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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우 Jun 03. 2023

책은 아무나 내는 게 아니다

글에는 목적이 있어야 한다


pc가 보급되고 나서 아니 엄밀히 말해서 키보드가 보급되고 우리는 일상에서 쉽게 글을 쓸 수 있게 되었다. 내가 기억하는 첫 작문은 편지였다. 수줍은 러브 레터였을 그 편지가 내 글의 시작이었다. 그리고 틈틈이 써왔던 일기와 나름 시라고 주장하는 것들 몇 가지가 있다. 철들고 나서 작성했던 기록물들은 모두 보관하고 있어서 나름 아카이브를 구성하고 있다. 지금은 대부분의 글들을 네이버 블로그에 기록한다. 지금도 종이 다이어리와 아이패드 굿노트 그리고 아이폰 메모에는 기록물들이 쌓여있다. 정리되지도 못한 채. 정리해야지 마음먹었던 게 몇 년이나 그냥 아무렇지 않게 흘러가 버렸다. 역시 마감력이 부족해서 그런가?



글 쓰는 이유는 다양하다. 석박사들은 논문을 위해 글을 쓴다. 회사원들은 보고서를 작성하기 위해 글을 쓴다. 블로거들은 자신의 일상이나 리뷰를 위해 글을 쓴다. 우리는 문학적 글쓰기만 글이라고 착각한다. 그래서 사무적인 글과 일상의 단문들은 글쓰기에서 배제되곤 한다. 그러나 취업준비를 한 번이라도 해본 사람이라면 글쓰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안다. 대면 면접 보기 전에 필수로 써야 하는 글 바로 자기소개서다. 



취준생에게 자소서는 자신의 운명을 결정하는 요소다. 잘 쓰면 대기업 못쓰면 중소기업이라고 극단적으로 생각해 보면 더 와닿을까? 물론 자소서만 잘 쓴다고 대기업에 가는 건 아니지만 자소서를 못쓰면 대기업에 입사하긴 힘든 건 분명한 사실이다. 자소서는 아무렇게 쓰면 안 된다. 자소서는 면접관이 본다. 면접관마다 타입이 다르긴 하지만 그들의 수준은 대체로 비슷하다고 봐도 된다. 좋은 자소서는 면접관들이 글의 서두 두 줄만 읽어도 면접자를 판단할 수 있을 만큼 명쾌해야 한다. 자신은 꾸미되 글은 꾸미면 안 된다. 그 어떤 미사여구를 화려하게 구사해도 자신이 화려해지진 않는 탓이다. 그래서일까. 자소서 쓰는 비법에 관한 책도 있고 대필해주기도 한다. 대필로 대기업에 들어갈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자소서로 운을 띄운 이유는 모든 글에는 목적이 있어야 한다는 말을 하고 싶어서이다. 대부분 글을 쓸 때 똑같이 실수를 한다. 바로 "목적 망각"이다. 비단 글뿐만은 아니다. 우리는 삶에서도 수 없이 목적을 망각한다. 살아가는 이유를 망각하고, 애인과 대화하는 목적을 망각하고 손님에게 응대하는 이유를 망각하며 나아가 왜 국회의원이 되고 고위 관리가 되고 대통령이 되었는지도 망각한다. 목적을 망각했으니 결과는 표류다. 표류의 끝엔 영화 캐스트 어웨이처럼 무인도에 닿을 수도 있고, 운 좋게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할 수도 있다. 이도 저도 아니면 바닷속으로 가라앉는다. 권력자들은 덕지덕지 부유물들을 달아둔 덕에 웬만하면 바닷속으로 가라앉지 않는다. 그들은 타인을 가라앉혀서라도 살아남는다.



내가 블로그를 처음 만든 이유는 유명 블로거가 되는 게 아니었다. 물론 지금도 아니다. 그냥 쓰고 싶었고 누군가 하나라도 봐줬으면 싶었다. 이렇게 목적 없이 블로그를 운영하면 조회수도 이웃도 전혀 늘지 않는다. 분명한 목적과 방향성과 마감력을 지니고 임해야 성과를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신발을 너무 좋아하니 신발에 관한 사진을 토대로 내 생각이 담긴 글을 써서 이 신발에 대해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봐줬으면 하는 목적으로 글을 쓴다면 그 글은 무조건 읽힌다. 그렇다면 그 신발을 구매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읽힐 가능성이 매우 커진다. 그리고 그 블로그의 다른 글들도 해당 글과 연관이 있다면 다른 글들도 추가로 보게 될 수도 있다. 그렇게 글을 두세 개 보게 되면 그 사람이 당신의 팬이 될 가능성이 커진다. 유튜브 구독자, 인스타 팔로워, 블로그 이웃은 모두 팬이다. 그들은 나의 콘텐츠를 인정하는 사람들이다.



