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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가계도 0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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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일삼 Feb 28. 2024

파수꾼

<가계도> 1일차 - 4

 나는 지금 경주에 있다. 내 몸뚱아리가 있는 곳은 내 방이 아니고 경주다. 그러나 확신하건대, 내 마음은 지금 내 방과 경주 사이를 떠돌고 있을 것이며, 4박 5일짜리 가출이 끝나고 내 몸뚱아리가 방에 도착하는 그 순간이 되어서야 경주에 있게 될 것이다. 그리고 나는 다시 가고 싶다는 말을 뱉게 되겠지. 늘 그런 식이다. 몸과 마음이 완전히 일치된 상태로 돌아다니고 싶었는데, 그래서 모든 순간들을 면면히 기억하고 싶었는데, 오늘도 그게 될 리가 없는 것 같다. 

 아무튼 나는 경주다. 최소한 내 몸뚱아리만이라도 경주에 왔다. 


 사실 아침에 마스크 챙겼냐는 엄마의 물음이 마냥 간섭 같아 짜증이 났었다. 내가 그걸 안 챙겼을까 봐? 말하고 싶었지만 그냥 챙겼다고 답하고 화장실로 들어가 세수를 했었다. 돌이켜보면 이것 역시 내 신체와 정신이 불협화음을 냈기 때문이다. 내 몸이 평소보다 너무 일찍 시동을 걸게 된 탓에 평소에도 거기에 담길락 말락 하는 마음이 역시나 제멋대로였던 것이다. 어젯밤 잠에 들기 전 예상한 대로라면 옷을 입고 모자를 쓰고 나갈 준비를 하는 모든 과정에서 나는 룰루랄라 신이 났어야 했다. 그런데 내 정신은 아직 침대에 누워있었고 몸뚱아리만 기계처럼 턱턱 움직이고 있었다.


 그것 말고도 오늘 아침은 운수 나쁜 날의 도입부로 손색이 없었다. 설거지를 하고 나가는 5분이 엘리베이터 타이밍을 완전히 꼬아놨다. 아파트 가장 꼭대기 층부터 내려오던 엘리베이터가 우리 집 위층까지 매층 멈춰 선 것이다. 그리고 내가 탔을 때 엘리베이터 안은 책가방을 매고 등교하는 학생들로 가득 차 있었다. 캐리어를 끌고 탄 나는 머쓱한 표정으로 중앙에 우뚝 서 있었다. 마스크로 내 얼굴이 가려져 있었기 때문에 그 애들은 내 캐리어만 보고 내가 여행을 가게 돼서 신난 상태인 줄 알았을지도 모른다. 


 나는 이제 와서 그 애들의 마스크 안을 상상해 본다. 초등학생 고학년 정도 되어 보이던 애들이다. 이것은 내 어깨까지 오거나 턱 끝까지 오거나 하는 키와, 겉옷과 가방의 색을 보고 어림짐작한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얼굴을 보고는 어느 시기를 살고 있는지 모를 세상이 왔다. 또렷하거나 뭉툭한 코와, 고집스럽거나 무던한 입을 보고 그 사람이 살아온 세월이 어느 정도의 길이인지를 판단해 버리는 나로서는 아주 어려운 시대가 왔다. 다 자라지 않은 얼굴의 반 넘는 면적을 가리고 다니는 일. 

 만약 그 일이 나에게도 일과였다면, 나는 아마 차라리 그게 낫다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나는 12살 때 처음으로 내가 어정쩡하다고 느꼈다. 지금도 가끔, 혼자 덜컥 산 모자를 쓰고 다닐 때나 멋으로 쓰는 안경을 얼굴에 얹은 채 거리를 걸을 때 나 자신이 어중간한 존재로 느껴지곤 한다. 그러나 12살 때의 나는 매일매일을 그렇게 느꼈다. 모자와 안경을 벗어던져버리고 싶다가도 뚜벅뚜벅 잘만 걷는 지금의 나와는 달리, 그때 나는 아예 몸을 벗어던지고 싶었다. 나 자체를 벗어던지고 싶었다. 왜냐하면 12살쯤의 여자애는 7살짜리 여자애들과 10살짜리 남자애들이 뛰노는 옆으로 기죽은 듯 서 있어야 하기 때문에. 

