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고에 소극, 결과는 비극
출간은 요령이다. 편집자의 심장에 화살을 꽂으면 출판계약서에 서명을 남기는 시간이 빨라진다. 내 경우 두 번째 책은 메일을 잘 써서 출간계약까지 54시간이 걸렸다. 경험이 쌓이니 기대가 커진다. 이제는 3일도 너무 길다. 3월 3일 출간 예정인 신간은 하루 만에 출간이 결정됐다. 9월 14일 일요일 밤 10시에 출간 의뢰 메일을 발송했고, 익일 오전 10시에 회신을 받았다. 경험해 보니, 사람의 마음을 얻으면 출간은 절로 따른다.
"편집장님! 둥근 해가 대박의 기운을 품고 떠오른 희망찬 아침이 밝았습니다. 기대하고 고대하시던 30만 독자를 사로잡을 원고가 지난밤 완성되었습니다. 바쁘시겠지만 계획된 모든 일을 제쳐두시고 급히 원고를 살펴보신 후 출간 가능 여부 회신을 부탁드립니다"라는 메시지를 카톡으로 보내고 싶었지만, 허벅지를 꼬집으며 꾹 참았다. 월요일 아침은 누구나 분주하다. 인생은 타이밍, 투고도 타이밍이다. 서둘러서 좋을 게 없다. 메일 본문에 내용을 충분히 담았으니, 평소보다 빠르게 뛰는 심장을 차분히 달래 가며 연락을 기다렸다. 금요일 즈음 회신이 올 거라는 예상을 깨고 익일 오전에 바로 답이 왔다.
작가님~ 안녕하세요~~
메일 잘 받았습니다.
계획이 틀어졌다길래...
진도가 잘 안 나가시나... 했더니
세상에, 원고를 끝내셨다고요???
ㅋㅋ
짝!짝!짝!
고생 많으셨습니다.
중간에 목차 피드백 한 번 안 받으시고,
이리 솔깃한 목차를 뽑아내셨군요~
언능 원고 읽어보겠습니다.
미팅 날짜도 곧 잡아볼게요.
정말 날이 선선해졌어요!
오늘도 근사한 하루 보내시고요~!!
바쁜 월요일 아침인데, 벌써 원고를 살펴보았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지난 만남에서 스쳐가는 말로 기획 배경을 설명했는데 귀담아듣고 기다렸던 게 분명하다. 자세히 읽고 또 읽어 봐도 결론은 하나다. 미팅 날짜를 잡는다는 것은 "만나서 출판계약서 작성하시죠"라는 의미다. 함께 책을 낸 경험이 있으니 '쿵' 하면 '짝'이다. 이 분위기라면 편집장이 수정과 보완이 필요한 부분을 체크하여 회신하면, 내가 수정한 후 출간 일정에 맞게 다시 전달하면 책이 나온다. 첫 책을 낼 때는 투고하면서 반년 동안 눈물을 쏟았는데, 2년 만에 상황이 확 달라졌다. 출판사의 홍보부장을 겸임하니 출간이 쉬워진다.
지난봄, 더블:엔 송현옥 편집장이 쓴 《책쓰기부터 책출판까지》가 절판되었다. 당시 나는 <출간 중독>을 연재하며 책을 홍보했다. 최소 30권 이상 판매에 기여했다고 자부한다. 성경에는 "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라고 적혀있지만 나는 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에게 꼭 알린다. 더블:엔 대표를 만났을 때 "편집장님! 제가 《책쓰기부터 책출판까지》 완판에 2% 기여했습니다. 《글쓰기로 먹고살 수 있나요?》도 열심히 홍보 중입니다"라고 말하며 활동 상황을 보고했다. 더 나아가 신간이 나오면 구입해서 읽는 건 기본이고, 틈틈이 브런치에 책을 소개한다. 소속 작가의 자부심으로 전단지를 한 움큼 들고 홍보에 앞장선다.
나도 사람이다. '일편단심 민들레'를 선언하지만 이따금씩 마음이 흔들린다. 매력적인 편집자의 존재를 확인하면 심장과 맥박이 속도를 높인다. 지난주, 태평양 한가운데로 자존심을 내던진 garden 작가가 내게 출간 홍보를 부탁했다. 나는 생활형 작가다. 사람을 보고 홍보를 결심한다. 어려울 때 손을 먼저 내밀어준 귀인의 요청이나 응원하는 출판사에서 출간하는 책은 글이 술술 써지지만 접점이 없으면 쓰기가 힘들다. 불행히도 garden 작가는 어디에도 해당이 안 된다. 책을 한 권 구입하는 것으로 작은 마음을 나누기로 결심한 뒤 서점 사이트에 접속했다.
출간 중독에 걸린 이후, 나는 책을 살필 때 출판사부터 본다. 신간 하단에 적힌 '퍼스널에디터'라는 여섯 글자가 눈길을 끈다. 자비출판이나 반기획출판에 어울리는 사명이다. 만약 그게 아니라면... 왠지 대박일 것만 같다. 촉이 왔다. 미리보기를 확인하는데, 역시나 예사롭지 않은 기운이 감돈다. 출판사 소개가 매력을 뿜뿜 발산한다.
