해 이런 말을 들어본 적이 있습니다.
“고난이란, 평범한 사람들이 위대한 운명을 받아들일 수 있게 준비시키는 것이다.”
— C.S. 루이스
이 말을 마음에 새기며, 지금의 고난이 더 큰 성장을 위한 준비라고 생각하려고 합니다. 고난의 연속인 삶이라면, 어쩌면 위대한 운명이 더 가까이 다가오고 있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아픔 뒤에는 성장이 따르고, 그 성장이 모여 성공으로 한 걸음씩 다가간다고 믿습니다. ‘잘되려고 그런 것이다’라는 말을 남에게 쉽게 하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상황이 그렇다면 이러한 말과 생각들이 분명 도움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평범하지만, 위대한 운명을 받아들일 준비를 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오늘의 고난이 내일의 성장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함께 다시 일어나 나아가 봅시다.
내 글이 곧 브랜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