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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웬 Oct 29. 2024

뇌가 알아채지 못하게

살금살금



어제의 하루가 길기도 했으나 (13:00-22:30 no break, no meal) 스트레스를 받은 채로 퇴근을 했다. 집에 오자마자 냉장고에 하나 있던 맥주 한 캔을 냉동실에 넣어두고 샤워 후 맥주를 마셨다. 자정을 향하던 시간이었다. 요즘 일을 하면서 보람과 의미를 찾기가 어렵다는 것. 내 통제를 벗어난 일에 스트레스를 받지 말아야지 하는데도 나 또한 사람인지라 생각과 감정이 내 뜻대로 되지 않을 때가 많다. 어제가 특히나 그랬다. 퇴근길에도 집에 와서도 마음이 좀 풀리지 않아서 힘이 빠졌다. 맥주 한 모금과 함께 뇌를 책 속에 집어넣었다. 관심을 다른 곳으로 옮기려는 일종의 트릭이자 내 도피처이기도 했다. 



역시 몸이 무겁다. 전날 밤 맥주 한 캔의 역사를 가지고 시작된 오늘 아침의 피로도는 상당하다. 머리의 회전도 깔끔하지 않다. 지금도 노트북을 덮고 침대로 뛰쳐가고 싶은 마음의 소리가 나를 부르지만 꾸역꾸역 앉았다. 하고 싶을 때, 내킬 때만 하면 안 되지라는 생각이 나를 붙잡았기 때문이다. 



어떻게 지속할지에 대해서 요즘 많이 생각한다. 



나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나를 부지런하고 강한 의지력의 소유자로 알지만, 나를 정말 아는 사람들은 내가 게으름뱅이에 의지박약자임을 안다.

신수정 <일의 격> p. 123




this is so me!




작가님과 나, 우린 비슷한 사람이었다. 그도 하니까 나도 비슷한 방법으로 하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달 초, 하고 싶다고 말하면서 정작 아무런 행동을 취하지 않는 나를 보며 '이거 진짜 네가 원하는 거 맞아?'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데, 내가 멈추면 제자리가 아니라 퇴보할 뿐인데. 지금 하지 않았을 때 앞으로 내가 마주하게 될 미래를 그려보았다. 그러자 내가 그리고 바라는 미래와는 너무도 다른 모습에 겁이 났다. 나 진짜 그렇게 살고 싶어. 그래서 나를 해야만 하는 환경으로 집어던졌다. 그중 하나가 아침 독서모임이고, 모임이 끝난 후 하는 요가와 글쓰기이다. '오늘 해볼까?' 생각하지 않고 그냥 당연히 하는 걸로 생각하자 마음먹었다. 크게 보면 이 3가지를 모닝 루틴으로. 선택이 아니라 그냥 해보는 거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체력도 관리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고, 식습관도 다시 다듬어야겠다 생각했다. 먹고 마시는 것이 몸에 가져다주는 변화는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면 생각보다 알아차리기 쉽다. 맛 + 피곤해서 마시던 커피를 줄임으로써 아이러니하게도 전반적인 피로도 또한 줄어든 것이 좋은 예이다. 알아차리는데 3주도 채 안 걸렸다. 전날 음주는 다음날 엄청난 피로를 불러옴을 머리로 알았지만 몸으로 겪으며 또다시 상기한다. 





힘을 빼자. 의지력이 부족한 나를 '꾸준히'하는 사람으로 만들어가기 위해 힘 빼는 중이다. 


안 하다가 하려면 갑자기 의욕 충만해서 무리한 에너지를 초반에 쏟아붓는다. 그리고 제풀에 지쳐 중간에 멈추게 되더라. 불꽃놀이처럼 한 번에 와락 쏘아 올려 순간 발광하고 끝이었다. 그래서 이제는 뭔가를 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을 때, 오버하지 않고(제발) 작고 조그맣게 시작해 횟수를 늘려 보자 마음먹는다.



            해야 하는 환경에 나를 집어넣는다. (함께 하기)          

            보잘것없을 만큼 사소하게 시작한다. (작은 시작)          

            (생각하지 않고 일단) 그냥 한다. — 실행과 반복, 그리고 이것이 중요하다. 축적의 시간. 기억하자 축적 후 발산이다)          



일단 여기까지 생각했고, 그렇게 하고 있는 중이다. 


알고 있는 것을 실천하는 훈련을 하는 시간이자 유연성의 발휘가 필요한 시점이다. 세상이 정한 기준이 아니라 내가 지속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서.



책을 읽다가 재밌는 표현에 웃음이 나와서 메모.



편도체 바로 옆을 까치발로 살금살금 지나가라.

로버트 마우어 <아주 작은 반복의 힘> 중



뇌가 알아채지 못하게 살금살금, 놀라지 않게 조심조심. 

참 귀여운 표현이다.

그렇게 나는 오늘도 나와 귀여운 씨름을 해서 1승을 얻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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