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공화국의 앨리스 (1)

턱 괴는 여자 18.

by 구일삼

스무 살의 주제가. 서울 이곳은.

아무래도 돌아가야겠어, 이곳은 나에게 어울리지 않아. 다음에는 이런 가사가 나온다.

언제나 선택이란 중에 하나. 연인 또는 타인뿐인 . 무엇도 없는 나의 슬픔을 무심하게 바라만 보는 .

서울이 어울리지 않는 촌놈이라는 이유로만 노래를 주제가로 선택했던 아니다. 연인일 없고 타인이기 싫어서 우는 마음을,

커다랗고 삭막한 도시가 무심하게 바라만 보고 있었다.


스무 여름이 지나가고 있을 무렵, 주변 친구들 대부분에게는 남자친구가 있었다. 나는 이제껏 번도 남자친구가 없었다는 이유로 종종 화제의 중심이 되곤 했다. 이미 초등학교 고학년 때부터 모솔(모태솔로) 소리를 들어온 나로서는 레퍼토리가 슬슬 지겨울 참이었다. 정확히 어느 순간부터인지는 기억할 없지만 나는 분명 아주 오랜 시간에 걸쳐서

솔로는 나쁘고 모태솔로는 그중에서도 악질

이라는 모토를 체화해 왔다. 즈음부터 '솔로천국 커플지옥'이라는 말이 TV 나오기 시작했던 기억이 난다. 솔로가 천국이라는 단어와 연결되어 있고 커플은 지옥이라는 단어와 연결되어 있었지만 어린 눈에도 나쁜 커플이 아니라 솔로라는 너무 분명히 보였다. 말을 외치는 사람들을 보고 우습다고 꺽꺽 웃는 사람들이 보였고, 말을 외치는 사람들마저 그게 우스운 말일 뿐이라는 알고 있다는 보였다. 커플은 지옥에 리가 없다는 보였고, 지옥에 정도는 아니더라도 솔로는 한심하고 불쌍한 사람이라는 보였다.


서로를 '남자 친구' '여자 친구' 부르기 시작하는 친구들을 보았고, 투투데이와 50, 100일을 챙기는 이벤트를 지켜보았지만, 나는 그게 부럽다는 생각은 별로 들지 않았다. 그런데 생각을 밖으로 꺼내면 이제는 친구들이 말을 듣고 웃어댔어. 나는 나도 모르는 새에 부러워 죽겠는데 부럽지 않은 애써 눈물을 삼키는 솔로

되고 말았다.

, 시절에 나도 좋아하는 애가 있긴 했다. 워낙에 다들 그런 하나씩 만드는 시기였으니까. 어느 친한 친구가 너는 누구 좋아하는 없냐고 묻길래 있다고 대답한 적이 있다. 화들짝 놀란 친구가 그럼 고백해서 사귀지 않느냐고 다시 물어왔고, 나는 거기에 대고 ' 정도로 좋은 아니라도 그냥 사귀어?'라고 다시 물었다. 친구는 내가 말하는 ' 정도'라는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고 했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나도 그게 무슨 말인지 몰랐다. 이제는 안다. 그때 나는 걔를사귈 만큼좋아하는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다. 사귄다는 것은 무엇인가? 내가 바에 의하면 누군가와 사귄다는 , 연애라는 , 문자 알을 걔에게 쏟아부어도 상관이 없다는 의미했다. 사람이 세트로 묶여 여러 대화에 오르내려도 그것이 부담스럽기는커녕 은근하게 즐길 알아야 하는 의미했고(!), 인간관계의 균형이 무너져도 상대방과의 관계만 유지된다면 괜찮아야 하는 의미했다. 연애 게임은 아주 이상해서 '여자 친구' 쪽에게 많은 퀘스트가 주어지는 같았다. 빼빼로를 직접 만들어 주는 것, 데이트를 위해 화장에 공들이는 , 기념일에 종이를 잘라 붙여 거대한 연애편지를 만드는 , 그리고 남자친구와 친구들의 시시덕거리는 입방아가 왠지 쎄하다는 알면서도 얼렁뚱땅 넘어가는 . 나는 그런 고생들을 감수할 만큼의 마음은 아니었다. 그래서 대충 얼버무리며 '모솔 탈출' 기회를 흘려보냈다.


이내 다른 역할이 생겼다. 누군가의여자친구 되지 않으면 주어지는 하나 있다. 커플이 부럽지 않은 '' 하면서 속으론 외로워 죽겠는 모솔. 나는 역할 곧잘 몰입했다. 까불거리는 성격이었던 어린 나는 애들이 그걸 웃겨하는 좋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이론만 척척박사인 모솔로 업그레이드되어 웃음거리가 되곤 했다. 연애를 하지 않으면서, 아니 못하면서, 다른 친구들의 연애 상담은 기가 막히게 잘해주는 애가 되었다. , 설명의 순서가 바뀌어야 한다. . 그러니까, 연애상담은 잘하는데 정작 지는 모솔. 나는 이런 식으로 희화화를 오히려 부추기는 쪽이었다. 항상 외로운 척을 했고 연애 상담을 마무리할 오늘도 연애는 못하는데 이론 데이터만 쌓여가네하고 가짜 한탄을 했다. 생각해 보면 내가 연애 상담을 잘한 거엔 별다른 이유가 없다. 내가 제삼자라서 연애 안에 들어가 있는 친구에게는 보이지 않던 것을 짚어내는 쉬웠기 때문이기도 하고, 웬만한 인간관계 고민 카테고리를 섭렵한 생각 많은 청소년에게 그건 그냥 식은 죽을 먹을 뿐이었다. 그리고 청소년은 탈이 나는 줄도 모르고 자폭 개그를 즐겨하던 자였다.


그리고 스무 살이 되어서도 연애하지 않는, 아니, 연애를 못하고 있는 내가 여전히 웃음거리를 자처하고 있던 어느 .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모솔이 웃기지?

극이 시작되고 본인이 맡은 역할에 무아지경으로 빠져들던 배우가 갑자기 하던 대사를 멈추고 우뚝 있는 마냥, 나는 별안간 무대를 뒤져 이유를 찾으려고 했다. 난데없이 모든 것이 껄끄러워졌다. 지금까지 내가 우스갯소리로 하던 것들을 찬찬히 떠올려보니, 하나도 웃기지가 않는 거다. 아니, 그동안 웃었던 건지 이해가 되질 않았다. 모솔 소리를 듣고 그게 불쌍한 행세해 시작이 십 대 초반이라는 사실이 너무 징그럽게 느껴졌다. 세상에 태어난 지 10년이 조금 넘은 시점에 연애를 하지 않고 있는 것이 그렇게나 말도 되는 일인가?

.

나는 그제서야 깨닫고 말았다.

여긴 연애하지 않는 자를 허용하지 않는 거대한 연애 공화국. 이곳은 연애하지 않으면 이상하고 외로운 사람이 되어버리고, 번도 연애하지 않았다면 연애를 꿈꾸고 있는 이상하고 외로운 사람이 되어버리는 나라였다는 . 나는 어쩌다 흘러들어와 버린 이곳에서 한껏 어색한 웃음을 지어 걷는 앨리스였다. 나를 여기로 끌어들인 시계토끼가 누군지는 몰라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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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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