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적인 남자 (1)

턱 괴는 여자 14.

by 구일삼

그러고 보면 외가에서 제사를 지낸 적이 있었다. 외증조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납골당에서 제를 올렸던 것이 그것이다. 그때 어른들은 앞으로 나오라고 나를 불렀다. 나는 이름이 불릴 거라고는 전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일삼이 나온나

하는 소리에 깜짝 놀랐었다는 상기한 뒤로는 소름이 끼쳤다. 나는 여자니까 뒤로 물러나 있어야 한다는 규칙. 언젠가 잔뜩 억울해하던 것도 잊고 썩어빠진 규칙에 어느새 익숙해져 있었던 거다.

그리고 절을 올리고 술잔을 돌리는 모든 과정에서 나는 버벅거렸다. 그건 약식으로 간단히 하던 제였는데도 나는 처음 겪는 상황에 어쩔 줄을 몰라했다. 술잔을 돌릴 손이 약간 떨리기까지 했다. 당연하다. 그전엔 적이 없었으니까. 나에겐 그걸 연습한 기회조차도 적이 없었으니까. 만약 그간 친가에서의 제사 동안 자리가 문지방 너머가 아니었다면 어땠을까. 나는 나를 부르는 소리에 놀라지도, 약식 따위에 긴장하지도 않았을 거다.

이야기는 세상이 돌아가는 거대한 꼬라지의 축소판 같다.

동생이 차례의 규칙이 이상하다는 알아차리기 어렸을 때로 돌아가보자. 동생은 어른들이 누나가 아닌 자신을 안으로 불렀던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래서 자기가 장손이라고 그렇게 자신만만하게 말할 있었던 거다.

? 이거 그거잖아. 달콤해서 놓는 우연한 권력. 여자들은 철저히 배제되는 공간으로 자신은 걸어 들어갈 있다는 , 남자들은 아주 어릴 때부터 보고 배운다. 집안 제사 같은 것들을 시작으로, 남자로 태어난 덕분에 아주 쉬운 세상을 찬찬히 맛보게 되는 거다. 고추와 함께 태어나기만 한다면 손윗 사람인 누나들을 쉽게 제칠 있다는 , 그들이 차려놓은 밥상에 숟가락 얻는 것조차도 하지 않았는데 식의 주인공이 있다는 알게 되는 거다. 그리고 권력을 손에서 놓길 종용받는 순간, 그것은 순식간에 위협으로 인식되고 만다. 그래서 페미니즘은 역차별과 혐오가 되어버린 거다. 하지만 고작과한 권력 내려놔라는 말을 생존 위협에 버금가는 문제로 명명할 있는 것부터가 권력이라는 사람들은 모른다.

꼬우면 나도 고추를 달고 태어났어야 했나? 남자로 태어나지 못한 잘못이고 그래서 동생에게 제쳐지는 감수해야 하는 건가? 고추 없이 찌찌 개를 달고 태어난 자체로 죄이기 때문에 밥상만 차리고 빠져야 하는 규칙을 체화하며 언제까지고 받는 기분이 되어야 하는 건가?

! 정신 차려. 사실 알고 있잖아. 모든 우연히 정해지는 일이라는 . 그런데도 고추는 여전히 대단한 일이 되고 만다. 일생의 업적이 된다. 장손이 되고 상주가 되고 가장이 되는 기회를 독차지하는 이유가 된다. 반면 ?

나는 문지방 너머가 자리지. 태어나는 순간부터 뒤로 빠져 있어야 산다는 룰을 익히지. 누구들은 안으로, 중심으로, 위로 향하는데 나는 조용히 물러나 있다가 어쩌다 한번 주어지는 기회에 사력을 다해야 하지. 당황하고 긴장하고 실수하지 않을까 떨면서. 내가 처음으로 제사상 앞에 술잔을 돌려보던 그날처럼. 그전엔 번도 손에 쥐어본 없던 것이니 떨리는 손인 당연한데, 세상은 그조차도 용납을 한다. 고추 없는데도 기회를 줘놨드만 제대로 못해?! 욕을 멕인다. 남자들은 매일 해도 되는 실수를 여자는 처음 해보는 거라도 지탄을 받는다. 표적이 되고, 수군거림을 견뎌야 한다.

?

이거 그거잖아.

다시 영어학원 이야기로 돌아갔다. 재시험은 걔들의 재시험과는 차원이 다른 잘못이 되던 얘기.

그래, 반복이라고. 이런 전쟁이라고.


그리고

인생은 앞으로 어려워질 거다.

내가 인생 로드맵에서 결혼을 삭제하는 바람에.








한때 이상형은 가정적인 남자였다.

