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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우 May 31. 2023

무식하게 일하면 무식한 결과가 나온다.

단행본 직접 만들기 참 힘들다



처음엔 제본까지 할 생각은 없었다. 그냥 pdf 파일로 만들어서 배포할 예정으로 시작했다. 어쩌다 보니 나는 마감을 정해놓고 새벽까지 수정 작업을 하고 있는 걸까? 어차피 판매용도 아닌데.



무슨 말이냐면 내 첫 책 이야기다. 책을 한 권 만들고 있는 중이다. 내용은 독서모임에 사용될 서평과 질문 모음이다. 2016년부터 블로그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고 지금까지 꾸준히 써오던 것은 바로 책에 대한 글이었다. 처음엔 남들과 같은 책에 대한 가벼운 인상을 적었다. 시간이 지나 좀 더 욕심을 내 나름대로 서평을 작성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서평과 독후감 비평이 뭔지도 모르고 막 썼다. 그냥 휘발성으로 날아가는 책 내용을 붙잡고 싶었다. 그래서 쓰기 시작했다.



쓰려고 보니 도무지 내용이 생각이 나지 않았다. 분명 완독을 했고 머릿속에도 그 잔상이 남아있는데 말 그대로 잔상처럼 남아 있어서 제대로 꺼내 활용할 수가 없었다. 바꿔 말하면 기껏 열심히 읽었는데도 어디 가서 자랑할 만큼 책에 대해 이야기할 수 없었다. 기왕에 힘들게 책을 읽었으면 뭐라도 남아야 하는데 남은 게 없다. 굳이 남은 게 있다면 완독 했다는 뿌듯함 정도였다. 완독의 기쁨은 중학생 때나 느끼는 거지 성인의 독서라면 좀 더 목적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재미를 추구한다면 확실한 재미를 보장해야 한다. 재테크 책을 보면 재테크에 대한 지식이 남아야 하고, 역사책을 읽으면 역사 지식이 남아야 하는데 도무지 남지 않았다. 남아 있는 게 없으니 쓸 수 있는 게 있을 리 만무했다.



대책을 세워야 했다. 책을 다시 들춰봐도 요약이 쉽게 되지 않는다. 아마도 너무 많은 걸 기억하고 싶은 욕심이지 않았을까. 심지어 충분한 독서 훈련이 되지 않은 나에게 두꺼운 책을 요약하는 게 쉽지 않았다. 누가 나에게 지금 읽고 있는 책은 무엇이며 어떤 내용인지 간단히 말해 줄 수 있냐고 묻는다고 해도 과거의 나는 전혀 말할 수 없었다. 창피했다.



"그래 거창하게 말고 딱 한 문장으로 책을 요약해 보자."



한 권의 책에서 단 하나의 지식이라도 남길 수 있다면 그 독서는 성공이라고 생각한다. 어차피 단 하나의 지식만 남길 것이라면 책을 깊이 있게 읽지 않아도 된다. 심지어 완독을 하지 않아도 상관없다. 그래서 책에서 얻은 깨달음을 하나둘씩 적어 보기로 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책을 요약하고 한 권의 책에서 얻어야 할 지식도 한 개 내지 두 개 정도 얻게 되었다. 깔끔하게 정리하니 블로그 포스팅만 봐도 내가 요약한 정도는 알 수 있게 되었다.



2022년부터 본격적으로 북클럽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참여한 건 2018년이었고 망해가던 북클럽을 인수받은 게 2020년이었다. 2020년엔 코로나 바이러스가 찾아와서 그 해와 그다음 해는 실질적으로 독서모임을 제대로 진행할 수 없었다. 그 2년간 조금씩 서평 실력이 쌓여갔고 독서모임의 시스템도 자리 잡기 시작했다. 그간 써왔던 서평들을 본격적으로 활용해서 2022년 북클럽 첫 정모부터 활용하기 시작했다.



내 북클럽은 매주 1회씩 정모를 가져 한 달에 네 번의 정모를 한다. 책은 한 달에 한 권으로 진행했다. 한 권의 책으로 4주간의 독서모임이 가능하냐고 묻는다면 가능하다. 바쁜 직장인들의 휴식을 위해 나는 두 번의 책 읽기와 한 번의 수다 그리고 한 번의 토론회를 준비했다. 일반적인 사람들이 모이기 때문에 준비된 진행이 없으면 모임은 이도 저도 아니게 되어 버린다. 그래서 나는 매주 2시간 모임을 위해 먼저 책을 완독하고 스몰 토크와 질문들을 준비했다. 그리고 모임이 시작되면 첫 15분은 나의 모두 발언으로 시작되는데 그 발언을 위해 에세이를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글에 살을 더하기 시작했다. 책을 읽으며 자연스럽게 얻은 키워드들을 정리했다. 지명이나 인명 그리고 알 수 없던 단어들과 개념들을 모아 인문학 지식 파트로 엮었다. 이런 작업들이 쌓여 지적 자산이 된다. 궁금증이 생기면 질문으로 만들었다. 좋은 문장이 있으면 발췌해서 코멘트를 달았는데 이 코멘트 달기는 이제 나의 핵심 무기가 되었다.



