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영화라도 한 가지 장르만 가지고 분류하기는 어렵다. ‘액션 스릴러’이란 표현도 있고 ‘코믹 액션’, ‘로맨틱 코메디’란 장르도 있다. 영화를 재미있게 만들기 위해 여러 장르를 혼합하는 것은 결코 반칙이 아니다. 한 가지 예외 있다면 다큐멘터리 장르일 것이다. ‘다큐멘터리’는 오직 ‘다큐멘터리’이어야만 한다. ‘액션 다큐멘터리’란 말도 없고 ‘로맨틱 다큐멘터리’란 말도 없다. ‘페이크 다큐’란 표현이 간혹 사용되기는 하지만 이는 극영화의 장르이지 다큐멘터리의 장르가 아니다.
누구라도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을 관람한다면 이 영화의 장르가 다큐멘터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이 영화는 다큐멘터리가 지켜야 할 규칙들을 마음껏 위반한다.
영화가 시작되자마자 두 주인공은 연출된 장면을 통해 등장하고 연기를 하기 시작한다. 카메라는 주인공들을 따라다니다가도 두 주인공의 시선을 번갈아가며 대변하기도 하고, 영화 후반부에서는 아예 대놓고 바르다와 시선을 일치시키라는 요청을 받기도 한다. 일반인 출연자들도 연기를 하고, 심지어는 미장센까지도 등장한다. 극영화에서 사용되는 방식들을 이처럼 눈치보지 않고 사용한 다큐멘터리가 또 있었던가?
이처럼 과감하게 형식을 파괴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비평가들로부터 비난 받지 않은 이유는 야네스 바르다라는 이름의 무게감 때문이었을 것이다. 프랑스 영화계의 거물이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규칙의 위반”을 규칙으로 사용하겠다는 선언을 했을 때 젊은 비평가들 – 지구상의 거의 모든 비평가들은 그녀보다 젊다 – 이 영화를 함부로 비난할 수 없었다. 하지만 다큐멘터리 영화에 연출이 포함된다면 재미는 있지만 그 진실성은 외면받게 될 것이다.
작년 11월 개봉했던 또 한편의 다큐멘터리 <화씨 11/9 : 트럼프의 시대>는 마이클 무어 감독의 능력을 의심받게 만든 영화이기도 하다. 열렬한 트럼프 헤이터인 마이클 무어 감독은 다큐멘터리라는 형식을 이용하여 시종 일관 트럼프를 비난하는데, 자신의 비난에 대한 근거로서 자신의 입맛에 맞는 화면만을 사용하고 있다.
<화씨 11/9 : 트럼프의 시대>에서 마이클 무어 감독은 자신의 비난에 도취되어 결국엔 객관성까지 상실한 채 트럼프와 연관된 모든 사람들을 비난한다.
<화씨 11/9 : 트럼프의 시대>의 한 장면을 예로 들어 보자. 감독은 트럼프가 전세계 독재자만을 좋아한다고 나레이션을 통해 말하며 전 세계 독재자들과 악수하는 모습들만을 편집하여 보여준다. 그 장면들 중에는 우리에게도 친숙한 장면이 포함되어 있다.
트럼프를 비난하기 위해 제작된 다큐멘터리 - 마이클 무어 입맛에 맞는 장면만이 사용되었다.
김정은과의 악수 장면을 본 관객이라면 "트럼프가 독재자를 좋아한다."라는 감독의 의견에 설득될 것이다.
트럼프가 독재자를 좋아한다는 감독의 의견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그 의견에 대한 근거는 완전히 틀렸다. 영화 개봉 당시 트럼프는 집권 2년차였다. 트럼프는 이미 전 세계 대부분의 지도자들과 악수를 나눈 상태였고, 그들 중에는 우리 나라 대통령도 포함된다. 그러나 영화는 의도적으로 독재자와의 악수장면만을 편집하여 독재자만을 좋아하는 자신의 의견을 뒷받침할 수 있는 근거를 만든다. 이는 전형적인 조작이다.
<화씨 11/9 : 트럼프의 시대>와 비교한다면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은 훨씬 귀엽고 독창적이다. 거장 감독의 사랑스러운 영화라는 점을 부정할 수가 없다. 그러나 다큐멘터리를 재밌게 만들기 위해 연출을 허용해도 되는지 고민하게 만든다.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이 진정 사랑스러운 영화가 되기 위해서는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 중 그 누구도 연기자이어서는 안된다. 그러나 영화는 연출된 장면으로 시작하였고, 수많은 연출이 등장했기에 등장인물들이 감독의 요구에 맞춰 연기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할 수 밖에 없다.
이들이 만일 연기자라도 이 영화를 좋아할 수 있을까?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은 다큐멘터리 영화로도 재미를 위해서라면 연출을 해도 된다는 선례를 남긴 영화가 되었다. 영화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몰래 해야만 했던 연출을 대놓고 할 수 있게 만들어 준 면죄부와 같은 영화이다. 그러므로 이 영화, 결코 바르지 않다.
P.S : 고다르씨. 이 영화를 통해 당신이 아직 살아계시다는 것을 알게 되었소. 아직 거동이 가능하시다면 영화 한 편만 더 만드시오. 당신과 비슷한 나이의 우디 앨런도 아직 현역이오. 필요하시다면 한 약 한첩 달여서 보내드리겠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