이렇게 말하는 나의 블로그는 완전히 엉망인 상태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글 자체는 이렇게 진지 먹고 쓰고 있기 때문에 광고라는 생각보다는 정성이 담겼다는 느낌을 준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글 하나하나가 테마 없이 따로 놀더라도 내용 하나만큼은 나쁘지 않다는 인상을 준다. 적어도 글쓰기 연습은 열심히 한 셈이다. 지금은 독서모임 공지만 올라가는 수준인데 앞으로 내 블로그는 독서와 독서모임이라는 두 개의 주제만으로 운영할 예정이다. 그래서 독서 인플루언서가 되는 게 목표다. 지금까지는 쿠팡 파트너스의 적은 수입에 취해 그것을 목적으로 신발 리뷰도 하고 쿠팡에서 구매한 생필품 리뷰도 했었다. 사실 그것도 그렇게 나쁜 방법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꾸준히 할 수 있을지가 미지수다. 작정하고 제품 리뷰만 하는 것은 좋은 부업이 될 수 있다. 적어도 글 하나당 1만 원씩만 수입 낼 수 있다면 1일 1 글에 매월 30만 원이라는 나쁘지 않은 수입을 창출할 수 있다. 적어도 집안일을 끝내고 한두 시간 짬이 나는 주부들이라면 꼭 해봐야 할 프로젝트 이기도 하다.



지금 이 글쓰기 프로젝트도 마찬가지다. 현재까지 11일간 11개의 글을 쓰지만 중복되는 주제는 하나도 없다. "100일간 매일 1시간 동안만 작성한 100개의 글"이라는 명확한 목적을 정하면 글 하나하나는 따로 놀아도 목적 안에서 확실한 방향성을 갖추게 된다. 그렇다면 이 글은 누가 보게 될까? 독서와 글쓰기 그리고 동기부여와 가난에 대해 궁금한 사람들이다. 소제목만 봐도 책 쓰고 싶은 사람들이 열받아서 누르기 좋은 어그로를 끌고 있다. 물론 그게 통할지는 모른다. 그건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글 쓰는 사람이 글의 목적을 모른다면 그 글은 절대 통하지 않는다. 그게 내가 100일간 매일 1시간 100개의 글을 쓰는 목적이다. 아무거나 막 써도 되니 나랑 딱 맞는 프로젝트이기도 하며 게으른 나를 위한 최적의 마감력이기도 하다.



탈고에 대해서


사실 지금 책을 하나 준비 중이다. 무려 에세이를 쓰고 있으면서 에세이 하나를 탈고 중인 셈이다. 원고는 완성이 되었고 이제 표지만 준비하면 된다. 시작은 진짜 단순했다. 2022년에는 나름 독서모임을 체계적으로 운영했고 매달 4번 연간 48번의 정모를 진행하면서 그에 필요한 자료 준비도 템플릿을 갖춰지기 시작했다. 이걸 하나로 묶어서 책 형태로 만들면 분명 독서모임원들이 좋아할 것 같았다. 스스로도 책을 냈다는 뿌듯함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았다. 강연 같은 거라도 하려면 저자라는 타이틀이 있으면 엄청 도움이 되기도 하고 추가로 독서모임을 성장시키는데 큰 도움이 될 것 같았다. 



최종적으론 a5 기준으로 약 300페이지의 글이 되었고 초상권에 문제가 될 사진들은 모두 제거하기로 했다. 어차피 작가들 사진이야 없어도 그만이지만 컬러로 뽑으려면 책값은 두배로 들어가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초안으로 한 권을 뽑으려니 가장 기본적인 표지와 종이로 31,240원이 나온다. 그런데 10권을 주문하면 173,030원 100권은 1,162,150원이 나온다. 인쇄 부수가 늘어나면 인쇄비가 현저히 줄어든다는 걸 알게 되었다. 1천 권 단위부터는 가격이 비슷하게 나왔지만 출판사는 계약된 인쇄소가 있기 때문에 개인이 제본을 맡기는 것보다는 비용이 좀 더 절감되지 않을까 하는 합리적 의심은 있다. 결국 내 책은 100권을 만들게 되면 초안을 포함해서 1,193,390원이 된다. 택배비는 포함하지 않았다. 일단 맥북 에어 한대 값은 나온다.