이렇게 점점 지식의 살을 더했고 이제 책 한 권을 읽으면 에세이를 쓰고 작가에 대해서도 탐구하기 시작했다. 키워드를 뽑고 밑줄 친 글에 내 생각을 적고 질문을 만들었다. 추가로 책과 관련된 질문을 10개 정도 만들었고 그 과정 중에 모인 지식들도 추가했다. 마지막으로 소회를 적으면 한 달짜리 북클럽 프로그램이 만들어진다. 일반적인 서평 쓰기 방식은 아니지만 독서모임을 운영하기에 최적화된 것은 사실이다. 그렇게 2022년 12개의 서평을 완성했고 이를 기념하기 위해 pdf 파일을 준비했다. 그리고 오늘 이 고생을 하고 있다. 원래는 오탈자와 비문 정도만 수정하고 사진만 좀 추가해서 모임원들에게 기념품으로 제공할 목적이었다. 맥북을 쓰던 나는 초안을 pages로 작성했고 그걸 네이버 블로그로 옮겨서 추가 작업을 했다. 추가 작업을 하면서 이 두 개의 툴 간에 괴리가 발생했다. 이를 바로 잡으려고 첫 번째 수정을 했다. pages로 모든 글을 옮겨 왔다. 글들을 모아 보니 어떤 것은 반말 어떤 것은 존댓말 그리고 반존대까지 난무했다. 구어와 문어는 따로 구분하진 않았지만 존대를 할지 반말로 할지는 확실하게 정해야 했다. 퇴고의 중요성을 깨달은 순간이었다. 



반말을 쓴다는 건 나의 독백을 누가 들어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쓰는 글이고, 존댓말은 정보를 전달하는 목적으로 쓰는 글이더라. 그래서 많은 에세이들이 반말로 편하게 말하더라.



배포용이기 때문에 존댓말로 결정을 하고 두 번째 수정을 했다. 그리고 삽화를 추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문제가 시작되었다. 설정을 잘 못 한 건지 사진이 자꾸 왔다 갔다 했다. 글을 수정하거나 띄어쓰기만 바꿔도 사진이 이리저리 움직였다. 어찌어찌 초안을 완성했다. 이 정도의 과정을 거치고 나니 욕심이 생겼다. pdf 파일로만 두기엔 노력이 아깝게 느껴졌다. 이렇게 된 거 제본을 뜨자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프린터가 있었기 때문에 약 180 페이지의 초안을 프린트했다. 



“오 마이 갓”



단면 인쇄로 하니 너무 두껍다. 그리고 a4 용지는 너무 컸다. 가독성이 너무 떨어졌고 페이지도 엉망이다. 이때부턴 제대로 인쇄업체에 맡겨야겠다는 마음으로 재수정을 시작했다. 캔 바라는 툴을 이용해 책 표지를 만들었다. 소제목을 오른쪽에 배치하기 위해 빈페이지도 추가했다. 모든 과정을 마치고 제본 업체를 알아보는데 새로운 문제가 생겼다. 그게 뭔고 하니 바로 인쇄 사이즈 선택이었다.



인쇄용지와 제본 방법 등을 확정 짓기 위해 여럿 제본 블로그를 보고 있는데 마침 독립출판 체험에 관한 블로그를 보게 되었는데 마침 그 사람도 맥북을 쓰고 있었다. 그런데 나랑 페이지 설정이 정말 달랐다. 그 사람은 a5 사이즈로 작업을 했는데 나는 a4로 작업을 했다. 내 딴엔 a4로 작업해도 a5로 맡기면 알아서 줄어들겠거니 생각했는데 그렇게 작업하면 가독성 떨어지는 완전 엉망인 결과물이 나온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내 초안은 한 페이지에만 무려 30줄이 넘게 들어가고 한 줄에도 글자가 40개는 넘었다. 당장 옆에 레퍼런스가 될 만한 책을 보니 24줄로 되어 있었고, 줄 간격도 꽤 넓었으며 한 줄에는 대략 30개의 글씨가 들어갔다. 그리고 폰트의 사이즈는 10p가 일반적이었다. 만일 이 사실을 모르고 그대로 인쇄했으면 진짜 돈만 날렸을 거다.



