턱 괴는 여자 12.
나는
나 할머니 손에서 컸어
라는 말을 하길 좋아한다. 나는 할머니 손에서 컸다. 아주 어릴 때는 할머니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대부분이었고 조금 커서도 거의 매주 할머니댁을 찾아가곤 했다. 할머니가 가꾼 시금치를 안 먹겠다고 떼를 쓰면
맛있다, 함 무그바라(한번 먹어봐라).
하는 말소리에 못 이기는 척 젓가락을 드는 일. 할머니가 손으로 찢어주는 김치를 받아먹을 때 할머니가 ‘내 손 깨끗하다이’하고 덧붙일 타이밍을 속으로 재다가 정확한 순간에 목소리가 겹치면 할머니가
'에렝~이 자슥아(에라이, 이 자식아).'
하면서 웃는 걸 보는 일. 할머니가 나를 다 씻기고 '동생 불러온나' 하면 몸에 큰 수건을 두른 채로 거실로 나가 9시 뉴스가 시작하는 화면을 기다리는 일. '나 할머니 손에서 컸어’는,
나는 그런 사랑을 받고 자랐어
라는 자기소개에 가깝다.
할머니는
'야가 을마나 똑똑눈지 아나(얘가 얼마나 똑똑한지 알아)?’
로 시작하는 이야기를 자주 하신다. 어느 날 할머니가 두 살이던 나에게 마당으로 가자며 신발을 꺼내줬는데 꺼내다 보니 왼쪽과 오른쪽이 뒤바뀌어 놓인 적이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내가
'함무니, 거꾸루야(할머니, 거꾸로야)!'
하면서 신발 위치를 바꿔서 제대로 신더란다. 하도 신통방통 해서 할머니는 그 뒤로 마당에 나갈 때마다 일부러 신발을 거꾸로 내어주곤 했는데, 나는 매번 '거꾸루야!'를 외치고 신발을 똑바로 신고는 이제 됐으니 나가자며 할머니 손을 잡았다고 한다.
우연하게 시작된 할머니의 이 실험은 뒤에 태어난 내 동생이나 사촌 동생들이 두 살이 되는 무렵에도 어김없이 행해졌는데, 나 말고는 아무도 통과한 사람이 없다. 할머니는 식구들에게 이 실험의 결과를 벌써 수백 번은 보고했다. 보고가 쌓일수록 '거꾸루야!'의 볼륨이 묘하게 높아지는 것 같다는 소문이 우리 식구들 사이에 돌고 있고.
나는 다 커버린 요즘에도 할머니 곁에서 잠을 청하는 날이면, 수마에 드는 가물가물한 목소리로 시작하는 이야기의 도입부를 못내 설레하곤 한다. 할머니가 '니가 을마나 똑똑 눈지 우찌 알았는고 아나(네가 얼마나 똑똑한지 어떻게 알았는지 알아)?’라고 말문을 열면 '거꾸루야!'까지 이어질 전개가 바로 상상이 되는데도, 나는 잠자코 토닥임 같은 할머니의 목소리를 듣고만 있는 것이다.
할머니는 나를 두고
‘야가 내 날개 아이가, 날개(얘가 내 날개잖아, 날개).’
하면서 자주 웃으신다. 공부를 곧잘 했던 나는 할머니가 자주 가는 시장의 가게 주인과 어쩌다 만난 목욕탕 옆자리 사람과의 대화에 빠지지 않는 자랑거리였다. 할머니가 내 앞에서 '추추추' 하는 희한한 효과음을 내며 춤을 추던 모습은 내가 성적을 잘 받아보겠다고 애쓰던 모든 밤의 원동력이다. 나는 할머니의 날개. 그 말을 떠올리면 졸리다가도 비싯비싯 웃음이 샜다. 대학 때문에 상경을 하게 돼서 명절이 소중해지는 진귀한 경험이 쌓일 때마다, 할머니의 '추추추' 댄스를 자주 못 보는 게 한이라면 한이었다.
그런데
할머니는 내 남동생을 '대장'이라고 부르고 나를 '공주'라고 부르신다.
그러니까 나는 ‘날개'이긴 하지만 '대장'은 아닌 거다. ‘대장’은 될 수 없는 거다.
첫째가 물건을 머리 뒤로 넘기는 행동을 반복하면 둘째가 아들이라는 속설을 내가 그대로 증명했을 때 할머니는 그렇게 환하게 웃을 수가 없었다고 한다. 그리고 할머니네 거실 탁자에 일렬로 세워진 나와 내 동생을 포함한 손주 여섯의 백일 사진들 중 가장 큰 액자에 담긴 사진은 내 남동생 사진이다. 그다음으로 큰 사이즈들은 다른 남자 사촌들(대장들)이 차지하고 있고, '거꾸루야!' 테스트를 유일하게 통과한 나는 여자 동생들과 함께 작은 액자에 담겨있다. 내가 기억하는 시간 동안 부단히 채워진 그 액자들이 어떤 순서를 하고 있었는지, 어떤 크기를 하고 있었는지가 눈에 들어온 건 열여덟이 되어서였다. 그때가 되어서야 동생은 '대장'이고 나는 '공주'였다는 것도 번쩍 깨달았다.
하지만 나는 그 거실 탁자의 액자들이 사랑의 순서나 크기가 아니라는 걸 너무 잘 알고 있다. 우릴 부르는 호칭에 묻어 나오는 것이 괄시가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다.
그건 전부,
어떤 세월 때문이다.
셋째마저 아들이 아님을 확인하고 펑펑 울었던 날을 할머니 혼자의 서러움으로 묻게 만든
세상 때문이다.
딸들이 시댁에서 차례를 다 지내고서야 오느라 늘 늦게 시작하는 명절을 체념하게 놔둔
시간 때문이다.
<12편에서 이어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