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근도 싫어하는 엘리자베스가 된 사연
뇌물이 참 무섭다. 꿀꺽 삼킨 게 있으니 모른 척 넘어갈 수가 없다. 거액의 지출 앞에서 3분 3초 간 망설인 뒤, 나는 '당근도 싫어하는 엘리자베스'가 되었다. 전자책을 읽을 때 이용하던 크레마 클럽을 해지하고 두 배나 비싼 밀리의 서재로 터전을 옮겼다.
지난여름, 삼척 쏠비치로 가족여행을 떠날 때 두 권의 책을 챙겼다. 그중 한 권은 류서아 마케터가 본인의 팬에게 선물 받은 책이다. 열성 팬의 바람과는 다르게 서아는 스스로 챙긴 《어린이 고사성어》만 열심히 읽었다. 식탁 위에서 외로이 자리를 지키는 《숲속 가든》을 보고 있으니, 서점에서 쓸쓸히 머무는 나의 책들이 떠올랐다. 안타까운 마음에 펼친 책은 즉시 나를 다른 세계로 몰입시켰다. 마지막 장을 덮은 후에는 올해 가장 재미있게 읽은 책 중 한 권이 되었고, 가까운 독서 메이트에게도 추천했다. 장모님 역시 책에 푹 빠져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숲속 가든》을 선물한 천유 작가는 류서아 마케터의 열렬한 팬이고, 나는 천유 작가의 은밀한 팬이다. 그녀가 쓴 <글로 버스킹>은 류귀복이 좋아하는 브런치 글 Top 10에 올라 있다. 외롭고 쓸쓸한 날, 책 쓰다가 지친 날이면 몰래 찾아가서 훌쩍이며 읽는다. 벌써 2년이 지났다. 무명작가는 글을 잘 써도 독자를 만나는 게 힘들다. '희망'이란 두 글자에 힘을 얻고 묵묵히 써 나가는 심정이 그녀가 쓴 글에 잘 녹아 있다. <글로 버스킹>은 내게는 선물과도 같은 글이다.
지난봄, 천유 작가는 내게 "브런치보다 기회가 더 많으니 밀리의 서재로 이동해서 글을 써 보는 게 어떠세요? 작가님이라면 금세 인기를 얻을 텐데요"라고 추천했다. 한 우물만 파기에도 시간이 부족한 터라 그녀의 제안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이후 천유 작가는 브런치 글 발행을 줄이고 프로 댓글러(?)로 활약했다. 이웃 작가들의 댓글창을 누비며 룰루랄라 브런치를 즐겼다. 그러던 어느 날, 한량인 줄 알았던 그녀가 기어이 사고를 쳤다. 손가락 10개로 밀리의 서재를 장악한 것이다!
천유 작가가 밀리의 서재에서 연재한 소설이 창작지원 프로젝트에 선정되어 전자책으로 출간되었다. 셜록 귀복이 되어 베레모를 쓰고 탐지한 정보에 의하면, 전담팀이 붙어서 표지를 디자인하고 편집을 진행했다고 한다. 사측에서 적극적인 홍보를 감행하고, 작가는 우아하게 앉아 브런치에 댓글을 남기며 인세를 받는다. '아이고 배야~~! 그때 나도 갈걸!' 하고 후회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많이 흘렀다. 같은 글을 두 곳 플랫폼에 동시에 올리면 기회가 두 배로 늘어나는 것을 그때는 왜 몰랐을까. 심지어 밀리의 서재는 분야에 상관없이 매달 5편씩 선정하여 상금을 100만 원씩 준다고 하니 지나온 나의 1년이 더욱 아쉽게 느껴진다. 흑흑.
밀리의 서재에서 메인을 장식하고 있는 천유 작가의 《급매 106동 101호》를 보고 있으니, 허겁지겁 약통을 열어 복통약을 찾게 된다(작성일 기준으로 밀리 랭킹 종합 4위, 소설 1위를 기록 중이다). 세련된 표지는 기본이고, 카드 뉴스 디자인도 환상적이다. 좋은 기회를 발견했으니 당근도 싫어하는 엘리자베스가 된 김에 나도 연재를 준비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경쟁자가 늘어나면 좋을 게 없지만, 귀인들을 모른 척 넘어갈 수가 없어서 소중한 정보를 남긴다. 더불어 천유 작가의 신작이 선전하여 무명작가들에게 더 많은 기회가 생겨나길 기대하며, 적진(아니다 이제는 동맹군이다)에 침투하여 책을 다운로드하고 댓글을 작성했다.
어라? 그런데 이건 뭐지? 신세계에 방문하여 '총 1억 규모, 출간 공모전 시작!' 광고를 보니 눈이 두 배 더 커진다. 기한도 2월까지로 넉넉하다. 밀리의 서재가 신규 작가 유치를 위해 칼을 꺼내든 게 분명하다. 2년 동안 벗어 놓은 페르소나를 다시 쓸 시간이 된 것일까? '천재작가' 가면에 쌓인 먼지를 툴툴 털어 내다 보니 마음이 흔들린다. 친구 따라 강남 가는 심정으로 친구 따라 밀리에 가고 싶지만 내게는 브런치를 지킬 의무가 있다. 왼손 검지와 약지가 눈치를 살피며 "작가야, 우리도 밀리에 가서 용돈 벌자"라고 수시로 유혹하지만 이를 악물고 버틸 계획이다. 다만 출간이 급한 독자들을 위해 '상담소 좌표'를 남긴다. 다양한 기회를 확보하고 싶다면 아래 브런치에 방문하여 프로 댓글러에게 궁금한 것을 질문한 뒤 도전을 시작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천유 작가의 작지만 의미 있는 성공을 보면서 다시 한번 느낀다. 결과를 만드는 건 오직 행동뿐이다. 출간이 목표라면 '나도 한번 해볼까?' 하고 고민하는 시간도 아깝다. 어느 플랫폼이라도 좋다. 일단 시작하고, 될 때까지 쓰는 게 정답이다. 경험해 보니, 무명작가의 땀과 눈물이 출판계약서를 부른다. 행운을 빈다!
# 작은 출판사와 상생하는 법.
브런치 작가들의 출간을 돕는 1인 출판사가 있다. 대표는 "이 작가는 몇 권을 팔 수 있는 인물인가?"를 고민하는 대신, "이 글은 독자를 만날 가치가 충분한가?"를 고려하는 참 출판인이다. 출판시장이 어렵다 보니, 출판사를 운영하지만 외주 업무를 병행한다. '출간하는 도서의 판매량이 오르면 본업에 종사하는 시간이 늘어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계획대로 된다면 브런치 작가들의 출간도 덩달아 증가할 게 분명하다. 작은 마음들이 모여 한 권의 책이 더 탄생하고, 그 책의 저자는 여러분이 될 수 있다. 바람이 현실이 되길 기대하며, '책과이음'과 '꿈꾸는인생'에서 출간한 신간을 2권 소개한다.
《상처의 쓸모》(유수경, 책과이음)
: 끔찍한 아픔이 담겨있지만 생각의 확장을 돕는다.
《망하는 일은 없다》(전인철, 꿈꾸는인생)
: 개신교 신자들에게 추천하는 에세이.
# 출간 심화 과정 Vol.1
야생보다 치열한 출간의 찐 현실이 궁금한 독자들은 책과이음 대표가 쓴 아래 글을 클릭하여 읽어 보길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