턱 괴는 여자 15.
.
.
.
끌려온 동굴 속에서 가지는 큐앤에이 타임.
난 결혼 안 해요. 엄마도 안 해요. 난 나로만 살아요.
Q1. 잘 생각하고 결정한 거 맞니? 그걸 결정하기에는 너무 어린 거 아니니?
A. 그런 말은 나 열 살 때 했어야죠. 서른에 결혼해서 애 둘 낳을 거라는 말을 열 살짜리가 뱉고 있을 때. 그때 했어야죠. 그래, 이해해요. 결혼은 빵을 먹는 거랑 같다는 걸 모르고 하는 말이죠? 빵을 생각해 봅시다. 생크림이 푹신하게 들어가 있는 그런 빵. 이 빵을 먹을까 말까? 그 고민을 하는 이유는 내가 지금 빵을 먹고 있지 않기 때문이죠. 그리고 빵을 먹기로 결정하면 그 푹신한 생크림을 맛보기로 결정하면 나는 빵을 먹으면 됩니다. 반대로 빵을 먹지 않기로 결정하면 케이크를 찾아 나서기로 결정하면 나는 계속 빵을 안 먹으면 됩니다. 대신 케이크를 먹으면 됩니다. 결혼은 다르다 생각하나요. 결혼은 언제까지고 인생의 디폴트 값으로 설정되어 있나요. 결혼은 그냥 해야 되는 거라서, 할까를 고민하는 것은 의미가 없나요. 그래요, 결혼하지 말까를 고민하는 것에 오히려 무수히 많은 근거와 설명이 요구되지요. 결혼에 관해서만큼은 무계획이 아니라 계획이 출발선상이 되어버리고, 그래서 비혼은 성급한 결정으로 취급되고 말지요. 하지만 나는 디폴트 값을 전환했을 뿐이에요. 걱정하지 마세요. 성가시니까요.
Q2. 시간이 지나면서 마음이 또 바뀔 수 있지.
A. 그래요, 언제 어디서 무슨 경험을 하게 될지 모르는 게 인생이죠. 내 디폴트 값이 결혼 무계획으로 설정되었다가도 나중에 변수가 발생해 단계들을 밟아갈 가능성도 얼마든지 있지요. 열일곱 살 때 나 비혼이라고 쩌렁쩌렁 말하고 다니던 것이 딱 그 생각 때문이었네요. 하지만 지금 내 비혼은 달라요. 나는 결혼을 아직 이해하지 못해서 그 문제를 미정으로 남겨둔 게 아니거든. 이것은 결혼에 대한 내 나름의 이해를 마쳤기 때문에 그 안으로 들어가지 않겠다는 확정적 선언입니다. 나는 결혼이랑 안 맞습니다. 강력하고 구속적인 결합에서 안정감을 찾는 사람이 아닙니다. 평생을 함께 보낼 반려라. 부담스럽습니다. 나는 앞으로 쭉 나만 책임지고 살랍니다. 그래서 비혼입니다.
물론 다른 이유도 있죠. 아내와 자녀에게 다정하고 가정의 일에 관심을 가지는 남자에게는 ‘가정적인 남자’라는 찬사가 따르지만 ‘워킹맘(working mom)’들은 가정에 소홀하다고 따가운 눈초리를 받는다는 걸 잘 아니까요. 나는 맞벌이 부부인 엄마와 아빠를 보면서, 그리고 세상이 이들을 어떻게 보는지를 다시 보면서. 잘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묻지 마요. ‘그’ 질문 하지 마세요. 제발.
Q3. 너네 부모님은 그렇게 잘 지내시는데 왜? 너한테 가족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닌데 왜?
A. 하지 말라고 방금 말했는데. 질리네요. 그래요, 나는 화목한 가정에서 자랐다는 감사함을 늘 가지고 살 정도로 집안 분위기가 화기애애한 편이죠. 그리고 엄마와 아빠 둘의 관계가 다정하고 지지적이라는 것도 잘 알죠. 내가 제일 잘 안다고. 그리고 그 둘을 설명할 때 세상의 해석이 어떻게 다른지 역시도 너무나 잘 안다. 양육에 참여하는 아빠, 집안일을 하는 아빠를 두고는 '쏘 스윗'이라는 평가가 뒤따랐지만 엄마에게는 아무도 그런 해석을 하지 않았다.
