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어나자마자 밀린 빨래와 청소를 했다. 우선은 냉장고. 광장은 2주간 영업을 하지 않을 거라 소소히 남은 식재료들을 집으로 가져왔다. 쪽파 반 단과 당근으로 파김치를 담갔다. 양념된 닭고기와 소고기는 각각 소분해 담고 채소들을 어떤 요리에 넣어 해치울지 계획을 세웠다. 어제는 마지막 날이라 함께 늦게까지 일한 아르바이트생과 함께 끝내는 의미의 술을 한 잔 마시다 인스타그램 라이브를 켰고, 코로나로 인해 광장을 방문하지 못했지만 아쉬움을 잔뜩 전달해주는 단골손님들과 1시간을 넘게 인사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이야기와 술에 2주간 방문하지 않을 마무리를 제대로 체크하지 못한 것 같아 출근을 했다. 출근하자마자 앞치마와 린넨들을 세탁기에 돌리고 어제 깜빡한 후드 청소와 쓰레기통 청소, 남은 소소한 쓰레기들의 정리와 콘센트 뽑기로 마무리했다.
매년 일정한 기간 동안 손님들의 주소를 받아 연하장을 보낸다. 그게 벌써 5년째다. 매년 광장에서 다섯 분의 작가님들에게 새해의 띠 동물을 주제로 그림을 의뢰해 연하장 전시회를 여는데 그 시즌에 맞춰서 연하장을 준비한다. 앞서도 밝혔듯 올해는 해외로 떠나지 못하는 상황이라 연말에 맞춰서 잘 보내면 되겠지 하고 어영부영 시간을 보내다 보니 준비를 미리 하지 못해 오늘에서야 그림을 그리고 스캔하고 문구를 쓰고 파일을 만들어 엽서 업체에 주문을 맡겼다. 그리고 겨울 방학기간이 얼마나 될지 언제 다시 열고, 1월에는 어떤 행사들이 열릴지 스케줄표를 만들어 각 SNS에 업데이트했다. 이것이 올해 마지막 SNS 업로드라고 생각하니 휴가가 실감이 났다.
저녁엔 오래 아르바이트한 J가 친구와 함께 회를 사서 집으로 왔다. 서울에서 제일 좋아하는 가게의 회를 포장해온 이유는 어떤 실수를 수습한데 대한 보상 같은 것이었다. (J의 사회적 지위와 명예를 위해 비밀로 남겨 두겠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올해 첫 회식도 이 가게에서 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마스크를 쓰지 않고, 두 명의 아르바이트생들의 송별회를 겸한 회식이었다. 왁자지껄했던 그 날이 2020년, 그러니까 지금과 같은 해가 맞느냐며 코로나 거리두기 이전의 시절을 그리워하는 이야기들을 이어 나갔다. 회를 먹고 라면을 끓였다. 휴가 기간 동안 혼자 먹는 라면은 먹지 않기로 정했다. 하지만 친구들은 내 라면을 아주 좋아하고, 집에만 오면 내가 끓인 라면을 먹고 싶어 하기 때문에 ‘혼자’라는 문구를 일부러 붙인 것이었다. 횟집에서 나오는 라면을 재현하고 싶어 평소에 끓이는 진라면에 계란 넣기 혹은 오징어 짬뽕과 신라면을 한 개씩 넣어서 끓이는 조합이 아니라 안성탕면을 선택했다. 횟집은 김치라면을 아주 시원하게 끓여주는 곳이라 물에 김치를 넣고, 미역을 잘게 썰어 넣었다. 라면 스프는 2개 기준 1개 반만 넣어서 물을 넉넉하게 부어 끓였다. J는 횟집에서 먹던 것보다 오늘의 라면이 더 맛있다고 했고. 믿을 수 없지만 늘 입이 짧다고 하는 J의 친구는 말없이 남은 국물까지 다 마셨다. 이야기가 이어져 지하철 막차를 걱정할 즈음 연말 인사를 나누며 헤어졌다.
오늘은 책을 읽지도 일본어 번역을 하지도 못했지만 일을 제대로 마무리했으니 됐다고 생각했다. 여유 있는 어떤 날 책을 두 권쯤 읽어야지 하고 결심하기도 했다. 내일부터는 꼭 책을 읽어야지 하고 침대 머리맡에 책을 두었다.
하루 종일, 영상물을 보지 않는 것만으로도 시간적 여유가 생기는 것 같아서 만족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