그렇다면 이 책은 최소 12,000원은 되어야 한다. 출판사와 계약하면 인세로 책 값의 10%를 받는 게 평균이라고 한다. 요즘엔 2천 권이 기본이다. 어쨌든 최소 10%라도 남겨보려면 책값은 13,200원은 돼야 한다. 그래도 독립출판이라면 그보다는 더 남아야 하지 않겠는가. 어차피 이번 책은 ISBN도 등록하지 않고 그냥 나올 책이기 때문에 공식적으론 판매 못하고 지인들에게만 팔아야 한다. 내 지인들의 대부분은 대구에 있기 때문에 택배로 보내줘야 하는데 택배비도 계산해야 한다. 어쨌든 여차저차하면 가격은 15,000원으로 잡아야 할 것 같다. 깔끔하게 말이지. 대충 제본이나 뜬다는 게 결국 권당 15,000원짜리 책을 100권이나 주문해서 지인들에게 강매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된 것이다. 



원래 계획은 책 하나 만들면 대충 1만 원 정도면 되겠지? 그럼 대충 20권쯤 만들어서 사람들 나눠줘야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렇게 나이브하게 생각했던 게 몇 날 며칠을 원고 편집에 매달리며 다른 일도 못하고 머리 아프게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솔직히 지금은 독립 출판사를 차려야 하나 하는 마음이 든 것도 사실이지만 그 생각은 일찌감치 접고 출판사에서 초이스 해줄 만한 좋은 글을 만들어보자는 목표를 더 빠르게 먹었다. 



세상일이 그런 거 아니겠는가. 어떤 일이 되게 쉬워 보이고 또 하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런데 막상 해보면 그게 얼마나 어려운지도 알게 된다. 그런 일들이 반복되면 세상 일들이 쉬운 게 하나도 없다는 걸 알게 된다. 또 그러다 보면 쉽진 않아도 되게 보람되고 즐거운 일을 마주하게 된다. 그렇다면 그 일이 바로 천직이 되는 것이다. 그런 일이 생긴다면 꼭 잡아야 한다. 



내겐 음악이 그랬고 글쓰기가 그렇다. 기타리스트는 내가 선택한 길이지만 헤엄치고 헤엄쳐도 무인도의 모래는커녕 망망대해의 생선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솔직히 지금은 음악을 하지 않아서 마음이 편하다. 반대로 글은 쓰지 않으면 불안하다. 글 쓰는 게 너무 좋다. 그래서 쓴다. 막 쓴다. 기왕에 막 쓰는 거 막 쓰는 걸 콘텐츠로 해보고 있다. 이게 안 먹히면 또 다른 목적을 세우면 된다. 20살 때 낙원악기상가에서 75만 원을 주고 중고 펜더 텔레캐스터를 구매했고 지금은 220만 원짜리 맥북 프로를 중고로 구매해서 쓰고 있다. 80만 원짜리 중고기타로는 적어도 몇 천만 원은 벌었고 또 썼다. 그러나 지금 내 맥북으로는 그만큼의 가치를 창출하지 못했다. 내 블로그의 글은 고작 몇 만 원에 쿠팡에 팔리지만 앞으로의 내 글은 좀 더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는 글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러려면 좀 더 아름답거나 좀 더 재미있어야 하는데 일단 둘 다 못하고 있는 것 같다. 할 일도 많고 갈 길이 막막하다.



이런 글쓰기 방식은 삶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삶도 모두가 잘 살아내는 게 아니고 잘 살려면 목적이 필요하다. 스스로 설정한 목적이 장 폴 사르트르가 말한 “실존이 본질에 앞선다”는 철학에 부합한다. 사람이라는 존재는 본질이 없다. 그냥 존재했을 뿐이므로 목적이 없으면 존재 자체가 희미해진다. 희미해져도 괜찮다고? 그럼 당신은 십중팔구 죽지 못해 사는 것이리라. 그런 삶은 의미 없는 댓글과 같다. 하물며 악플도 목적이 있는데 그런 삶은 악플만도 못한 삶이다. 나는 당신이 그보다 가치 있는 존재임을 믿는다. 이 글을 읽는 게 그 증거다. 목적은 거대하지 않아도 된다. 작은 바닷가의 볼품없는 등대라도 좋으니 당신만의 등대를 찾아보라. 그 볼품없는 등대도 당신의 앞길은 넉넉히 비추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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