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엔 참 많은 일을 했다. 첫 일러스트 전시, 첫 사진 전시, 첫 라이브. 그리고 을지로 바캉스에선 디제이 파티도 열었다. 이 목록들은 2017년을 시작하며 세운 목표들이었다. 막연하다고 생각했지만 많은 인연들 덕분에 구체적으로 실행할 수 있었다. 목표한 것들을 거의 완수하느라 꽤 진이 빠지기도 했던 한 해였다. 인쇄도 공연도 아무것도 모르는 백지상태에서 민폐를 끼쳐가며 열었던 무리한 행사들. 내 능력의 한계를 절감하던 순간도 한두 번이 아니었지만, 너무도 고마운 분들 덕분에 즐겁고 건강한 피로를 느낄 수 있었다. 아무리 즐거운 피로라도 그랬다. 하루 이틀의 휴일로는 하고 싶은 걸 하기도 벅차서 어디론가 떠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1년 반의 광장 영업을 끝내고 한 달의 휴가를 맞았다. 광장을 하기 전 좋았던 여행 기억을 선사했던 태국의 북부 치앙마이. 여름에 태어난 여름 사람은 일단 여름으로 갑니다. 한 달간의 방학을 맞이 한단 소식에 놀라는 손님들이 많았지만 멋있다며 엄지를 들어주는 손님들이 참 많았다. 멋있다. 인생을 즐길 줄 안다. 저렇게 살아야 되는데... 하며.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손사래를 쳤지만 우쭐한 마음도 들었다. 하지만 여행 갈 날이 다가오자 불안이 점점 커졌다. 가게를 닫고 방학을 맞이하던 다른 분들이 멋있다 생각했던 나, 아무런 준비 없이 그 멋만 쫓는 것은 아닐까. 가게를 오픈한 지 1년 반밖에 되지 않은 내게 이런 쉼이 꼭 필요한 것인가. 그런 고민들이 계속 내 속에 가득 차 어느 순간부터는 우쭐한 마음보다는 걱정이 더 커졌다.
어느 순간엔 가만히 앉아, 정말 멋있기 위해서 하는 거니? 무리하는 건 아니야? 하고 하루 종일 홀로 시간을 보내며 생각에 잠기기도 했다.
하지만 진작부터 광장에 붙여 놓았던 기일은 다가왔다. 비행기 표도 숙소도 예약 완료. 보내는 사람은 없었는데 등 떠밀리듯 비행기에 올랐다. 광장 겨울 방학합니다. 하고 떡 하니 붙여놓으면서도 친구에게 이런저런 부탁들을 해 놓고서도 마음이 안정되지 않았다. 광장을 만나고 거의 2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이렇게 떨어져 본 적이 없었다. 비행기를 타는 순간부터 누구보다 내게 그리운 광장이 되었다. 처음 며칠간은 광장 청소와 크리스마스 이벤트에 매진했던 피로가 풀리지 않았다. 이전에 여행하며 갔던 식당에서 밥을 먹거나 밀린 영화를 보며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새해를 맞이하곤 유행하는 채식으로 가득한 치앙마이의 식당과 카페들을 즐겼다. 태국의 향신료와 채식을 함께 즐기며 채식에 눈을 떴다. 특히 오래 묵었던 숙소의 버섯 버거를 먹으며 다가오는 여름 메뉴에선 함박스테이크를 고기로 만드는 버전과 비건 메뉴를 만들어 보는 건 어떨까? 까지 생각이 미쳤다. 레시피를 검색하고 버섯 버거의 첨가물들을 해체하며 기억하고 부분 부분 맛을 보며 기억하려 애썼다. 향신료들이 고수를 잘 못 먹는 사람들에게도 맞을지 아닐지, 고기를 대체할 만한 단백질류도 찾고 정리해 보았다. 부디 먹었던 그 맛이 구현되었으면 좋겠다. 더불어 각종 타이 요리를 접목시키는 것도 생각해 보았다. 단순하게는 유명한 팟타이를 구현하는 것부터 시작해 보려고 이것저것 기록하다 보니, 겨울 메뉴에도 이미 똠얌 나가사키 짬뽕이 있는 걸 기억해 냈다. 이 요리들이 생각한 맛대로 구현만 된다면 언젠가부턴 일본요리 + 타이 요리의 광장이 될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2주 차에 들어서면서부터 생각하고 기억한 맛을 주방에서 얼른 만들어 보고 싶어 비행기 스케줄을 바꿔볼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올해 내내 열심히 음식 만들 일이 많은데 굳이 오버할 필요가 있나 하며 마음을 다스렸다.
기대해 주세요. 맛있는 채식요리, 먹을 수 있는 타이 요리를요. 하는 마음으로 광장 갈 날을 손꼽아 기다렸다.
여행하며 많은 사람들도 만나고 많은 가게들도 방문했다. 서울에선 새로운 가게를 갈 기회가 거의 없었다. 단골집들의 맛이 그리워서 겨우 시간을 내서 그곳들만 다녔다. 여기선 새로운 가게를 가며 다양한 접객 방식과 분위기를 만났다. 광장도 쉽게 문을 열고 들어오기 어려운 분위기가 있다고 하는 말처럼 나도 들어가기 어려운 분위기의 가게들이 있었다. 동양인에 대한 차별을 느낄 때도 있었다. 그저 가게 분위기와 겉모습이 어울리지 않을 것 같다고 당한 경계가 영 불쾌했다. 하지만 나도 누군가에게 그렇게 대하진 않았을까. 분명 그랬었던 순간들이 떠올랐다. 연령, 성별로 나누어 미리부터 당신은 여기랑 안 맞는 것 같은데요, 의 기분으로 대했던 몇 분들과의 대화가... 그럴 때마다 성급하게 판단하지 말자고 생각했는데 이번을 계기로 더더욱 깊이 생각하고 사람을 대하자고 마음먹었다. 이런 점 또한 쉬며 마음을 다양한 각도로 펼칠 수 있어서 가능했던 것 같다.
알바하는 친구들과의 도쿄 워크샵도 무사히 끝냈다. 서울의 광장, 도쿄의 하치. 내 입맛이 그러했듯 엄지를 들어주는 알바님들 덕분에 알바워크샵 성공적! 하며 만취와 숙취로마무리했다.
곧 겨울 방학이 끝난다. 하지만 걱정이 끝난 건 아니다. 광장이 다시 문을 열었을 때 광장을 찾던 그 발길들이 다시 닿을지, 다시 찾아줄지에 대한 걱정은 방학 시작 전부터 다양한 걱정으로 들어찬다. 친구들과 손님들은 그런 광장을 좋아하니까 당연히 찾지. 하며 위로의 말을 건네준다. 여러분들만 믿습니다, 저는. 방학 끝날 날이 얼마 안 남은 지금, 마음이 두근두근하다. 이 두근거림이 불안함인지 아니면 설렘인지 모르겠다.
가 보면 알겠지?
광장, 겨울 방학 끝났습니다. 잘 지냈죠?
밥 먹는 술집, 광장, 그리고 광장 사람들의 이야기를 기록합니다.
글, 김광연 / 그림, 박승희
일러스트레이터, 박승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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