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이곳은 (2)

턱 괴는 여자 17.

by 구일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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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나는 일일이 상처받지 않기 위해서라도 언젠가는 마산으로 돌아가야 하는 걸까? 아마 내가 다시 돌아가게 되더라도 많은 것들은 그저 아까운 것으로 취급되고 거다. 공부하러 서울까지 가놓고 여기 와서 이러고 있어? 벌써부터 들려오는 말들.


격차가 존재한다는 자존심 상하면서도 내가 앞서있지 않으면 된다는 마음이 앞서는 싫고, 그런 마음에 부질없는 죄의식이 드는 것도 싫다. 서울과 마산, 양쪽에서 들려오는 얘기들을 비교하면 기분은 처참해진다. 가치, 진보, 발전 그런 것들마저도 서울에만 있는 걸까, 그런 생각을 때도 있다. 그럴 때면 , 가부장들이 쥐고 있는 아랫동네에 내가 자리가 없을 거라는 예감이 든다. 어떤 소식이나 의식들이 쉽게 도착하지 못할 정도로, 어떤 결집들이 몇 년 뒤에나 만들어질 정도로 그렇게 거리인가 싶다가.


내가 서울에 있는 대학에 거라고 그렇게나 많은 시간을 들였는지를 떠올리면 오기가 생겨서라도 서울에 붙이고 살고 싶어 진다.서울권 대학에 입학할 성적이 됐으니까 사실 핑계. 그 정도의 성적이 되기 위해 나는 많은 노력을 쏟아부었다.

왜냐하면 서울이 성공의 척도니까. 나중에는 서울에서 직장을 잡고 독립 터전을 마련하는 것까지 척도의 결말부로 자리하고 있으니까. 어른들은 '거기가 큰물'이라고 했거든. 거기가 네가 있어야 물이니 여기는 떠나야 곳이라고 했거든.

서울로 떠난 자식들은 다시 내려오려 하지 않는다는 얘기들은 이미 너무 유명하다. 전에는 뒤도 돌아보지 않는 사람들이 없게 느껴졌는데, 내가 서울로 떠난 자식이 되고 보니 알았다. 그건 고향이 그립지 않아서가 아니다. 차이가 너무 극심한 탓이다. 사탕을 맛본 어린애들이 밥을 먹지 않으려고 하는 것처럼, 손에 넣은 반짝이는 것들을 그대로 내려놓고 돌아오기는 쉽지 않은 거다.


1학년 1학기를 마치고 방학을 맞았을 . 마산이 그렇게 그리웠는데도 돌아오니 왠지 답답했다. 이유는 금방 알게 됐다. 시간에 서울에 있었으면 훨씬 공연장에서 뮤지컬을 보거나 전시회를 다녔을 거라고 생각하니 순간들이 마냥 아쉽고 아깝게 느껴졌던 거다. 그런데 , 서울로 돌아가 있는 동안에는 차가운 도시를 버티기가 너무 힘이 들었다. 그렇게 서울과 마산,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고 떠있다는 느낌이 드는 날들이 대부분이었다. 지하철을 잘못 타서 헤매는 날이나 건물입구를 찾아서 쓸데없이 서성이게 되는 날이면, 나는 마산에 다시 가고 싶었고 동시에 가고 싶지 않다. 괜히 여기서 살아남아야겠다는 자극을 받아서. 희한하다. 이건 무슨 종류의 향수란 말인가.


코로나19 시대가 시작되고 비대면 수업이 결정되던 우당탕탕 와중에, 나는 마산 집에 내려 있었다. 몇몇 친구들은 학교의 결정을 기다리느라 고향에 내려갈 타이밍과 자취방 계약 시기를 놓쳐 돈과 시간을 들여야 했다. 그런 불편함은 어쩔 없는 거라고 치자. 근데 소수 인원이라 대면 수업이 가능하니 강의실에서 보자는 얘기가 아무렇지 않게 나올 때나, 조별 과제를 위해 학교 주변 카페에서 모이자는 사람들의 말소리를 뚫고 나는 지방에 있어서 간다는 말을 해야 , 발표를 위한 교수와의 면담이 대면 원칙이라는 설명을 들은 후에 조용히 손을 들어야 그리고 모든 것들이 민망하게 느껴질 때. 그럴 때는 너무 싫어서 어쩔 줄을 몰랐다.