Q4. 그런 애들이 꼭 제일 먼저 시집가더라
비혼 여자들이 가장 많이 듣는 말 Top 3를 정하는 설문 조사 어디 없나? 우승을 차지할 말이네요. 외로운 마녀가 속으로는 몰래 백마 탄 왕자를 기다리면서 흥! 결혼하지 않을 테야! 이걸 비혼이라고 생각하시죠? 곤란합니다. 마녀는 그 속에 깊은 우물을 짓고 살아서 누구든 따스하게 대해주기만 하면 금방 사랑에 빠질 것 같은가 본데, 아닙니다. 사랑과 결혼을 바로 연결시키는 낭만화도 우습고, 결혼을 비혼이나 외치고 다니는 어두운 여자를 구원하는 대단한 것으로 간주하는 것도 웃겨요. 아니, 대체 시집을 안 가고 싶다는 얘기를 하는 사람에게 왜 넌 시집을 가게 되어있다고 결말을 정해주는 건가요? 그러면 내가 아, 나는 이른 나이에 결혼을 하게 되는구나, 하며 생각을 바꿀 줄로 아시나요? 오히려 심통이 나서 보란 듯 더 잘 살겠죠. 바보들.
Q5. 그럼 가정적인 남자를 만나면 결혼하고 싶을 것 같아?
지금까지 뭘 들었나요.
엄한 아버지가 다정해진다고 가부장제는 다 괜찮아지는 것인가? 가정적인 남자라는 말이 정말로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는가? 다정하고 세심한 남성을 표상하는 이 말이 사실은 가정과 남자는 결코 양립할 수 없다는 걸 보여주고 있는데도.
보이지 않는가?
'가장의 무게'는 엄마를 가장으로 소개하는 내 나름의 프로젝트의 시발점이 된 말이다. '엄마'는 내가 찾을 때는 분명히 안 보였던 티셔츠가 어느 서랍에 있었는지를 다 알고 있는 존재로 설명되곤 한다. 그러니까 엄마는 집안 구석구석을 모두 알고 있고 구성원들의 세부적인 스케줄까지도 전부 꿰고 있는 유일한 존재. 그런데도 엄마는 왜 집안의 기둥이 아닐까? 왜 가장이 아닐까? 표준국어대사전은 '가장'을 '남편을 달리 이르는 말'이라고도 정의하고 있다. 남자가 돈을 벌어다 주는 것은 가정을 책임지는 가장의 무게로 추대되었지만 청소와 빨래를 하고 식사를 준비하고 아이를 낳고 키워 온 무게는 아무도 노래해주질 않았다. 그게 움직일 수 없는 역사다. 세월이 흐르고 워킹맘들이 발명되었지만 워킹맘도 ‘맘’이라는 논리는 여자들의 발목을 틀어쥐었다. 집안의 노동은 여전히 여자들만의 일로만 남아 있고, 밖에서 노동을 해도 주는 돈은 남자들보다 적다. 그러니까, 여자들은 안과 밖을 동시에 버텨내는데도 가장일 수는 없는 거다. 왜? 엄마를 집안의 가장이라 소개하면 그것은 웃기는 말이 되곤 했다. 왜? 남자는 핑크, 그 말처럼? 전혀 매칭이 안 되는 두 단어를 붙여 놓아 재미가 되는 그런 식으로? 진짜 핑크를 좋아하는 남자는 없을 거라고 생각해서 웃긴 그런 식으로? 난 웃기려고 가장인 여자를 말하고 다니는 게 아니었다. 핑크를 좋아하는 남자들이 있다. 정말로 가장인 여자들이 있다.
Q6. 남자는 이제 가정에도 관심을 갖는데 여풍씩이나 부는 여자들은 뭐가 모자라서 아직도 평등을 외치는 거야? 그래봤자 남자가 돈을 더 벌고 가장으로서 책임을 다해야 하고 군대도 가야 하는데 오히려 역차별 아니야? 남녀평등이면 똑같아야지. 이제 여자들은 임신도 안 하려고 하면서.
A. 언뜻 맞는 말 같지만 사실은 정말 치사한 말. 세상의 8% 정도를 근거로 가져와 놓고 이게 세상의 전부라고 우기는 것과 다르지 않은 말. 논리적인 척하는 이런 말들을 지우려면, 혹은 이것이 논리적인 줄로 아는 사람들을 설득하려면, 너무나 많은 문장들이 찬란하게 죽어가야 한다.
남성이 가정에 기꺼이 관심을 가지는 것에 우월감을 가져서는 안 되며, 여풍이 여풍으로 끝나지 않게 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이름들이 필요한지 안타까울 줄 알아야 하며, 역차별을 운운하면서 책임과 노동과 임금을 나누려 하지 않는 사회 구조에 의문을 가져야 하며, 군대를 다녀온 남자와 임신을 겪고 난 여자를 우리는 과연 똑같이 존경하고 선망하는 지를 관통해 군대와 임신을 동일하게 취급해서는 안 되며⋯.
길고 지루한, 하지만 정확한 설명은 다시 길고 지루하다는 이유로 무시될 것이다. 얼렁뚱땅 만들어진 '이퀄리즘' 같은 단어가 정답인 양 퍼지고 문제의 뿌리는 그렇게 내내 땅에 묻혀있게 될 것이다.
.
.
.
안녕히 계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