대량 인쇄 전엔 꼭 초안을 받아서 확인해야 한다. 초안을 받아 다시 꼼꼼하게 확인하고 수정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나는 이 과정을 아이패드로 했는데 솔직히 지금도 아이패드로 하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다. 그러나 물성을 지닌 진짜 책을 넘기면서 봐야 진짜 문제점을 찾을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제본비도 문제다. a4사이즈를 a5로 인쇄한다고 과정 했을 때 컬러용지 양면 인쇄로 옵션을 정해봤다. 대략 190페이지 정도인데 인터넷 주문을 하려니 대략 가격이 2만 원이 넘었다. 응???? 300 페이지가 넘는 책들도 1.5만 원이 넘지 않는데 왜 이리 비싸지? 대량 인쇄가 아니어서 그렇다. 문제가 하나 더 생겼다. 위의 설정대로 a4를 a5로 설정하고 행간과 자간 그리고 줄간격을 맞추고 글자 크기를 무려 10p까지 줄였는데도 불구하고 페이지수가 300페이지를 넘겨 버렸다.



“오 마이 갓 2”



이거 인쇄비가 감당이 될지 모르겠다. 어쨌든 최종 수정을 다시 해야 하고 인쇄 업체도 알아봐야 하는데 처음 계획했던 20권을 넘어 100권은 출력해야 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이게 다 무식하게 시작해서 그렇다. 그렇게 꼼꼼한 척은 다하면서 결국 제대로 하려고 하는 일들은 항상 무식하게 하는 나쁜 버릇이 있다. 책을 낸다는 것이 그 정도로 어려운 일인지도 모르고 덤볐다. 무식하게 일하면 무식한 결과가 나온다. 어쨌든 대충 전자책이나 만들어보자고 생각했던 작업이 단순 제본을 넘어 제대로 만들어서 팔아보자는 지경까지 이르게 되었다. 심지어 초안이었던 a4 사이즈의 pdf 저장을 안 해둬서 현재는 a5 사이즈만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결국 전자책도 a5가 되어 버렸다. 전자책은 따로 사이즈가 있나? 그것도 찾아봐야 한다.



이번 책은 사실 비매품이다. 즉 팔 수 없다. 삽화로 사용된 작가들의 사진의 초상권은 전혀 해결되지 않았고 내용의 1/4은 원작에서 인용한 문장들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이번 책은 독서용이 아니라 독서모임 진행용 핸드북이기 때문이다. 좀 더 보강을 해서 독서모임을 운영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전자책으로 판매할 생각이긴 하지만 출간물 등록이 가능할진 모르겠다. 그러니 좀 더 스마트한 접 큰이 필요하다. 가령 원 출판물에 부록으로 끼워 주는 사은품으로 사용해서 수익화를 하지 않는 방법 같은 거 말이다.



오늘은 하루종일 책 교정을 했다. 본업이 장사인데 손님이 하나도 없어서 마음껏 교정했지만 아직도 다 못했다. 그러나 100일간은 하루도 빠지지 않고 1시간씩 글쓰기 그리고 그 글로 책 만들기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고 지금 이 글이 실질적인 내 첫 책이 될 예정이기 때문에 오늘도 의무감에 글을 쓴다. 작업 중인 이 책도 돈이 되는 책은 아니다. 당장은 돈이 되지 않아도 괜찮다. 이 책으로 인해 나의 가치가 올라가면 충분하다. 지금은 그게 필요하다. 나는 재산도 학벌도 인맥도 없기 때문에 퍼스널 브랜딩이 아니면 살아남을 수 없다. 그 사실을 분명하게 인지하게 되었다. 



가난에서 탈출하려면 목숨을 걸어야 한다. 먹고 살만해서 컨베이어 벨트 같은 일을 하지 않을 수 있다면 가급적 피해야 한다. 당장에 그런 일을 해야 한다면 악착같이 일하고 아껴 모아야 한다. 컨베이어 벨트 앞에서 탈출하는 방법은 그것밖에 없다. 그리고 자투리 시간을 아껴 자기 계발을 해야 한다. 그 방법 밖에 없다. 로또 살 돈도 아껴라. 로또 당첨돼서 얻게 되는 건 행복이 아니라 다음에도 당첨되지 않을까 하는 허황됨 뿐이다. 컨베이어 벨트 앞에서 일하는 건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그 일에서 평생 탈출하지 못하는 당신의 미룸이 부끄러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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