 얼마 전 산 브래지어라는 수고로움은 도저히 몸에 익숙해지질 않는데도 내 가슴과 젖꼭지는 티가 나선 안 되는 것이 되어버리는 시간이 오고, 내 눈동자는 예전처럼 커다랗지 않으며, 시력이 나빠져 안경을 쓰느라 눈은 더더욱 똘망하게 빛나지 않는다. 다시 말해 12살의 나는 ‘여자애’로 귀여울 수 있는 시기를 지나친 후이다. 그런데도 나는 후드 모자가 달린 긴 원피스 비스무리한 천을 업고 다니며, 그것은 대개 분홍색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색은 검정색이라는 것을 알게 되기까지 나는 수많은 활자를 만들었다가 망가뜨렸다가 먹어치웠다. 나는 핑크색 혹은 노란색 잠옷을 입고 잠에 들어 축구와 농구 꿈은 꿔 본 적이 없는 유년기를 지나쳐왔다. 처음 무채색의 잠옷을 입어보았을 때, 나는 다른 핑크공주들을 경멸하지 않기 위해 노력씩이나 들여야 한다는 것을 알고 휘청거렸다. 

 어쨌거나 그것은 조금 뒤의 일이고, 12살의 나는 여자애라기에는 촌스러웠고 남자애라기에는 분홍색이어서 이상한 애였다. 분홍색이 어울리기엔 징그러운 여자애가 된 나는 자연히 분홍색이 아닌 아이들을 목격하기 위해 안경 쓴 눈을 바삐 굴렸다. 파란색과 초록색과 검은색을 독점한 그 애들에게는 뛰어노는 것이 허락되었고 어디든 자신의 무대로 만들어 까부는 것이 허락되었고 추잡한 말들을 주고받는 것이 허락되었다. 그 애들은 파란색과 초록색과 검은색을 입고 있었기 때문에, 그 무엇이 묻어도 쉽게 티가 나지 않는 색들을 입을 수 있었기 때문에 더 많은 것이 허락된 마냥. 우습게도 그랬다. 나와는 닮지 않은 사람들. 나와는 같지 않은 사람들. 나는 까불고 휘젓고 다니면서도 사랑스럽고 싶었다. 그래서 파란색을 입은 애들에게 주어지는 관용과 사랑과 같은 모양의 것들을 구걸해 보았지만, 내 양동이에는 담기는 것이 별로 없었다. 

 발치 앞으로 공이 굴러온다. 초록색. 공을 차 패스한다. 방향이 빗나간다. 축구는 내 영역이 아니라고 각오도 없이 단념하게 한 빌어먹을 어느 누군가가 미워진다. 

 그렇게 세월이 흘렀다. 그리고 어떤 열다섯이 내 앞에서 운 적이 있다. 티브이에는 가지각색으로 생긴 남자들이 나오고 그 옆의 딱 하나 있는 여자는 나와 닮지 않았다고 울어야 하는 세상이 왜 아직도 끝나지 않은 걸까. 내 열다섯은 벌써 7년씩이나 썩은 것이어야 하는데 왜 그건 아직도 뻐끔뻐끔 숨을 쉬고 살아있는 걸까. 나는 작고 짧아서 싫어했던 내 코, 쌍꺼풀이 없고 크지 않아서 싫어했던 내 눈, 하얗지 않아서 싫어했던 내 피부를 이제 좋아한다고 말한다. 학창 시절 내내 스무 살이 되면 ‘고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정말로 스무 살에 도착했을 때는 좋아졌다고. 코는 귀엽고, 눈은 육각형의 특이한 모양이라 좋고, 피부는 매끈하고 까무잡잡해서 좋다고. 싫어했던 이유를 그대로 뒤집어 좋아하게 됐다고. 지금 나는 나의 외관이 꽤 근사하다고 생각한다고. 물론 가끔 이 눈, 코, 입 위로 모자와 안경을 얹기로 마음먹는 데에 공을 들여야 할 만큼 슬퍼지기도 하지만, 대개는 마음을 먹을 필요도 없이 평안하다고. 착각일까? 


