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한 사실이지만 나는 올해 우리나라 극장에서 개봉한 영화들을 모두 관람하지 못했다.
<후드>나 <물괴>, <벽 속의 마법시계>같은 영화를 보지 않은 것은 전혀 후회스럽지 않지만 <버닝>, <살아남은 아이>, <죄많은 소녀>를 놓친 것은 이제와서 후회스럽다.
<유전>과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은 좋은 영화인지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유사 장르 영화들에 대한 나의 선입견 때문에 아직도 관람하지 않고 있다.
누구나 마찬가지 일 것이다. 취향의 문제, 시간의 문제, 돈의 문제로 인하여 한 해에 개봉한 영화를 모두 관람한다는 것은 누구나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아래의 순위는 내가 "관람했던 영화"에 출연한 여배우들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지극히 개인적인 순위이다. 유일한 기준이라면 2018년 극장 개봉한 영화 중 2편 이상 출연했던 배우들로 한정했다.
오션스8에 출연했던 쟁쟁한 헐리웃의 스타들 사이에서 유독 눈에 띄던 배우는 아콰피나라는 아시아계 여배우였다. 예쁜 구석이라곤 하나도 없고 목소리마처 허스키한 그녀의 역할은 분명 다른 배우들을 돋보이게 만들기 위한 조연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콰피나는 8명의 절도범들 중 관객들로부터 가장 많은 시선을 받은 배우가 되었다. 드레스를 입은 산드라 블럭과 가죽 자켓을 입은 케이트 블란쳇도 그녀 앞에서는 속수무책이다. 그녀가 나오는 순간 다른 사람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오로지 그녀만 보인다. 이 후 개봉한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에서도 비슷한 캐랙터로 존재감을 각인시킨 아콰피나는 아마도 2018년 세계적으로 가장 크게 “뜬” 배우일 것이다.
<독전>이란 한국 영화에 대한 호불호는 많이 갈리지만, 이 영화에 출연한 배우들의 연기가 훌륭했음은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고인이 된 김주혁 배우의 마약 중독자 연기는 물론, 출연 분량이 많지 않았던 차승원 배우나 김성령 배우의 연기도 인상적이었다. 그러나 그 수많은 스타 배우들 사이에서 가장 돋보였던 배우는 농아를 연기한 이주영이란 신인 배우였다.
<독전>을 보기 전까지 이주영이란 배우를 전혀 알지 못했기에 혹시 진짜 농아가 아닐까라는 의심이 들만큼 그녀의 연기는 대단했고, 그녀의 카리스마는 주연배우들을 능가하였다. 남자인지 여자인지도 분간이 가지 않던 이주영은 <독전>의 신스틸러로서 2018년 한국 영화계가 발견한 보석 같은 배우 중 한 명이다.
출연작에 비해 인지도가 낮았던 클레어 포이란 배우는 2018년에 우리나라 관객들에게 눈도장을 단단히 찍었다. 그녀 주연인 영화가 3편이나 극장 개봉했기 때문이다.
<달링>에선 사랑스러운 여인으로, <퍼스트맨>에선 현실의 문제를 안고 사는 우주 비행사의 아내 역할로, <거미줄에 걸린 소녀>에서는 제이슨 본과 같은 여성 영웅 캐랙터를 연기하였고, 3편 모두 강한 개성의 소유자들이었다.
특히 <퍼스트맨>에서 그녀의 연기는 매우 인상적이다. 남자 주인공 중심의 SF영화에서 주인공의 아내 역할로 나온 배우가 관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주기란 쉽지 않지만, <퍼스트맨>을 본 관객이라면 우주 비행사의 고뇌만큼이나 그녀의 고뇌에 공감할 수 밖에 없도록 만든다. 부족하지도 않고 과하지도 않으면서도 관객들의 마음을 움직인다.
이 세상의 모든 불만을 한 몸에 품고 있는 것 같은 독특한 표정 연기가 매력적인 클레어 포이는 다음 작품의 변신이 또 한번 기대되는 배우이다.
<필름스타 인 리버풀>에서 매력적인 노년 여성을 연기한 아네트 베닝은 올해의 끝자락에 개봉한<갈매기>에서 또 한번 놀라운 나르시스트 연기를 선보였다. 아네트가 연기한 노년의 여배우는 남성들의 시선을 다른 여성에게 빼앗기고 싶어하지 않는 캐랙터였고, 최소한의 동선과 표정 연기 만으로 모든 감정을 담아내던 아네트 배닝의 연기는 대단하다라는 말 밖에 달리 설명한 방법이 없다.
<필름스타 인 리버풀>과 <갈매기>에서 텍스트로는 설명이 불가능할 정도의 복잡한 정서를 정제된 대사와 표정으로 전달하는 아네트 베닝은 올 최고의 연기 장인임이 분명하다.
올해는 시얼사 로넌의 해였다. <레이디 버드>를 시작으로 <체실 비치에서> <갈매기>와 같은 작품으로 연기의 폭을 넓였고, <러빙 빈센트>에서 목소리 연기, 게다가 한국에서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재개봉으로 인하여 그녀의 이름을 잘 몰랐던 한국 관객들에게도 존재감을 각인시킨 한 해였다.
장르에 상관없이 올 한해 다수의 작품에 출연하여 출연작마다 강렬한 존재감을 발휘한 시얼사 로넌은 올해 가장 빛난 여배우였음을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