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타 모니카
저는 대학에서 컴퓨터과학(Computer Science, 컴퓨터공학이 아닙니다! ㅎㅎ)을 전공했어요. 하지만 학창 시절에는 특별히 컴퓨터 그래픽에 대해서 크게 관심을 가지지는 않았었는데요. 졸업 후 첫 직장에서 TV 광고용 컴퓨터 그래픽 영상을 제작하는 부서에서 일하기 시작하면서 이쪽 분야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엔 실리콘 그래픽스라는 회사에서 나온 고가의 워크스테이션으로만 3D 컴퓨터 그래픽 영상을 제작할 수가 있었어요. 그리고, 제 부서의 다른 선배들은 대부분 시각 디자인을 전공하셨고요. 그러다 보니 기술적인 부분에서는 제가 혼자 공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덕분에 전문성을 키우게 되었죠. 하지만 TV 광고업계는 짧은 제작일정과 과도한 작업량 등으로 일하기가 쉽지 않았어서요. 그래서 광고 분야에서 몇 년 일한 후에는, 컴퓨터 그래픽 관련한 스타트업으로 이직을 하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IT에서 Cloud라는 용어가 많이 쓰이고 있지만, 그때만 해도 아직 널리 쓰이지 않을 때였는데요, 제가 조인한 스타트업 회사의 비즈니스는 Clound Rendering Services라고 부를 수 있을 것 같아요. 컴퓨터 그래픽 영상 작업 과정에서 컴퓨팅 파워가 많이 필요한 렌더링이라는 과정이 있어요. 저희 회사에 이런 렌더링을 수행할 수 있는 컴퓨터를 여러 대 설치한 렌더팜(Render Farm)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고객은 데이터를 온라인으로 전송한 뒤, 저희 회사 렌더팜에서 렌더링을 수행하고 나서 그 결과 이미지 시퀀스를 다운로드하는 거지요. 저희 회사 렌더팜을 사용한 시간에 따라 과금을 하고요. 하지만, 한국에서는 이런 비즈니스를 사용할 고객이 많지가 않아서 회사에서는 수요가 있을 것 같은 미국에 지사를 만들어 도전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미국으로 출장 오게 되었던 것이에요.
제가 출장 오고 얼마뒤, 팀장님과 다른 직원 한 명(B)이 더 출장을 나오게 되었습니다. 그해 겨울, 미국 지사에서 일이 좀 되는 조짐이 보였거든요. 시카고 근교의 한 회사에서 크리스마스용 단편 애니메이션을 제작하는 프로젝트의 렌더링을 저희가 맡게 된 것입니다. 당시 회사에서는 방 2개짜리 아파트를 빌려줬는데, 저와 아내가 방 하나를 쓰고, 나머지 방 하나를 먼저 출장나와 있던 직원 A 씨가 쓰고 있었어요. 이제 그 방을 남자 3명(팀장님과 A, B)이 쓰는 묘한 동거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회사에서 내어준 차도 2대뿐이라 2명씩 2대로 아침에 출근해서 일하다가, 저녁에 퇴근하고 난 뒤엔 동료들의 양해를 얻어 아내와 둘이 차 한 대로 외출하곤 했습니다. 저희의 결혼 3주년 기념일에도 그렇게 저녁에 둘이 외출해서 유니버설 스튜디오, 시티워크에 있는 식당에서 조촐히 기념했어요.
그때는 아무래도 출장 중이고 정신없이 일할 때여서 크리스마스 주에도 일을 해야 했거든요. 크리스마스와 일요일 중 하루를 골라 일하기로 해서 저는 아내도 있고 하니까 크리스마스에 쉬고 일요일에 일하겠다고 했고, 팀장님과 다른 직원들은 크리스마스에 일하고 일요일에 쉰다고 했지요. 그때 저는 몰랐거든요. 미국의 크리스마스는 가족들과 보내는 날이라 문 연 가게도 없이 썰렁하다는 것을... 갈 곳이 없었던 저랑 아내는 산타 모니카 바닷가를 향했어요. 그때 찍은 사진입니다. 저 바다 건너에 가족들이, 친구들이 있었겠지요.