그때 내가 서울에서 온라인 수업을 듣고 있었더라도 나는 말들에 똑같은 상처를 받았을 거다. 내가 말끝을 올린다고 모든 설움의 이유가 녹을 수는 없는 거잖아. 말끝을 올리기만 하면 되는 알았는데 나는 결국은 서울 사람이 아닌 거잖아.

그래도 상경은 내가 선택한 일이니 끝까지 설움을 감수해야 하는 걸까? 서울이 완전히 나의 동네로 느껴질 때까지 부지런히 버티는 수밖엔 없는 걸까? 그렇지만 얼마나 많은 것들이 서울에만 존재하는지, 서울 드림이 얼마나 많은 것들을 그저 참아내게만 만드는지, 그런 것들을 누가 좀 바꿔줄 수는 없는 걸까? 나는 이곳과 떠나온 , 어디가 좋은 것인지를 자주 헷갈리고, 매번 서러워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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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

내가 상대해야 하는 안의 소란이 전과는 약간 다른 것들이 되었다고 두었다. '여자' 사는 고충을 감당하는 것과지방인으로 사는 설움을 상대하는 아주 별개의 일처럼 보이니까.

그런데 정말 그런 걸까? 둘은 다를까?

내가 서울을 힘들어한 것도, '촌놈' 서러움을 느낀 것도,

그리고 거기서 멈추지 않고 내가 힘들고 서러웠는지를 기어코 해석해 낸 것은.

그건

여자로 사는 고충을 자각한 열여덟과 열아홉의 날들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 아닐까?


나는 말들을 고쳐 쓰기로 했었다. ‘서울에 가고 싶다 아니라

서울에 있는 것들이 여기에도 있으면 좋겠다라고.

그러면 초점이 '서울'이라는 공간 단어에만 맞춰져 있을 때는 보이지 않던 문제가 보였다. 애초에 인프라가 균형 있게 갖추어졌어야 한다는 . 여기까지를 생각할 있게 무엇 덕분일까? 내게 주어지는 불합리와 불행들을 '여자'라는 조건과 연결 짓기까지의 지난한 시간들.

차례와 제사를 지낼 때마다 억울하다나는 여자라는 이유로 배제된 것이다 되기까지,

영어학원에서 남자애들과 계속 싸워야 해서 지친다걔들이 내가 여자인데도 잘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에 시비를 거는 것이다 되기까지.

이유가 되는 혐오를 뿌리 끝까지 찾는 훈련을 거친 덕에, 나는 나의 상경 스토리가 눈물겹다는 표면 아래에 뭐가 있다는 눈치챌 있었다. 서울이 우월하고 지방은 열등하다는 '지방 혐오' 자리하고 있었다는 알아챌 있었다. 다시,


나는 페미니스트이기 때문에 세상을 '여성' 시선으로 있었고, 그래서 갈수록 차별과 혐오와 고통을 전보다 선명하게 있었고, 그러다 보니여성' 아니라도 차별과 혐오와 고통의 이유가 되는 다른 조건들에까지도 시야를 넓힐 있게 되었다.

구일삼으로 살고 보니 세상이 썩어 있었다는 말은 그런 뜻이다.

괴로움의 이유가 달라지는 아니라 범위가 넓어질 뿐이라는 현실은 분명 씁쓸하지만

싫지가 않다.

나는 세상을 넓게, 괴롭게 거다.

두리번거릴 거다. 왜냐하면

그래야 부끄럽지 않을 테니까.

멋쟁이 할머니 페미니스트가 되겠다는 처음 구일삼의 마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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