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이란 볼거리의 괴로움
대부분의 전쟁 영화들은 반전(反戰) 영화로 위장한 액션 영화일 때가 많다. 잔혹한 전쟁의 참상을 보여주며 전쟁은 절대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메시지를 강조하지만 늘 명확한 선과 악의 구분이 있고 선의 편에 선 주인공의 활약이 영화의 중요한 볼거리이다. 악당은 처벌을 받아도 되는 대상이며 사람의 생명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명제는 우리편 병사들에게만 해당된다. 하지만 전쟁 영화에 악당인 보이지 않을 경우 어떻게 반응해야 할 것인가? 보이지 않는 악당을 미워할 수 있을까?
<저니스 엔드>는 액션이 없는 전쟁영화이다. 전쟁영화라면 당연히 기대되는 총격전과 폭발이 벌어지지 않고 일당 백으로 악당들과 싸우는 전쟁 영웅 캐랙터도 등장하지 않는다. 이 영화에는 전쟁 영화라는 장르 영화가 관객들에게 늘 전달해주던 고정관념과도 같은 쾌감이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늘 긴장감과 만성 피로에 시달리고 있는 주인공들에게서는 악을 처벌하고 평화를 수호해야 한다는 대의명분 같은 것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늘 사람의 손이 부족한 전쟁터이기에 새로 전입한 애송이 장교를 따뜻하게 맞이하는 착한 군인의 모습은 영화에서 한 번도 본 일이 없기에 동화 속 장면처럼 비현실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주인공들은 부당한 명령에 맞서 싸우지도 않는다. 정의감은 모두 소진된 상태이기에 그들에겐 이제 의무감밖에는 남아있지 않다. 예정된 독일군의 공습을 기다리며 시간과 싸우는 이들의 모습은 마치 사형선고 집행일을 알게 된 사형수들 같다.
<저니스 엔드>는 전쟁영화라는 장르가 쌓아올린 모든 고정관념에 도전한 영화이다. 전투씬 없이 악당의 얼굴도 보지 못한 채 단 한번의 공습을 기다리는 이 영화가 관객들의 선택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저니스 엔드>는 전쟁 영화의 시각적인 쾌감보다는 메시지에 집중한다. 전쟁이 발생하면 그 전쟁을 이겨내는 영웅보다 전쟁을 겪어내야만 하는 사람이 있음을 알려주는 영화이다. 주인공인줄 알았던 배우가 활약도 없이 갑자기 나타나지 않는 상황을 목격하는 것은 괴로운 경험이고, 이 영화가 관객들에게 전달해주고자 하는 것은 그 괴로움이었을 것이다. 이 영화를 관람한 사람들이라면 군인들도 누군가의 사랑스런 가족이고 이들의 목숨은 권력자들의 저녁 식사 이야기거리를 만들어주기 위해 희생되어서는 안된다는 아주 짧고 굵은 메세지를 기억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벤자민 플랭클린의 유명한 말로 이 글을 맺는다.
“No Such Thing as a Good War or a Bad Pea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