집안일을 도와주고 아이를 예뻐하는 남자와 결혼해서 오순도순 살아야 인생을 완성할 있다고 믿었다. 그런데 세상에가정적인 여자라는 말은 없다는 , 그건 오히려 동어반복에 가까운 말이라는 깨달은 그날부로 꿈은 바뀌었다.

초등학생 인생 계획표를 만들어야 하는 시간이 있으면 나는 항상 ‘30'칸에 결혼을 써냈었다. 아이는 쯤이 괜찮을 같다고도 썼고. 그게 징글맞다는 생각이 열일곱 진로 로드맵 과제를 하면서다. 연필로 초안을 쓰던 와중에 갑자기, 로드맵에 결혼을 넣는 순간 모든 삐걱거리게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서른에 결혼을 하고 애는 둘을 낳겠다는 얘기만 적혀 있던 로드맵 뒤로 다른 것들이 보였기 때문에. 임신과 출산과 육아, 그간의 로드맵에는 그게 빠져있다는 깨달았다. 임신과 출산으로 인해 변한 몸과 체력을 회복시킬 기간이나 육아휴직 기간, 혹은 애를 낳고 키우느라 다시는 일하던 곳으로 돌아가지 못할 가능성은 빠져있던, 구멍이 숭숭 난 지도. 지도를 들고는 어디도 없었다. 그래서 지도를 버렸다. 서른에 결혼을 하고 애는 낳을래, 그건 그냥 엄마 아빠를 보고 베낀 글자들.

그런데

아니 나는 지도를 버렸다니까요!!!! 하는 말들은 소용이 없었다. 결혼과 임신과 출산과 육아가 달라붙어서 인간의 4 의무로 받아들여지는 알아요. 그리고 그중에 가지는 여자만 하는데도 남자가 가장의 이름을 갖고 4 의무를 완수한 당당한 고개를 쳐들고 있는 것도 알아요. 가장이랍시고 남자만이 회사에 유일무이한 노동자가 되어 있을 , 결혼한 여자들은 임신과 출산과 육아를 하고 있거나 여기에 가깝다는 이유로 직장을 떠나는 것과 눈초리를 받으며 버티는 중에 반드시 하나를 골라야 한다는 것도 알아요. 인간의 기본형을 엄마로 만들든지, 아빠도 돌봄을 어깨에 얹은 사람으로 다시 정하든지 하세요. 아무튼 지도를 버렸다고요.

하지만

세상은 여전했다. 내가 어떤 결정을 했든 말든 세상은 나를언젠가임신과 출산과 육아를 전적으로 담당할 존재로 읽었다. 결혼 안 한 여자는아직결혼하지 않았을 . 세상은 청년 여자를 사회에 뿌리내리길 욕망하는 주체로 인식해 따로 구분하지 않는다. 그렇게 있다고 가르칠 언제고. 나한테양성평등'이랍시고 가르쳤던 뭐냐고요. 아직도 '미스 ' 살아있냐고요. 어린 여자 직원들, 아니 아가씨'들을 향한 성희롱과 차별 대우, 무시와 조롱은 먼저 사회에 나간 언니들과 언니들과, 언니들이 일할 때부터 지금까지 살아남았죠. 들어보니 요즘엔 '이제는 미투 때문에 무서워서 말을 하겠다' 하나도 재미있지 않은 농담까지 추가되었다죠? 나는 도대체 말이 농담이 있는 건지 이해가 됩니다. '미투' 자신들의 입을 막았다고 생각하는 꼴이 너무 징그럽고,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모욕을 당하고도 다물길 강요받았는지를 생각하지 못하는 꼴이 한심해요. 감히 말로 남의 존엄을 짓밟으려 놓고도 좋게 넘어가라는 명령까지 있던 권력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를, '미투가 무섭다' 말을 해놓고도 실제로는 알지 못한다는 화가 나요. 그렇게미스 들이, 우리아가씨들이 모욕을 당하고 각오를 채로 발붙이고 있는데도, 남자들을 모를 감수를 하면서 있는데도. 우린 여전히 구석으로 알아서 걸어 들어갈 임시의 존재들인가요? 그렇겠죠. 우린 그냥 직장 잠깐 다니다 키우러 사람들이겠죠. 그러니까 돈을 적게 주는 거잖아요. 엄마거나 엄마가 존재들에게 돈이 그렇게 없는 거잖아요. 차이가 전 세계 일등이라죠? 아니, 그런데 나는 엄마가 생각이 없다고요. 결혼도 하고 엄마도 되지 않을 거라고요. 그냥 계속 이러고 거라고요. 아니, 잠시만. 아니, 잡지 말고. 아니 놓고 얘기해. 놓으라고. 아니, !!!!!!!!

아악!!!!!!

.

.

.


<15편에서 계속.>

이전 13화할머니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