호기심이 관심으로 이어져 1시간 가까이 출판사에 관한 정보를 모았다. 아니나 다를까 출판사 대표의 이력이 화려하다. 쌤앤파커스에서 근무한 19년 차 편집자다. 인터뷰 글을 보면 윤문을 잘한다고 적혀 있는데, 천상계 필력을 구사하니 윤문은 당연히 잘할 거라 예상한다. 특히 낮술을 즐기면서 '드렁큰에디터'로 활약한 경력이 주목할 만하다. 매달 에세이 한 권을 출간한 열정도 눈부시다. 출간한 도서들을 보니 제목 센스도 넘사벽이다. 이게 다가 아니다.
좋은 작품은 창작자를 사랑할 수밖에 없게 만든다. 이 책이 그렇다.
garden 작가의 신간 《상극의 희극》 도입부를 장식하는 글이다. 두 줄을 읽고 나니 도파민이 팡팡 터진다. 오랜만에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혹하는 문장을 적어주는 편집자와 작업을 하는 상상을 하니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3분 3초간 구름 위에 붕 뜬 체험을 마치고, 현실로 돌아와 추천사 다음에 적힌 '기획자 코멘트'까지 읽었다. 마지막 마침표를 확인하자마자 손가락이 급하게 구매버튼으로 향했다. 혼자만 알고 싶은 귀한 정보지만 독자들을 위해 아낌없이 나눈다. 퍼스널에디터는 2025년 7월에 첫 책 《생계형 E로 살아가는 I의 사회생활》을 출간했고, 《상극의 희극》이 세 번째 책이다. 여기서 힌트를 얻는다.
신생 출판사는 투고원고가 귀하다. 투고 경쟁률이 상대적으로 낮다. 게다가 인간은 나약하다. 처음은 늘 외롭고 힘들다. 어두운 터널을 지날 때 건네는 위로는 위력이 수십 배, 상황에 따라 수백 배 더 강하게 작용한다. 출판사가 자리 잡는데 기여하면 그 감동은 평생 잊히지 않는다. 만약 내게 더블:엔이 없었다면, 퍼스널에디터에서 출간한 책을 전부 읽고(그래봐야 3권이다), 판권면에 적힌 이메일 주소로 <남연정 대표님, 퍼스널에디터 홍보부에 지원합니다>라는 제목을 붙여 연락했을 게 분명하다. 본문은 아래와 같이 적을 것 같다. 대표가 남긴 인터뷰 글을 참고하니 문장이 쉽게 써진다.
남연정 대표님, 안녕하세요^^?
성격이 정반대인 부부가 자식을 낳고 살아가는 기쁨을 《상극의 희극》이라는 제목으로 표현하시고, 연애편지보다 달콤한 기획자 코멘트까지 남겨 놓으시니, 저의 설렘이 한도를 초과하여 메일을 작성합니다.
대표님의 의지와 상관없이 저는 오늘부로 퍼스널에디터의 홍보위원으로 활동할 계획입니다. "궁합은 상극, 인생은 희극"이라는 표지 카피를 가슴에 새기고, "홍보에 소극, 판매는 비극"이라는 각오로 이마에 띠를 두르겠습니다. 내돈내산 서평은 기본이고, 사돈에 팔촌까지 책을 알리겠습니다. 남연정 대표님의 팬이 되어 출판사에 애정을 쏟겠습니다.
인연이 깊어져서 훗날 '낮술'을 함께하는 기쁨을 누린다면 가문의 영광이겠지만, 아니어도 괜찮습니다. 퍼스널에디터의 성장을 지켜보는 게 제게는 큰 기쁨이 될 듯합니다. 가까운 듯 먼 곳에서 열심히 응원하며 종종 인사드리겠습니다. 몸치가 어깨를 들썩이게 만드는 멋진 책 만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따스한 연말 보내세요:)
퍼스널에디터 열혈 독자
류귀복 올림
퍼스널에디터의 남연정 대표는 브런치에서 활동하는 무명작가의 첫 책을 과감히 출간했다. "여러분의 원고도 충분히 책이 될 수 있다"라는 의미다. 매달 책을 낸 경험도 있으니 좋은 원고를 받으면 망설일 이유가 없는 사람이다. 이 글에서 아이디어를 얻었으면, 생각에 멈추지 말고 실천으로 옮겼으면 좋겠다. 다만 유의할 점이 있다. 과욕은 종종 참사를 부른다.
"님아 그 선을 넘지 마오."
당신의 관심이 스토킹이 되지 않도록 정도를 꼭 지켜야 한다. 출간은 충분한 노력과 시간이 필요한 일이다. 얼마 전, 온OO 작가가 내게 추천사를 부탁해서 0.01초의 망설임도 없이 흔쾌히 수락했다. 추천사 비용을 고민하는 의뢰자에게 333만 원이라고 정확히 알려주었다. 다만 "작가님은 무상 이용권이 있어서 이번에는 무료입니다"라고 덧붙였다. 내게 추천사를 의뢰한 작가는 내가 출간한 두 권의 책을 전부 읽고 서평까지 남겨준 귀인이다. 내가 약하고 힘들 때 힘을 실어 준 은인에게 추천사는 백 번도 넘게 써 줄 수 있다. 처음을 함께한 인연은 그만큼 소중하다. 필자의 사례를 참고하여 출간의 기회를 득하길 바란다.
남연정 편집자가 자석처럼 끌리지만, 내게는 송현옥 편집장이 늘 우선이다. 순도 99.9%의 기쁨으로 여러분에게 인연을 양보한다. 단언컨대, 발상을 전환하면 출간 난도가 '상'에서 '하'로 급격히 낮아진다. 민망함은 순간이지만 책은 영원하다. 건투를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