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2)

턱 괴는 여자 13.

by 구일삼

나는 양가의 할머니를 구분할 그녀에게 붙이면 된다는 규칙이 이상했다. 같이 보낸 시간 때문에라도할머니'라고 많이 부르는 쪽은 그녀였다. 그녀에게 굳이 글자를 얹어야 하지? 그러다 나중에는 '외할머니'밖에 없는 할머니의 처지를 깨달았다. 명절 연휴의 끝무렵만이 자신의 몫으로 주어지는 그녀의 오래된 사정이 억울했다.

그래서 뒤로는 분을 구분해야 하는 대화가 생기면 'XX 할머니', '00 할머니' 같이 분이 사는 곳으로 다르게 이름 붙이는 습관을 일부러 들였다. '(, 바깥 )' '(, 친할친) 어쩔 없이 짚어내야 하는 상황이 때면, 사실상 가깝게 느껴지는 것은 외가 식구들이라는 점에서 모든 규칙들이 엉성하게 느껴지곤 했다.


외가의 명절 차례는 할머니와 할아버지 분이서 큰집을 다녀오시는 걸로 일단락되곤 했다. 딸들은 각자의 시댁에서 차례를 지내야 해서 집으로 오지 못했으니까. 그래서 나에겐 명절 차례나 제사를 지내는 이벤트란 친가에서만 있는 일이었다. 전부터는 이제 그만 챙기자고 어른들끼리 합의를 봐서 더는 차례나 제사를 지내지 않지만, 아무튼 어린 시절에는 분명히 남아있는 기억이 하나 있다. 그것도 아주 결정적인.

식은 항상 큰엄마와 엄마가 음식을 만들고 나와 사촌언니가 그걸 돕는 식으로 준비됐었다.

그리고 넷은 식이 시작되면 안에 들어갈 수가 없었다.

나는 내가 들어가지 못하는 그곳에 남동생은 버젓이 들어가있다는 사실이 참을 없이 괴로웠다. 자존심에 금이 가다 못해 마음이 빠갈라졌다. 조각난 마음을 아무리 먹어 삼키려고 봐도 납득이 되지 않아서, 혼자 이유를 찾아내려고도 했었다. 어린 머리로 고민하다 생각해낸 답은 '나이'였다. 큰엄마가 큰아빠보다 어려서, 엄마는 아빠보다 어리고, 언니는 언니의 오빠들보다 어리니까. 여기까지 억지로 이해되는 척을 하다가, 계산대로라면 내가 안에 있어야 한다는 결론에 닿으면, 눈물이 났다. 펑펑.

하지만 내가 울든 말든 자리는 언제나 문지방 너머였다. 어린 시절 내내 반복되던 풍경을, 나는 그냥 참고 넘겼다. 친가 사람들과는 붙일 시간이 적기도 하고 여기서는 내가 막내들 쪽에 속해서 어떤 정의나 정립도 소용이 없을 거라는 생각으로. 사실 핑계다. 내가 아니라 동생이 들어가 있어요? 나는 들어가요? 분한 물음들에

원래 그래

라는 답이 돌아온 진짜 이유.


외가에서는 내가 가장 먼저 태어난 아이다. 그리고 나는 외가에 가면 내가 장손이라고 동생과 자주 싸우곤 했다. 만약 외가에서도 차례나 제사를 지내는 풍경이 있었다면 아마 장손 논란은 손쉽게 해결됐을 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우리가 여자는 상을 차리고도 밖에 있어야한다는 규칙이 시공간을 초월하는 줄은 몰랐던 바람에, 외가에서의 서열은 다를 있다고 믿으며, 나는 줄창 시비를 걸어댔다.

내가 제일 먼저 태어났잖아'

내가 제일 먼저 태어난 남자잖아' 싸움은

대부분 꿀밤 때리기로 끝났다.

아직 어렸던 동생은 꿀밤을 맞아놓고도 '어차피 말이 맞다' 말을 했고 나는 딱히 반박을 못했다. 아프다고 우엥우엥 우는 동생을 보고도 분이 풀려서 오래도록 씩씩거리기만 했다. 한참의 시간이 지나, 차례가 시작되어 어른들이 저를 부르는 소리에 혼자 안으로 들어가는 일을 동생이 민망해 하던 어느 . 나는 오래 전의 꿀밤이 그제야 미안해졌다. 속이 풀린 아니었지만.


내가 장손이라고 왁왁 소리지르는 여자애가 당시 어른들 눈엔 어떻게 보였을까. 아마 ' 세고 드센 여자애'였겠지?

나는 세고 드세서, 그렇게 사랑하는 할머니가

이렇게 늦게 일나면 난주엥 시집 가서 남편 밥은 우짤라 하노( 이렇게 늦게 일어나면 나중에 결혼해서 남편 밥은 어떻게 차려주려고 그러니)?’

하는 말에도 굳이 토를 단다. ‘아이고, 할매. 그러면 먼저 일난 남편이 내꺼 차려놓겠지.’

그러면서도 '공주야, 우리 대장은 뭐하노.' 하고 물어오는 전화를 정정하지는 않는다. 액자 정리를 다시 하라고 할머니를 부추기지도 않고. 모순, 직무 유기, 자격 박탈?

나는 모순이 지금껏 있어 맞서는 날과 침묵하는 날의 반복’, 전쟁과는 다른 것이라고 생각한다. 짙은 혐오를 참는 괴로움과, 너무 오랜 세월에 대한 분풀이를 개인에게 하지 않기 위해 애써 이유를 찾는 어려움은 분명 다르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리고 맞서다가도 찾아오는 침묵은 비겁해야만 하는가? 균열은 타협과 저항의 반복으로 벽이 헐어가고 닳아가고 썩어가며 생기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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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름의 기준이 성글게 느껴지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지금은 안의 소란을 기어이 수습한 것에 대한 만족을 즐기려 한다. 세고 드세고 예민한 한편으로 다정할 있다는 , 누군가 가여워 속이 쓰릴 수도 있다는 , 이미 나는 너무 알고 있으니까. 내가 여자다. 그래서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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