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이곳은 (1)

턱 괴는 여자 16.

by 구일삼

여기가 스물에 닿기 전까지의 이야기. 열여덟의 어느 날을 시작으로, 열아홉의 수렁과 진창인 복도. 그리고 복도를 걸어가다 보니 시간이 돌아갔다. 열한 , 여덟 , 작년과 며칠 , 다시 . 그리고 다시 지금. 스물까지를 걸어왔다. 대학에 붙고, 태어난 1년이 지난 결심을 깨끗이 닦아놓으며, 나는 세상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나는 이제 구일삼. 더는 죽어 없는 그날들로부터 완전히 다른 사람. 장래에 멋진 페미니스트 할머니가 되어 있겠다는 꿈으로 구일삼으로 마주한 세상은 무척 신기했다.

썩어 있는 것들이 보였기 때문에.








세상을 살다 보면 타인이 마음을 대신 말해줄 때가 있다. 길을 걷다 들려오는 노래의 가사나 누군가 TV 나와 떠든 말이 마음이다 싶을 . 스무 무렵 그런 식으로 찾은 주제가가 하나 있다.

제목은서울 이곳은.’

아무래도 돌아가야겠어. 이곳은 나에게 어울리지 않아. 화려한 유혹 속에서 웃고 있지만 모든 것이 낯설기만 .

만약 가사가 발명되지 않았다면, 언젠가 내가 그것과 최대한 닮은 문장이라도 만들어냈을 거다. 내가 겪어온 것들을 순식간에 작고 우스운 것으로 만들어버리는 거대한 도시. 나는 겁을 먹어버렸고, 주눅 들어버렸다. ‘촌놈 되어 서러웠다. 나는 내가 상대해야 하는 안의 소란이 전과는 약간은 다른 것들이라는 해석도 하지 못한 채로 당장의 버거운 마음을 짊어지느라 아주 바빴다. 서울 이곳은, 너무 크고 무서웠다. 서울에 오려고 아등바등 공부했던 것들이 전부 무색해지고 있었다.


어릴 적부터 TV 끼고 살았기 때문에, 나는 진작부터 서울말이 익숙하긴 했다. TV 사람들은 대부분 서울말을 구사했으니까. 그리고 지방 출신 연예인들은 사투리를 극복한 이야기를 들려주고는 했다. 사투리를 고친 게스트가 고향이 어디라고 말하면 MC 매력 발산 타임이라며

사투리 한번 보여주세요!

그러면 경상도 출신 게스트들은 하나 같이

뭇나?

그러면 같이 ~!

하고는. 이제는 서울 사람들이 신나서 까리뽕쌈 하네, 쥑이네, 이런 말들을 내뱉는다. 그렇게 사투리 소비하다가 이야기는 다른 것으로 넘어가고

사투리는 다시 나오지 않았다. 그토록 많은 말씨들이 잠깐의 재미가 되고 마는 훤히 보이는 네모난 상자. 부산 사람이 먹었니↑하며 서울말을 따라 보려 노력하는 예능 장면은 하나도 웃기지 않았다. 그런데도 서울, 서울말에 대한 동경은 계속되었다. 사투리가 웃기거나 특이한 것이 되는 장면들이 미워 죽겠는데도.


나는 서울말을 곧잘 흉내 냈다. 고등학교 방송부를 했다. 그래서 청소 시간을 틈타 하는 라디오 방송이나 갑자기 필요한 안내 방송 같은 것들을 많이 했었는데, 나는 그때마다 서울말을 흉내 썼다. 그럴 때면 나는 내가 경상도의 일개 고등학생이 아니라 서울 방송국 스튜디오에서 일하는 누군가가 같았다. 나는 역할에 곧잘 심취했다. 서울말을 연습하려고 아니었지만, 어쩌다 보니 심취를 통해 몸에 서울말 버튼이 하나 생겨 장착됐다. 그러다 나는 여느 표현대로 서울로 유학을 떠나오게 됐고, 여기서 만난 사람들이 인사해 오면 냉큼 . 버튼을 눌렀다. 그러니까 서울말은 상경한 사람들이 대개 그렇듯 서울에 오래 지내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녹아든 아니었다. 베껴 말씨. TV 연예인들이 보여줬던 사투리를 '고친' 모습.