 <호밀밭의 파수꾼>을 떠올려본다. ‘가식’을 정해두고 그 연극이 나와 무슨 상관이냐고 자위하는 다 티 나는 방어 기제와, 지나간 사람에 대한 칭찬과 험담을 동시에 해버리는 엉망진창의 상태와, 멀리 떠날 궁리는 매일 하는데 그건 멀리 떠나는 것이 가능할 정도로 강한 사람이라는 걸 스스로에게 착각시키고 싶을 때마다 하는 짓이라는 걸 알고도 모른 척하는 나이, 뭐 그런 것들…. 

 앤톨리니 선생이 말한 것들 모두를 나는 혼자 깨우쳤음을 함께 떠올려본다. 학교 교육은 자신의 사고의 크기를 가늠할 수 있는 수단이 된다는 것을, 인간들에 실망하고 윤리적으로 고민하는 선대의 인간은 나뿐만이 아님을, 너는 지식을 사랑한다는 것을…. 

 그리고 그 모두를 어느 날 잠에서 깨고 난 직후에 경멸하기도 한다는 것을. 

 여자들에 대한 품평을 늘어놓거나 여자들을 무조건 섹스와 관련지어 말하지 않는 나는 그 책의 화자보다 분명 낫다. 분명 낫지만, 그렇지만…. 

 그는 빨간색 사냥모자를 쓰는 사람이다. 내킬 때 쓰는 사람이다. 나는 그와 똑같이 무덤을 상상하는 사람이지만 그는 빨간 사냥 모자를 쓴다. 써버린다. 그냥, 써버린다. 그가 빨간 사냥 모자를 그냥 써버리는 사람일 수 있는 것은 그가 섹스를 빼고는 여자를 논할 수 없는 사람인 이유와 같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은 일단 모른 체 주머니에 넣어둔다. 

 ’이런 씹할’ 낙서를 지우는 호밀밭의 파수꾼. 그다음 ‘이런, 씹할'은 칼로 새겨 넣은 자국이고 그다음 ‘이런, 씹할’은 마침내 평화로워졌다고 느낀 순간 빨간 글씨로 찾아온다. 그럼에도 책의 제목은 여전히 호밀밭의 파수꾼이다. 호밀밭을 뛰노는 아이들을 내내 지켜보다 절벽에 떨어지는 순간에 처한 아이들을 구출해 내길 원하는 인간. 열아홉에도 제대로 못 써낸 장래희망 칸에 나는 그런 걸 써내고 싶어진다. 이제야. 

 그리고 빨간 사냥 모자를 쓰고 싶다고, 그런 말을 하고 싶어진다. 엘리베이터 안에 갇힌 그리고 또 분홍색과 파란색 너머로 가는 길목에 있는 회색지대에서 애매한 얼굴로 엉성하게 서 있는 그 애들을 지키고 싶어진다. 그 애들이 빨간 사냥 모자를 쓰고 싶다고 써낼 수 있을 때까지 몇 번이고 절벽을 엄호하고 싶어진다. 나는 파수꾼이 되고 싶어 진다. 파수꾼이 필요 없는 세상에 닿을 때까지 죽은 아치형 다리가 되고 싶어진다. 


 하지만 지금 나는 나 하나 건사하기도 벅차서 도망치는 것이 먼저다. 

 내가 빨간 사냥 모자를 쓸 줄 몰라서 도망치고 있다는 것이 지금의 결론인 것이다. 몸은 이미 경주에 있다는 핑계로, 나는 마음을 속히 거기서 빼내온다. ‘거기’가 엘리베이터 안인지, 호밀밭과 절벽인지, 그도 아니면 뛰노는 7살짜리 여자애들과 10살짜리 남자애들의 무대 옆으로 서 있었던 놀이터인지 확실하지 않지만. 나는 마음을 거기서 빼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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