처음에는 괜찮았다. 어느 정도로 내가 흉내를 냈냐면, 처음 만난 사람들과 한참을 대화하다 집이 어디냐고 묻는 말에 경남 마산이라고 하면 사람들이 당황한 기색을 보일 정도였다. 그게 처음에는 뿌듯했다, 우습게도. 갈수록 뭔가가 이상해졌다. 점점 말을 하고 있는 나를 의식하게 때가 생기기 시작했다. 무슨 말인지 아는가? 내가 서울말을 없이 말하고 있는 자체가 어색한 느낌. 사투리를 통째로 뜯어버리고 서울말을 채워 넣은 말투가, 지금 것이 맞나? 그런 거슬림. 오류가 삐걱대는 로봇처럼, 나는 점점 말을 하다가 서울말이 의식되는 중간중간에 계속 템포 말을 늦추게 됐다. 그게 아니면 단어 개가 아래로 빠지고 있다는 느낌이 들기도 했고.

고등학생 때도 잘만 쓰던 서울말을 갑자기 버벅거리게 됐냐면. 그냥, 가끔 쓰던 갑자기 일상 전체에 갖다 부어버려서 그렇다. 구형 휴대폰에 무턱대고 최신 시스템 체제를 업데이트하는 그런 . 과부하.

내가 서울말로 인사를 받아쳤을까. 사투리를 쓰면 안 된다고 생각했지. 그게 부끄럽다고 생각했지. 서울말이 우월한 거라고 생각했지. 사투리를 웃음 소재로 쓰는 TV 장면에 자존심이 상해놓고도.

이제는 화가 나게 된다. 서울말 쓰시네요. 지방 사람인 전혀 몰랐네요. 그런 말들이 화가 나기 시작한다. 고향을 묻는 말에도, 마산을 말한다고 니가 알까? 그런 마음이 먼저. 전에는 마산이 어디인지 모를까 앞에경남 붙이는 철저한 친절을 굳이 행했으니 굉장한 변화였다.


그치만 서울말을 계속 썼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라고 생각해서였다. 어느샌가 안에서는 구분선이 생겨있었다. 스무 이후로 만난 사람들은 전부 서울말로 대하고, 그게 아니면 본래의 말씨를 써서 대했다. 나는 이런 구분이 방송실 스튜디오에 들어서거나 축제 무대에 서던 순간같이 느껴져서 우울해진다. 스스로 서울말을 마치 연기하는 것처럼 느끼고 있었다는 얘기니까. 그래서 내가 편한 말씨가 저절로 튀어나오게 되는 사람이 진짜 바운더리 안의 사람이구나, 하는 엉뚱한 믿음이 생길 뻔한 적도 있다. 새로 만들어진 관계들이 거짓이라거나 가식이라거나 소중하지 않은 아닌데, 말투가 가면같이 느껴지니 사람을 대하는 자체가 헷갈렸다.


그때로부터 3년이 흘렀다.

지금은 내가 서울말을 ' 구사'하기 위해 바짝 긴장해있지 않는다는 것에 만족한다. 어떤 억양이 말들을 타고 나오더라도 개의치 않으려고 한다. 이걸 노력씩이나 해야 되는 서글프지만, 아무튼. 스무 이전의 친구들과의 대화 속에 서울 말씨가 흘러나와도, 스무 이후의 친구들과의 대화 속에 마산 사투리가 배어 나와도 그냥 그러려니 하려고 한다.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고, 모두에게 일관되려고 하는 것도 스트레스니까.


그런데 동생도 서울로 대학을 오게 되면서 말씨에 대한 고민을 하는 보고는, 거기에 대고 완전히 괜찮을 거라고는 말하지 못했다. 기억 속에는 아직도 남아있기 때문이다. 서울말 잘한다고 나를 칭찬하던 누군가들과 사투리 한번 해보라고 시키던 술자리가.

그것도 상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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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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